오늘도 내일도 살아가는 쪽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첫 번째 밤. 엄마를 우리 집으로 모시고 가 조금이라도 편히 주무시게 하는 게 어떻겠냐고 오빠가 말했다. 빈소에는 상주가 쉴 수 있는 방이 마련되어 있지만, 이부자리도 그렇고 아무래도 불편할 수밖에 없을 테니. 더구나 아버지가 응급실에 들어가시던 날부터 누구보다 신경을 쓴 엄마였다. 장례는 이제 시작인데, 가야 할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조금이나마 기운을 차려둬야 했다. 이른 아침부터 손님들이 찾아오진 않을 것이라며 집에서 주무시고 아침에도 좀 쉬게 하시라는 게 오빠의 말이었다. 물론 엄마가 걱정되는 마음에서다. 하지만 더 깊은 곳에는 차마 꺼내지 못한 또 다른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어쩐지 오빠는 아버지와 단둘이, 아무도 없이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어도 그 마음이 충분히 느껴졌다. 그래, 오빠. 그렇게 하자. 혼자 남아 있을 오빠가 걱정되는 엄마는 올케언니를 기어코 오빠 곁에 머물게 했고, 그 밤, 우리는 오빠와 올케언니만을 남겨두고 조카들과 함께 빈소를 떠났다.
두 번째 밤. 손님이 다 가고 없는 조용한 빈소에 앉아 오빠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정 사진만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의 아버지 이야기,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날 돌아가셔서 찾아뵙지도 못하는 포천의 외삼촌 이야기, 그리고 찾아와 주신 많은 손님들 이야기…. 그러다 문득, 지난밤이 떠올라 내가 말을 꺼냈다.
"어젠 혼자 술 마셨어?"
"그렇지. 술 마셨지. 내가 어제 아부지랑 술 한잔하면서 얘기 좀 하려고 했지."
"으이그. 그래서, 무슨 말을 했어?"
"그동안 못한 얘기들 좀 하려고 했는데, 아무 말도 안 해. 답답하게 한 마디를 안 해. 아니다, 딱 한마디 했다."
"뭐라고?"
"당신처럼 살지 말래. 그래서 알았다고 했어. 이야, 근데, 새벽 4시가 넘도록 소주를 두 병이나 마셨는데 술이 안 취해. 이거 안 되겠다 싶어서 그만 마시고 잤어."
그 순간, 말하는 오빠도 듣는 나도 웃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우리는 울고 있었다.
"오빠, 나는 아버지가 미운데, 참… 안 됐어."
"그러게. 참… 그렇지…."
속내를 말할 줄 모르는 사람.
인생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
자신을 위해서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
답답한 속을 달래려,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몰라서, 할 줄 아는 거라고는 그저 술만 마시고 담배만 피우는 것뿐이었던 사람. 그렇게 기력이 없어 누워 있으면서도 술과 담배를 끊임없이 찾았던 사람.
남겨진 우리는 이제 각자의 방식으로 추모를 하고 애도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 시간과 방식에 정답은 없다. 오빠는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집으로 돌아가 장례식장에서 남은 음식으로 3일간 가족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그 시간을 기록하며 애도의 시간을 보낸다. 엄마는 아버지를 미워하면서, 미안해하면서, 원망하면서, 고마워하면서 그 시간을 보내게 될까.
때때로 슬퍼하고 이따금 눈물 흘리겠지만 우리는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아버지를 봉안당에 모셔두고 돌아오는 길에, 사랑하는 나의 강아지들을 맡겨 둔 시터 주택으로 가 며칠 만에 만난 아이들을 품에 안으며 행복했다. 아버지의 방을 정리한 날은 마침 남편의 생일이라, 저녁에는 작은 케이크를 사 와 남편의 생일을 조용히 축하했다. 살아간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계속 슬프기만 하다거나, 계속 기쁘기만 할 수는 없는 것. 그저 이렇게 양 극단에 한 발씩 걸쳐두고서 균형을 찾아가는 것. 우리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살아가겠지.
나의 아버지. 아빠.
안녕.
잘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