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겨내려 애쓰기보다는 나란히 걸어보기
그동안은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할 때면 아버지가 식사는 하셨는지, 컨디션은 좀 괜찮은지를 묻는 게 인사였다. 이제는 그렇게 안부를 여쭐 아버지가 없다. 대신에 요즘은 "우리 영란 씨, 잘 잤어요?" 라거나 "영란 씨, 뭐해요?" 하고 엄마의 일상을 묻는 것으로 바뀌었다.
어느 날 나와 통화 중이던 엄마는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조용히 "엄마" 하고 불었다. 눈앞에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엄마는 그 순간 혼자서 눈물을 삼키고 있다는 걸. 대답 없는 엄마를 가만히 기다리다가 물었다. "아빠 생각났어?" 내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고 엄마는 "… 천국에 갔을까?"라며 마음속에 있던 말을 꺼냈다.
통화 도중, 엄마는 얼마 전 들은 이야기 하나를 꺼냈다. 엄마와 같은 날 남편을 잃은 외숙모와 통화를 했을 때, 외숙모가 다니는 교회의 장로님이 기도를 하던 중 외삼촌과 외할머니가 보였다고 했단다. 두 분이 손잡고 웃고 있었다며 외삼촌이 천국에 가신 게 분명하다고 했다나. 엄마를 서글프게 만든 건 바로 이거다. 아버지는 교회에 다니질 않으셨으니 삼촌처럼 천국에 가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걱정. 아이고 어머니. 그래서 요즘 교회에 열심히 가시는 건가.
혹시라도 아버지가 지옥에 가진 않았을까 걱정하는 엄마에게, 외숙모네 교회 장로님은 우리 아버지 얼굴을 모르니 삼촌 바로 옆에 계셨다고 해도 알아보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자타 공인 착한 사람 아니었느냐고, 그러니 당연히 천국에 가셨을 거라고도.
"우리 엄마, 그래서 눈물이 났어? 걱정이 돼서?"
"…응."
며칠 전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응급실로 이송되던 날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던 모습을 떠올리며 흐느껴 울던 엄마였다. 혼자서 아무도 모르게 또 얼마나 울고 있을까.
상속등기 서류 때문에 오빠와 통화를 하다가 아버지 걱정에 엄마가 울었다는 말을 했더니,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웃기부터 한다. 평생을 그렇게 싸우시더니만, 누가 보면 사이가 무척 좋았던 줄 알겠다며 농담을 하면서. 그러고는 전화를 끊을 땐 엄마에게 전화해 봐야겠다고 했던가.
배우자와의 사별은 그 자체만으로도 슬픈 일이지만, 평생을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부부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슬픔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간과하고 있었다. 미우나 고우나 50년을 넘게 함께 살아온 배우자와의 이별은 말로는 차마 다 담아낼 수 없는 무게의 슬픔이라는 것을. 더구나 예정되어 있지 않았던 이별이니 엄마가 느낄 상실감은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무거울 거라는 걸 말이다.
엄마는 하루 이틀이면 거뜬히 이겨내던 감기에 2주 가까이 시달리고 있다. 마음이 아픈 건지 몸이 아픈 건지. 아무래도 마음이 아프니 몸도 쉽게 낫지 않는 거겠지. 이런 걸 신체화 증상이라고 하던가. 지켜보는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최대한 혼자라는 생각이 적게 들 수 있게 수시로 전화드리고 자주 찾아뵙는 것 말고는.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슬픔을 이겨낼 시간을 말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건 이겨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배우자의 상실, 아버지의 상실을 처음 겪는 우리가 느끼는 슬픔의 모양은 또 다를 것이다. 각자 마주한 이 낯설고 어렵고 무거운 감정에 잠식당하지 않고, 살면서 느끼는 여러 감정 중 하나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그 무게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은 아닐지.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언젠가는 한결 가벼워지기를 바란다. 앞으로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지 알 수는 없다. 난데없이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눈물짓는 순간을 마주하더라도, 우리는 분명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다. 나아지고 있다는 것, 그게 중요한 거 아닐까.
이번 주 아버지에게 다녀올 예정이다. 아버지의 부재에 슬퍼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행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지. 행복한 순간을 슬픈 마음으로 덮어버리지 말아야지. 슬픈 순간은 슬픈 순간대로, 행복한 순간은 또 행복한 순간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아무래도 추모공원 근처 맛집을 찾아봐야겠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이 조금은 즐거울 수 있게 만들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