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 Oct 06. 2022

휘핑크림 듬뿍 올린 카페모카

어루트에서 만난 커피 베리

아파트 후문 바로 앞에 과일 도시락을 함께 판매하는 카페가 생겼다. 운영되는 시간보다 공실로 비어있던 시간이 더 길었던 곳이었는데 어느 날 사람들이 오가며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하더니 용기 있는 젊은 사장님이 호기롭게 카페를 오픈했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순수한 개인 카페. 크고 작은 프랜차이즈 카페가 어쩜 이렇게 많을 수가 있나 싶은, 마치 정글과도 같은 동네에 개인 카페를 오픈한 것이니 '용기 있는 젊은 사장님'이라는 표현에는 단 1g의 과장도 들어있지가 않다.


때로는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이웃으로, 때로는 카페에 들어가 손님으로 사장님과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잊고 있었던 지난 과거의 어느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 시간엔 10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6개월 만에 카페 사장이 되어 2년간 동네 카페 사장으로 살면서 만났던 사람들이 있었다.


카페에 출근도장을 찍듯 매일같이 오던 젊은 여자 손님이 있었다. 워낙 사람을 잘 기억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유독 눈길을 끌던 손님이었는데, 한동안 발길이 뜸하다 겨울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아주 오랜만에 다시 카페에 찾아왔다.


지친 하루를 단 커피로 위로하려는 듯 '휘핑크림 듬뿍 올린 카페모카를 진하고 달게 주세요'라고 하고는 내가 있는 곳을 마주 보고 자리 잡고 앉았다. 애당초 나를 만나러, 나와 얘기를 하러 온 사람인 것처럼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이런저런 얘기를 풀어내는 그 손님이 그날따라 유난히 지쳐 보였고 어찌나 안쓰럽던지 이목구비는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지만 그 표정과, 표정에서 풍겨지는 느낌만큼은 아직까지도 잔상이 남아있다. 그것은 비단 직장을 다니면서도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녀의 고단한 삶이 전해져서가 아니다. 어쩐지 고단해 보이던 그녀를 보며 그 나이 때쯤의 나를 떠올렸던 기억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세상의 모든 짐이 나를 짓누르고 있는 듯 힘겹고 지쳤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언지,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매일이 숙제 같고 시험 같던 20대를 살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마냥 20대이고 싶었다. 오지 않았으면 좋겠을 30대를 떠올리며 한편으로는 어쩌면 30대가 되면 숙제도 시험도 다 풀어내 완성체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기도 했다. 아니, 그것은 기대나 희망보다는 20대를 살아가며 느끼는 두려움에 대한 회피에 가까웠다. 30대에도, 그리고 지금 40대에도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고 살아가게 될 줄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하고서.


그러나 그때와 달리 지금을 조금 더 수월하게 견뎌낼  있는  모든  숙제 같던 20대와는 달리 결국은  지나가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과정은 괴롭고 시간은 걸릴지라도 모든 것은 지나가기 마련이라는 . 그때 알았더라면 매일 숙제 같던 날을 조금은  웃고 즐기며 보낼  있었을까.


그날 그렇게 나를 마주한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설픈 위로의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할 수 있겠지만 그저 잘하고 있다는 말로 위로보다는 응원으로 해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아닌 뒤늦은 아쉬움 정도.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쓰디쓴 현실을 잠시라도 잊게 해 줄 휘핑크림 가득 얹은 카페모카는 필요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기를.


용기 있는 젊은 사장님 덕에 봉인되었던 과거의 시간이 열린 처음엔 그 시간 나를 지치게 만들었던 기억들만 튀어나오더니 어느샌가 크고 작은 웃음을 짓게 하는 기억들이 살아나고 있다. 좋지 않은 기억의 얼굴들은 사건만 기억날 뿐 얼굴은 생각나지 않지만 좋은 기억의 얼굴들은 어렴풋이나마 생각이 나는 걸 보면, 그래도 그 시간이 내게는 힘들었지만 좋았던 기억이었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