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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Feb 20. 2023

순두부건 짬뽕이건, 뭣이 중헌디?

순두부 짬뽕

어제저녁에 짬뽕을 먹고 1인분이 남았다. 먹다 남은 건 아니니 '남았다'보다는 '남겼다'가 맞겠다. 아니, 그보다 애초에 여유 있게 끓인 거니 그냥 '있었다'라고 해야 할까.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닌데.


커다란 웍 안에 1인분의 짬뽕엔 국물이 대부분이었다. 작은 웍에 모둠해물과 양파와 청경채와 느타리버섯을 조금씩 더해 불맛을 입혀 볶아주고 국물이 있던 큰 웍에 다시 옮겼다. 팔팔팔 끓을 때 뽀오얀 순두부를 넣고 숟가락으로 으깬 후 뚜껑을 덮었다. 순두부 속까지 뜨거워진 걸 확인하고 그릇에 옮겨 담아 식탁에 자리한 후 뜨거운 국물을 호로록 입에 넣었다. 크- 좋다. 고추씨 주머니를 넣어 둔 국물은 하루 숙성되었으니 어제보다 깊고 매운맛이 되었고, 재료는 새로 볶아서 넣은 거니 어쩐지 짬뽕을 새롭게 끓인 기분이다.


짬뽕을 집에서 만들어 먹은 지는 좀 됐다. 좀 됐다... 고 적고 나서 그게 언제인지 궁금해져 지난 기록을 찾아보았다. 


분명 어제 감기와 장염으로 수액까지 맞고 온 마누라인데

아직 100% 회복이 안 된 마누라인데

굳이 직접 만들어주는 짬뽕이 먹고 싶다며...


근데 누굴 탓하겠니.

매정하게 끊어내지 못하고 앞치마 두르고 주방에 서는 건 나인걸. 


2014년 3월의 기록이다. 그러니 짬뽕을 만들어 먹은 건 적어도 2014년 이전부터였겠지. 워낙 짜장보다는 짬뽕을 좋아하는 부부다. 우연히 보게 된 젊은 중식 요리사의 레시피대로 해봤는데 '요고 요고 제법 짬뽕인데?' 싶어서 이후로도 어지간하면 직접 만들어 먹게 된 거지. 나름 나만의 레시피가 추가되며 지금의 짬뽕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주로 짬뽕밥으로 먹지만 때로는 당면을 넣기도 하고, 때로는 칼국수 면을 넣기도 하면서. 최근에는 중화면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중화면을 이용하기도 하고. 


오늘처럼 짬뽕에 순두부를 넣기 시작한 건 재작년, 강릉에 다녀오고 나서부터이다. 강릉 당일치기 여행을 계획하며 유명하다는 짬뽕 순두부집을 찾게 되었다. 내 똥강아지들, 루피와 보아도 함께 갈 수 있다는 얘기에 어찌나 반갑던지. 워낙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당일치기 여행에서 가급적 피해야 할 식당 웨이팅을 무려 2시간 가까이하면서도 만족스러웠던 곳이다. 비록 대기시간은 말도 안 되게 길었으나 맛이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루피와 보아가 허용되는 곳이었으니 음식 맛에 플러스알파가 더해져 만족도가 채워졌으리라. 그 기억이 너무 좋아 몇 달 후 조카 원이와 당일치기로 다시 강릉을 찾았을 때 휴게소에서 배를 채우지도 않고 오직 그곳만 보고 달려갔다. 그런데, 아니, 그런데...


몇 달 사이 반려동물 동반 불가가 되어있던 게 아닌가. 이유를 물으니 반려동물을 동반하지 않는 손님들의 불만이 커져서라고 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내가 좋아한다고 모두가 다 좋아할 수는 없는 거니까. 이해는 하지만 속은 상했고 괜스레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똥강아지들만 차에 둘 수가 없어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원이는 이렇게 계획에 어긋나는 것마저도 재미있다며 웃었지만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녀석에게 미안했다. 다행히 그곳은 비슷한 메뉴의 음식점이 모여있는 동네였고, 급하게 주변에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다른 식당을 찾아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객관적으로 맛있는 집이었으며 조카 역시 맛있게 먹었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마음 한구석이 내내 불편했다.


그날 이후 집에서 짬뽕을 먹을 때 문 앞에서 거절당했던 그 기억에 보상이라도 하듯 이렇게 가끔 순두부를 넣는다. 물론 대기업 순두부가 강릉 초당 순두부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마음만큼은 편하게 먹을 수 있으니. 그런데 가만. '짬뽕 순두부'라고 하면 순두부를 짬뽕처럼 만든 것 같고, '순두부 짬뽕'이라고 하면 짬뽕에 순두부를 넣은 것 같지? 그곳에서 먹으려던 건 짬뽕 순두부였다면 내가 만든 건 순두부 짬뽕이 되는 건가? 아,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순두부 하나를 다 넣었더니 굳이 밥은 필요 없다. 마치 해장하는 아저씨 같은 소리를 내며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니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짬뽕을 앞에 두고 어느새 강릉까지 다녀온 기분이다. 그래, 시작이 무슨 상관이고 짬뽕이건 순두부건 무슨 의미가 있겠니. 맛있게 잘 먹은 지금이 중요한 거지. 아으-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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