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모닝
내가 사는 동네는 항아리 상권이다. 공산품과 식재료를 판매하는 크고 작은 마트, 수많은 프랜차이즈 카페, 각종 병원, 학교, 학원 등등 일상에 필요한 기관 및 상권이 형성되어 있어 굳이 동네를 벗어나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다.
이따금 맥도날드의 맥모닝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생각해 보면 맥도날드의 햄버거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쿼터파운더치즈버거인데, 좋아하는 쿼터파운더치즈버거보다 맥모닝을 더 자주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맥모닝이 떠오르면 가서 먹으면 참 좋겠지만 이상하게 맥모닝이 생각날 때엔 매번 맥모닝 시간이 지나있거나 아슬아슬한 시간이다.
앞서 말했듯 내가 사는 동네는 항아리 상권이지만 맥도날드는 없다. 패스트푸드 점도 브랜드 별로 여럿 들어와 있지만 안타깝게도 맥도날드는 없다. 하필 맥도날드'만'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맥모닝이 먹고 싶은 날엔 맥도날드로 가기보다는 냉장고를 열어 맥모닝을 흉내 낸 집모닝을 만든다. 물론 그것도 잉글리시 머핀이 있을 때나 가능한 거지만.
주말이었다. 빨래가 다 끝났다는 소리에 건조기에 넣을 것과 건조대에 널 것을 구분하고 있을 때였다. 띠링. 내 글에 댓글이 달렸다는 알람이 울렸다. 건조대에 널 것은 바구니에 담아두고, 건조기에 세탁물을 넣고 시작 버튼을 누른 후 댓글을 읽었다.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 자신감도 자존감도 바닥인 와중에, 아침에 받아 든 불합격 결과에 침울한 채로 맥도날드에서 맥모닝을 먹으며 내 글을 읽다가 별안간 엉엉 울어버렸다'는 내용의 댓글이었다. 어느 맥도날드의 한 테이블에서 훌쩍이면서도 '이게 바로 눈물 젖은 빵인가' 싶어 웃겼다는, 얼굴도 모르는 분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과거 언젠가의 내가 떠올랐다.
소파수술 후 임신수치(HCG)가 떨어지지 않아 두 달간 매주 피검사를 하다 드디어 수치 0을 확인한 후 우연히 들었던 라디오에서 '수고 많았다'는 말을 들었다. 라디오는 생활소음처럼 틀어놓을 뿐 DJ의 멘트는 잘 듣지 않는데 앞의 내용은 모르겠고 딱 그 한마디가 귀에 들어왔다. 청소를 하다가 그대로 주저앉아서 울었던 기억이 있다.
때로는 가족이나 친구들 보다 낯선 이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그런 위로는 어떤 의도성을 띄고 있지 않다. 내게 쓴 편지가 아님에도, 내게 부른 노래가 아니고, 나를 향한 손길이 아님에도 마치 처음부터 나를 향한 것이라는 듯 위로를 받게 되는 순간이 있다. 언젠가의 내가 누군가의 편지와 노래와 손길에 위로를 받았던 것처럼 나의 글이 의도하진 않았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았던 거겠지.
나의 글쓰기는 단순히 기록을 위해 시작되었다. 일기 같은 기록을 하다 보니 서서히 이야기가 확장되어갔고,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는 수많은 생각들이 조금씩 정리되기도 했다. 무의식 중에 외면하던 나의 감정들을 들춰보게 되면서 그 과정을 통해 나도 모르게 치유를 받곤 하였다. 순전히 나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을 쓴 것이니 오로지 나를 위한 글쓰기인 셈이다. 그렇게 나를 치유하기 위해 써내려 간 글이 일면식도 없는 완벽한 타인의 마음을 위로했다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고 말할 수없이 감사했다.
외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잉글리시 머핀을 사 와 그분을 위한 맥모닝을 만들었다. 여러 메뉴 중 어떤 것을 좋아할지 몰라 가장 기본으로. 그리고 해쉬 브라운과 진한 커피도 한 잔 준비했다. 오늘도 어디선가 애쓰고 있을 청춘을 위한 나의 작은 응원이랄까. 더불어 감사의 마음도 함께 담았다. 나의 글에서 위로를 받았다며 감사의 인사를 남겨 주었지만, 오히려 그 댓글이 나를 응원하고 또 이렇게 쓸 수 있는 연료가 되어주었으니.
앞으로 꽤 오랫동안 맥모닝이 생각날 때마다 세트처럼 이 순간이 함께 떠오르겠지. 그분이 합격 통보를 받는 날, 아마도 그럴 수는 없겠지만 내게도 그 소식이 전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