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조림
갈치는 청주와 약간의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해두고, 도톰하지만 두껍지 않게 썰어 놓은 무를 뚝배기에 넣은 후 무가 충분히 잠기도록 물을 부었다. 무를 먼저 익혀두어야 속까지 양념이 쏙 밸 수 있기 때문이다. 불을 켜고 가만히 지켜보다 문득, 며칠 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 기억 끝엔 어쩐지 서운한 마음이 함께 올라왔다.
아껴두었던 녹두전 두 장을 부치고 매콤달콤새콤하게 비빔국수를 비벼 기분 좋게 시원한 막걸리를 마시고 있던 휴일 오후였다. 남편의 전화벨이 울린다. 시누이다. 새롭게 핸드폰을 바꾸면서 쓰던 핸드폰을 시어머니, 그러니까 엄마에게 드리려는데 기존에 사용하던 통신사가 달라도 기기변경이 가능한지를 물어보려는 것이었다. 남편은 비록 핸드폰 쪽은 아니지만 IT 계열에 종사하는 탓에 이런 전화를 받는 것은 익숙하다.
시누이 옆에는 시어머니가 계셨고, 휴일이라고 집으로 오셔서는 맛있는 갈치조림을 해주셨다고 자랑 같은 농담을 하기도 했다.
얼마 전 시어머니는 곧 있으면 시누이의 생일이라며 스치듯 말씀을 하셨더랬다. 그 말씀에는 생일이니 그전에 같이 밥이라도 먹었으면 좋겠다는 속내가 숨어 있었다. 예전부터 시누이의 생일은 물론 조카들의 생일을 앞두고 늘 식사 자리를 마련했으면 하셨다. 그렇게 몇 번은 생일을 앞두고 만나 밥을 먹기도 했고, 오래전 일이지만 아이들 생일엔 놀이공원에 함께 가기도 했었지. 그러지 못할 때는 혼자 시누이에게 다녀오기도 하셨고. 아마 이번에도 그래서 가신 걸 테다. 딸 생일이라고 가셔서 좋아는 하지만 번거로워 잘 해먹지 않을 음식을 해주신 거겠지.
갈치는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이다. 갈치를 먹을 때면 열에 아홉은 어릴 적 엄마가 살을 발라주었던 얘기를 하곤 한다. 이쯤 되면 갈치가 좋은 건지, 엄마가 살을 발라주던 그 기억이 좋은 건지 살짝 헷갈리기도 하지만 그게 뭐가 되었건 이러나저러나 갈치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생선이다.
그러니까 나는, 엄마의 갈치조림이 얼마나 맛있었는지를 얘기하는 시누이에게 '맛있었겠다'라는 말을 하던 남편이 떠올라 이렇게 갈치조림을 만들게 된 것이다.
딱딱딱딱- 가스 불이 켜지고 내 마음속 서운함이 함께 켜진 이유는 지난 1월 남편의 생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그가 좋아하는 고기가 듬뿍 들어간 미역국과 어쩐지 빠지면 아쉬운 불고기와 잡채도 곁들인 생일상을 차리고, 앙증맞은 화환 토퍼를 올린 케이크를 앞에 두고 생일을 축하했다. 아침 일찍 생일 축하 전화를 주신 친정엄마와는 달리 시어머니는 아직 연락이 없으셨다. 몇 번 아들 생일을 잊으시고는 뒤늦게 미안해하셨던지라 생일 케이크 앞에서 웃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시어머니께 사진으로 보내드렸다. 뒤늦게 잊었다 미안해하지 마시고, 아들에게 전화 한 번 해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시어머니는 바로 사진을 확인하셨고 역시나 잊고 있었다며 생일 축하한다는 답을 하셨지만 따로 전화는 없었다.
오래전 시누이가 호주로 유학을 떠났을 때, 남편 역시 호주로 가고 싶어 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부모님이 만류하셨고 더 이상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고 했다. 남편은 이곳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받은 월급의 일부를 부모님께 드렸고, 그 돈은 호주로 보내졌다고 했지. 얼마의 금액이 갔는지 그는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남자치고는 발이 굉장히 작은데, 어린 시절 운동화가 작아져도 그냥 그렇게 신는 건 줄 알고 발을 욱여넣고 신고 다녔기 때문이라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한다.
목소리를 높이는 쪽은 언제나 시누이였고, 부모의 입장에서는 소리 나는 쪽을 먼저 살피게 되는 거겠지. 무던한 성격 때문인지, 익숙해져서인지, 내색하지 않는 그와는 달리 곁에서 지켜보는 내가 안타까운 순간들이 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정작 남편 본인은 아무렇지 않았을지도 모를 그 통화가, 나는 이상하리만큼 내내 마음에 남았다.
집에서 귀한 대접을 받아야 밖에 나가서도 마찬가지로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세상살이 어찌 매 순간 그럴 수 있겠냐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힘겨운 하루를 보내더라도 집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세상과 부딪힐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테니까. 그래서 적어도 집에서는 대접하려 하고, 대접받고 싶다.
이 갈치조림은 남편을 위로하고 대접하는 나의 마음이다. 그리고 팔아도 되겠다는,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으로 남편은 나를 대접한다.
그래, 이렇게 서로 대접했으니 되었다.
부드러운 갈치와 양념을 제대로 품은 무까지 남김없이 다 먹은 것처럼 서운한 마음도 그렇게 다 먹어버리자. 그리고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하게 설거지하듯 치워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