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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Feb 10. 2023

모르는 아이가 '엄마'라고 불렀다

비밀상자의 만능열쇠

잠에서 깼지만 눈을 뜨기가 힘들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눈이 부어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


코로나 이후 주말에 그곳을 찾은 것은 아마도 처음이었던 듯하다. 주로 평일 오후를 이용한 덕에 그곳을 찾을 때면 언제나 한산했지만 그날, 주말의 복합 쇼핑몰은 남녀노소의 구분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가 찾은 극장의 상영관 안에서도, 그 많은 음식점 안에도, 그리고 그냥 다니는 길에서도 주말은 주말이라는 걸 체감할 수 있었으니.


영화를 보고 나와 화장실에 간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아이가 몸을 밀착해 나를 한 바퀴 뱅그르르 돌더니 내 앞에서 서서 얼굴을 들고 "엄마"라고 불렀다. 눈이 마주치고 아이와 나 둘 사이 짧은 정적이 흘렀다. 3분 같은 3초였을까. 정적을 먼저 깬 건 나였다.  "응? 엄마 아닌데?" 했고, 아이는 눈을 깜빡깜빡하며 멈춰진 시간을 깨고 나와 놀란 얼굴로 근처에 있던 아빠에게 달려갔다. 기다리던 남편이 나왔고 그곳을 떠나며 아이와 한 번 더 눈이 마주쳤다. 우리 둘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마스크 너머의 얼굴은 분명 웃고 있었다.


남편과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꼬마와 있었던 작은 해프닝을 얘기하다 다시 한번 웃음이 나왔다. 아이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 나는 무척 설레었다. 네 살, 많게 봐야 여섯 살쯤 된 남자아이가 내게 몸을 밀착시키고 나를 빤히 보며 '엄마'라고 부르던 그 순간이 계속 생각났다.


당연하다고 여기던 일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후, 막연하게 꿈꾸던 모습들이 있었다. 직접 만든 소박하지만 건강한 음식을 아이와 나누는 것이나 나른한 주말에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낮잠 자는 모습, 혹은 내 똥강아지 루피와 나의 아이가 함께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것 말이다. 간절히 원했으나 갖지 못한 것. 잡힐 듯 잡히지 않아 그렇게 애간장을 태우다 결국은 놓아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 그래서 말도 못 하게 더 간절해지는 것. 내게 그것은 '엄마'라는 이름이었다.


자발적으로 무자녀의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보니 언젠가 내 것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들이 결국은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이후 그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을 때면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아쉬움이 남게 된다. 아니, 아쉬움이라는 말로는 그 마음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수년간 죽도록 해 온 노력의 결과물이 없으니 밀려오는 공허함, 수차례 임신했다 놓쳐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 결국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 누구도 나를 비난하지 않는데도 밀려오는 자괴감,... 이런 말로도 다 설명해 낼 수가 없다. 말로는 다 형용할 수 없는 지치고 힘든 감정들에 사로잡히지 않게 잘 간직해 내 안 저 깊숙이 넣어 두었는데, 낯선 아이의 '엄마'라는 말이 열쇠가 되어 꽉 닫아 저 아래 묻어 두었던 감정들이 다시 얼굴을 보이고 말았다.


거실에 누워 티비를 보는 남편 뒤로 가 누웠다. 눈물이 차올랐다. 모로 누운 그의 등에 얼굴을 묻고 그대로 울어 버렸다.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음을 토로하다 순식간에 꽉 막혀버린 코로 맹맹 거리는 내 목소리가 우스워 농담을 하고, 그 농담은 또 다른 얘기로 이어져 크게 웃기도 했다. 우리는 지금을 살고 있으니 지난 감정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고 일부러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하염없이 흔들리다가도 이내 다시 중심을 잡는 방법을 터득했다고나 할까.


잠자리에 누워 머리맡에 전등을 켜고 책을 읽고 있었다. 남편 역시 휴대폰으로 습관처럼 골프 동영상을 보다가 출근을 해야 하니 이제 자야겠다며 그의 머리맡 전등불을 껐다. 엎드려 책을 읽고 있는 내 쪽을 향해 누운 채 가만히 나를 보다가 '울지 마' 말하고는 눈을 감았다.


마음이 더 이상 그곳을 향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래, 너 거기 있구나. 아직 아프구나. 그럴 수 있지. 당연하지.' 그렇게 알아주고 보듬어 주고 다시 잘 달래서 저 아래 구석에 내려 놓아줄 뿐. 앞으로 또 언제 어떤 열쇠가 다시 이 문을 열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어쩌겠나. 그때도 지금처럼 알아주고 달래주는 수밖에. 며칠이 지난 지금, 그 아이의 얼굴은 희미해졌지만 '엄마'라고 부르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도는 것만 같다. 곱게 어루만져 저 아래 묻어 둔 기억의 상자에 넣어 두어야겠다.


나의 루피, 나의 보아가 잠을 자고 있다.

잠에서 깨면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을 다녀와야지.

그렇게 과거가 아닌 현재. 지금을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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