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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Feb 16. 2023

님아, 부디 그 똥을 외면하지 마오

프로 똥줍러의 산책은 오늘도 계속된다

나는 두 마리의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는 반려인이다. 그중 한 마리는 100% 실외 배변만 하는 녀석이라 하루에 세 번은 기본으로 배변을 위한 산책을 나가고 있다.


며칠 전 밤산책을 나섰을 때다. 리즈줄에 달려있는 배변봉투통이 비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후 산책에서 마지막 봉투를 사용하고 채워 넣지 않았다는 것이 뒤늦게 떠오른 것이다. 급하게 분리수거장으로 가 적당한 크기에 비닐 봉투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미리 신경 써서 다 쓴 배변 봉투를 챙겼다면 좋았겠지만 이렇게 가끔 실수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이처럼 버려진 비닐 봉투를 사용하기도 하고, 편의점에 들어가 따로 비닐 봉투를 구매한 적도 있으며, 이것도 저것도 구하지 못한 날엔 산책을 멈추고 집에 다시 다녀오기도 했다.


분리수거장에서 급조한 비닐 봉투를 사용해 배변을 치우면서 '나 진짜 양심적이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그러다 이내 이건 너무나 당연한 건데 순간 이걸 양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졌다.


한 달쯤 전이었다. 아침 산책으로 공원에 가던 중 아파트 단지 안에서 산책을 하고 있는 말티즈 두 마리를 보았다. 나는 공원을 가기 위해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와 울타리 건너편에 서 있었고, 말티즈 두 마리와 보호자는 단지 안에 있던 상황이었다. 그중 한 녀석은 리드줄을 하지 않은 채였고, 풀숲에서 뱅글뱅글 돌며 일을 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말티즈의 보호자는 리드줄을 한 다른 녀석과 함께 3미터 이상 떨어진 채 멈춰 서서는 보고 있는 나를 한 번 힐끔, 뱅글뱅글 도는 녀석을 또 한 번 힐끔. 그렇게 이쪽저쪽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내 그 보호자는 일을 본 녀석을 기다렸다가 그냥 가버리고 말았다.


혹시 그저 냄새를 맡았던 것일 뿐인데 내가 오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원에서 돌아와 그 자리에 다시 가보았으나 역시나 배변이 맞았다. 상태로 보아 내가 보았던 녀석의 것이 맞아 보였고, 결국은 내가 치울 수밖에 없었다. 강아지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라면 안다. 우리 집 강아지가 배변 직전 어떤 모습인지. 그러니 그 보호자는 외면했다고밖에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남의 집 개의 똥을 치우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내 아무리 강아지를 아끼는 반려인이라도 말이다.


앞서 언급한 상황에는 두 가지의 문제가 있다.

하나는 반려견의 배변을 치우지 않았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리드줄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배설물을 치우고 리드줄을 착용하라는 '반려견 동반 산책 에티켓'과 관련된 내용의 현수막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만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일 테다. 반려인의 입장에서도 위와 같은 경우엔 눈살이 찌푸려진다. 배변봉투와 리드줄은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산책에서 선책이 필요한 옵션이 아니라 공식과도 같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그 기본 앞에서는 결코 팔이 안으로 굽을 수가 없다.


이따금 배설물을 수거하지 않거나 리드줄을 하지 않아 발생되는 사고 소식이 들릴 때마다 그저 반려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을이 되는 기분이 들곤 한다. 그럴 때면 실제로 이미 내 곁에 착 붙어서 걸을 만큼 리드줄을 짧게 잡고 있도 '줄 좀 짧게 잡으라'는 말을 듣게 되고, 내 손에 이미 배설물을 처리한 봉투가 들려 있음에도 '똥 좀 치우고 다니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이와 같이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로 억울한 상황에 처하기도 하지만, 일부 두드러지는 몰지각한 사람들로 인해 내 목소리는 힘을 잃는다. 억울하지만 그렇다고 같이 목소리를 높여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참고 지나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모든 사람이 강아지를 좋아할 수는 없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일 뿐이다. 이것은 하나의 기호의 차이일 뿐 정도만 지켜진다면 반려인과 비반려인이 서로를 향한 혐오의 날을 세울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러니 수많은 반려인들이여, 내 반려동물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기본부터 지켜나가도록 하자. 그래야 반려인들의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오늘도 나는 똥강아지들과 오늘의 산책을 나간다.

부디 발에 차이는 남의 집 강아지들의 배설물이 적기를 바라며.





*이 글은 오마이 뉴스의 '생활'섹션 사는 이야기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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