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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Jan 04. 2023

겨울이 깊어지면 만두를 빚어요

김치만두

어릴 적 단칸방에 살던 시절이었다.


나와 오빠, 엄마가 나란히 누워있었고 나는 속이 상했다. 분명 만두가 있었는데 내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오빠가 다 먹어버렸거든. 차라리 악다구니를 써서 왜 내것은 남기지 않았냐고 따져 물었으면 좋았을까. 난 그 어린 마음에도 서운한 내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벽을 향해 돌아누웠고 도저히 가라앉지 않는 서러움에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마저도 소리가 샐까 나의 울음을 들킬까 입을 꾹 다물고 애써 울음을 삼키려 했지만 마음을 감추려 애쓸수록 어깨는 더 크게 흔들렸다. 오빠가 "엄마, 얘 울어!"라고 말했고 엄마는 "왜 울어?"라고 물었다. 결국 난 꾹꾹 누르던 설움이 폭발하듯 말했다. "내 만두는 없어!"


고작 만두 때문에 운다고 엄마와 오빠가 어이없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만두가 고기만두인지 김치만두인지, 사 온 것인지 엄마가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 만두를 먹었는지 아닌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 순간만 짧은 영상처럼 남아있을 뿐. 사실 내가 속이 상했던 건 그저 만두 때문은 아니었으리라. 아마 내 몫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던 거지. 그러나 아무도 그걸 알아채지는 못한다.


지금은 그 유행이 조금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당신의 소울푸드는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럴 때면 머릿속에 순댓국, 떡볶이, 미역국 등등 여러 가지 음식이 떠오르는데 '순댓국이요' 혹은 '떡볶이요'라고 답을 하려고 할 때마다 옷깃을 잡고 놓지 않는 게 있으니 어이없게도 어린 시절 나를 울게 만들었던 만두다. 정확히는 엄마의 김치만두.


어려서부터 먹었던 만두엔 항상 빨간 김치가 들어있어서였는지 허여멀건한 고기만두는 맛은 있어도 감히 내 소울푸드 영역에 들어올 수 없다. 어른이 되어 지금까지 여러 맛집을 찾아다녔지만 안타깝게도 김치만두 맛집은 찾을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만두 맛집에 메인은 고기만두였고 김치만두는 거의 구색을 맞추는 정도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내게 김치만두는 곧 엄마의 맛이라는 게 확고해지곤 했다. 김치만두 맛집은 바로 우리 집이었던 것이다.


언제부터였을까. 겨울을 앞두고 김장을 하면 지난해의 김치로 엄마는 만두를 빚었다. 만두를 빚는 날이면 쪄서도 먹고 국으로도 먹고 며칠을 그렇게 만두에 빠져 살았다. 그래서인지 날이 추워지면 엄마의 김치만두가 생각난다. 결혼을 하고 몇 해 동안 엄마는 겨울마다 김치만두를 만들어 주셨고 때로는 바로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만두 속만 따로 만들어 주기도 하셨다. 지금이야 당신들 드시는 음식을 만드는 것도 번거로워하시는지라 엄마의 만두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있지만.


그래서 이제는 엄마가 아닌 내가 김치만두를 빚는다. 다행히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어느 정도 그 맛을 흉내 내는 정도는 되었다. 고기만두만 좋아하는 남편이, 정확히는 김치만두를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 '우리 마누라 김치만두는 맛있다'라고 할 정도로 그 맛이 제법 좋다. 물론 엄마의 김치가 주 재료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지. 그럼 이제 엄마의 김치를 배워야 하는 걸까. 아, 아직은 그러고 싶지 않은데 이걸 어쩌나.


음식엔 많은 이야기가 담긴다. 추억이 가득한 음식을 아이와 나누는 것을 꿈꾸던 순간들이 있었다. 어릴 적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들을 먹으며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처럼 그렇게 내가 차곡차곡 담아 온 이야기를 내 아이와 나누며 새로운 추억을 쌓고 싶었던 그런 마음이 있었다. 비록 마음은 그저 마음으로만 그칠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대신 나의 소울푸드인 김치만두가 역시 소울푸드라는 친구에게 나누려 한다. 함께 나눌 친구가 있으니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겨울이 깊어지고 있다.

내 몫의 만두가 없다고 우는 어린아이는 이제 없다.

내 몫의 만두는 내가 직접 만들면 되는 거다.

이 겨울, 나는 몇 번의 만두를 더 빚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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