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골곰탕
확진자가 된 나를 위해 남편이 준비해 준 첫 식사는 떡국이었다.
때마침 사다 놓은 떡국 떡과 동전 모양의 고형 한우 사골육수가 있었다. 여기저기 쓰임이 좋아 사다 놓은 고형 육수가 이렇게 유용하게 활용될 줄이야. 마치 사식을 넣듯 남편이 방에 넣어 준 떡국은 끓인 사람의 애정이 깃들여서이기도 하겠지만, 대기업의 육수가 한몫 한 덕인지 그 맛이 꽤 괜찮았다.
시가는 차례를 지내지 않지만 명절이 되면 여느 잔칫집 못지않게 많은 음식을 하셨고 그건 모두 시어머니의 몫이었다. 그렇다고 시아버지가 손을 놓고 계셨던 것은 아니다. 재료 구매부터 상에 올리기 직전까지 손수 맡아하셨던 것이 있는데 바로 사골곰탕을 끓이는 것이다. 지금껏 살면서 유명하다는 그 어떤 사골 곰탕도 시아버지의 그것과는 절대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작은 카페를 운영할 때였다. 명절을 앞둔 어느 날 시아버지는 지금 손님 있냐 물으시고는 없다는 말에 당신의 애마인 오토바이를 타고 가게로 오셨다.
"설날에 떡국 하려고 어제부터 끓였는데 국물이 아주 진하고 맛있게 됐어. 팔팔 끓이다 보니 네 생각이 나잖아."
라며 한때는 아이스크림케이크를 담았을 스티로폼 박스에 곰탕과 밥과 김치와 송송 썬 파에 간을 맞출 소금까지 챙겨서 오토바이에 싣고 며느리 먹이겠다고 가게로 찾아오신 거다. 혹여 손님 때문에 따뜻할 때 먹지 못할까 싶어 일부러 손님 없는 걸 확인하시고 말이지.
가게에 있는 동안 끼니를 제때 챙기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며느리를 생각하는 시아버지의 마음을 스티로폼 박스를 여는 순간 느낄 수 있었지만, 마냥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감사함 못지않게 불편함도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운영하던 카페는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물론이거니와 시가와도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시아버지는 일주일에 세 번 이상 가게에 오셔서 한두 시간은 기본으로 머무르다 가셨다. 어느 날은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시기도, 어느 날은 젊은 시절을 이야기하시기도, 어느 날은 시어머니께 속상하셨던 일들을 털어놓기도 하셨지. 그 덕에 친정아버지보다 시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몇 배는 더 길어졌고, 아들딸도 모르는 시아버지의 속사정을 알게 되기도 했지만 불편한 것도 사실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참 얄궂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것 모두 다 사랑이었는데, 시아버지로부터 받았던 다정하고 감사한 마음을 그때는 온전히 다 알 수 없었으니 말이다. 다정함을 다정함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조금은 귀찮고 번거롭게 여겼던 것에 대한 후회는 늘 이렇게 뒤늦게 찾아온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다정한 마음을 온전히 다정하게, 그리고 감사하게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다시 또 겨울이 깊어졌고, 이내 명절이 다가올 것이다. 시아버지를 대신해 시어머니가 사골곰탕을 끓이시겠지. 뜨끈하게 한 그릇 먹으며 우리는 시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게 될 테고. 아니, 그러지 말고 이번에는 내가 직접 끓여보는 것도 괜찮겠구나.
우족으로만 끓이는 것보다 잡뼈를 함께 넣고 끓여야 국물이 더 진하게 우러난다고 말씀하셨다. 그 노하우 그대로 신경 써서 기름을 걷어내 가며 시간을 들여 천천히 끓여봐야겠다. 다년간의 숙련된 곰탕 장인인 시아버지만큼은 못되겠지만 그래도 머릿속으로 기억을 되짚어가며 끓여 봐야지.
남편이 끓여 준 떡국을 먹다가 오래전 시아버지께서 끓여 주신 사골곰탕이 이렇게 떠올라 버렸다. 사진첩을 뒤적여 스티로폼 박스에서 꺼낸 그날의 곰탕 사진을 보고 있자니 허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어디선가 시아버지의 웃음 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어때, 진하고 맛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