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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Mar 16. 2023

닫혀있던 시간이 열리는 순간

라디오를 듣다가

베트남으로 떠나는 남편을 공항에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라디오에선 마크툽의 <오늘도 빛나는 너에게>가 흐르고 있었다. 청취자의 사연으로 신청된 곡이었는데 사연인즉슨, 결혼식 축가를 신랑 친구와 신부 친구가 각각 부르기로 했는데 둘의 선곡이 자꾸 겹치고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수차례 통화를 하다가 결혼식 이후 연인이 되었으나 결국 둘은 1년 후 헤어졌다는 이야기이다. 사연자가 바로 신부의 친구였는데 당시 신랑의 친구, 그러니까 사연자의 전 연인이 축가로 불렀던 곡이 바로 이 곡이었다는 거다. 그런 사연을 듣고 나서인지 평소에는 그냥 흘려듣던 노래가 유난히 달았다. 그러고 보면 그 남자 노래 참 잘했나 보네. 아, 물론 노래를 잘해야만 축가를 부르는 것은 아니지만.


라디오를 듣다 보면 이렇듯 내 플레이 리스트에는 없는 곡들을 듣는 재미가 있다. 물론 매번 그런 건 아니지만, 청취자들의 사연과 함께 그에 맞는 노래를 들으면 가사와 멜로디는 내게 들어와 나름의 옷을 입고 한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그 노래를 들었을 때 그날의 분위기가 톡- 하고 떠오르게 되는 거지. 라디오를 통해 나의 닫혀있던 시간이 열리는 기분이라면 과장이 좀 심한가.


그렇게 <오늘도 빛나는 너에게>를 마음에 새기다가 문득, 정말 문득, 아무런 연관도 없이 문득, 박원의 <노력>이 떠올랐다. 나의 모든 날과 이 맘을 다 모두 전하고 싶다는, 내 세상 속에서 빛이 되어달라는 절절한 고백의 노래를 들으며 이별을 앞둔 마음을 토로하는 노래가 떠오르다니 좀 고약하긴 하지만 정말 말 그대로 떠오른 걸 어째. 다행히 퇴근시간이 시작된 덕에(탓이 아닌 덕이다) 도로는 차로 가득했기에 음악 사이트에 들어가 노래를 검색했고 플레이했다.


<노력>을 처음 들은 건 E와 함께 당진에 다녀오던 가을밤의 차 안에서였다. 왜목마을에 가서 기분 좋게 산책을 했고, 어느 포구에서 타는듯한 일몰을 보고는 기가 막힌 한상차림의 칼국수를 먹고 돌아오는 차 안이었다. 창밖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차 안엔 최소한의 반주에 조용히 읊조리듯 내뱉는 박원의 노래가 귀에 박히고 가슴에 박혔다. 안 되는 꿈을 붙잡고 애쓰는 사람처럼, 그리고 아픈 몸을 이끌고 할 일을 끝낼 때처럼 노력을 했는데도 안된다는 노랫말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왔던 그 밤이 소환되어 도로 위 꽉 차있는 차들 너머로 느닷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노력을 너 다섯 번은 더 반복해서 들었던 탓인지(덕이 아닌 탓이다) 밤을 보내고 오늘까지도 내내 입가를 떠나지 않는다. 어쩐지 노력의 짝지로 어반자카파의 <널 사랑하지 않아>를 들어야 할 것 같다. 마치 1부와 2부처럼. 내일보다 오늘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한다는 사람을 만나러 가면서 노력은 끝이 나지만, 결국 만나러 가서는 끝끝내 다른 아무런 이유 없이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로 이별을 말하고 마는...


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껏 각자의 자리에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이 내 일상으로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가 않다. 이가 딱 맞는 톱니바퀴처럼 처음부터 찰떡같이 맞아떨어지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아마 기적에 가깝지 않겠나. 그렇게 맞춰가는 과정에는 말로는 차마 다 하지 못할 노력이 필요할 테다. 하물며 나 자신과도 잘 지내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한데 타인과의 관계에선 말할 것도 없겠지.


관계를 위한 노력이 더 이상 즐겁지 않을 때, 일로 얽히지 않은 남녀 사이, 더구나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결혼하지 않은 연인에게 노력은 어디까지 필요할까. 뭐, 경우의 수야 사람의 각기 다른 얼굴만큼이나 많겠지만 기를 쓰고 노력을 해야만 하는 관계라면 억지로 멱살 잡듯 끌고 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닐 거다. 나는 물론 상대를 위해서도 말이다.


베트남으로 떠나는 남편을 공항에 데려다주는 나의 노력. 출발 전 전화를 하고, 늦은 밤 호찌민의 야경을 보내주는 남편의 노력. 우리는 그런 당연한 노력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아직 서로를 향한 노력이 싫지 않으므로 감사히 여기면서.


오늘도 나와 잘 지내는 노력의 하나로 라디오를 생활 소음처럼 틀어놔야겠다. 오늘은 또 어떤 사연과 어떤 곡들이 내게 들어와 한자리를 차지하게 될지, 그리고 지난 어느 시간을 끄집어낼지, 사뭇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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