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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Apr 13. 2023

편견이 신념이 되지 않기를

오늘도 이렇게 기름칠을 합니다

한동안 잘 사용하던 콩나물시루를 드디어 처분했다. 한동안 잘...이라고 적었지만 '잘'은 아닌 것 같다. 사놓고 콩나물을 기른 것은 열 번도 채 되지 않았으니까. 열 번이 뭐야, 다섯 번은 사용했을까 모르겠네.


살림살이에 욕심이 많은 나는 2인 가족이면서도 5인가족이 사용하는 큰 사이즈의 시루를 샀더랬다. 아니 처음 해보는 거 그냥 플라스틱으로 된 걸 사도 충분했을 텐데 굳이 옹이로 된 시루를, 그것도 풀세트로 구매해서 거의 방치를 했던 거지. 주방 한편에 두고 쓰다 크기도 무게도 만만치 않아 결국 현관 신발장 아래에 처박아둔 지 오래.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사진을 찍고 중고거래 사이트에 판매물품으로 올린 지 한 달, 그동안 도르마무와 거래를 하러 온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끌어올리고, 끌어올리고, 또 끌어올려 드디어 거래를 이루어냈다.


약속시간이 되어 거래자와 만났는데, 어라, 당연히 아주머니일 거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을 뒤엎고 차에서 내린 분은 나보다 연배가 있으신 아저씨가 아닌가. 다시 보니 그분의 닉네임으로는 여자라고 판단하기엔 조금은 어려운 지점이 있었다. 아, 물론 보이는 닉네임만으로 다 알 수는 없고 알았다 한들 달라지는 것도 없지만 '콩나물시루'를 거래하려는 사람을 남자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괜스레 놀란 마음을 들키지 않게 더 친절히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섣부른 판단을 하고 혼자서 놀라버린 내가 어쩐지 부끄러웠다.


편견이라는 건 이토록 무섭다. 나부터가 타인이 갖는 편견에 당혹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면서 정작 타인을 향해서는 이렇다니.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이 아닌 건 그 누구도 아닌 나였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실 콩나물시루는 지난달에 이루어졌던 거래인데, 한 달 전의 기억이 소환된 이유는 바로 얼마 전 우연히 보았던 한 댓글 때문이다.


이따금 오마이뉴스 생활 섹션으로 기사가 발행되곤 한다. 얼마 전 이사 가는 이웃이 남기고 간 손편지와 관련된 기사가 발행되었고 그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주거형태가 공동주택이라 그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속에 층간 소음에 대한 화두를 하나씩은 품고 있어서인지 층간 소음과 관련되어 정말 많은 댓글이 달렸었다. 사실 포털 사이트의 댓글은 잘 보지 않는데 우연히 한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내용인즉슨, 아래층 이웃이 굉장히 예민한데 아이를 못 갖는 부부이며 그렇게 예민하게 구니까 애가 안 생긴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거기엔 동조하는 대댓글이 있었고.


나는 비자발적 무자녀 부부의 삶을 살고 있다. 댓글에서 말하는 '예민해서 애를 못 갖는 여자'가 바로 나였던 것이다. 지금에야 무자녀의 삶을 받아들이고 온전한 나로서 살고 있지만, 만약 아직까지 병원에 다니며 부모가 되기 위해 애쓰는 중이었다면 그 댓글은 아마도 무기가 되어 나를 찌르고 또 찔렀겠지.


... 사실은 찔렸다. 아팠거든. 댓글을 보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길 한복판에서 느닷없이 그 댓글이 퍽 하고 명치를 치고 가더니 이내 맘 한구석이 욱신거렸다. 몇 년이 지나도 이렇다. 상처야 굳은살이 배기고 무뎌지기는 했어도 치열했던 그 시기가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니까.


경험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정말 난임을 겪는 이들은 그런 얘기를 들을까 봐 더 조심하고 숨죽이고 있다는 것을. 그래, 모르니까 할 수 있는 얘기이다. 누구나 경험하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일들이 있는 법이니.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아는 만큼 생각하고 판단하게 되며 지금껏 살아온 방식이 삶을 바라보는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잘 알지 못하더라도 당장 궁금한 것이 아니면 알려고 하지 않고 미루어 짐작만 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짐작이 쌓여 오해나 편견을 만들게 되는 거지. 그러다 어느 순간 의도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알면서도 매번 잊고 만다.


나 역시 인지하지 못한 채 갖고 있는 편견이 있겠지. 콩나물시루를 거래하러 온 분을 의심의 여지없이 아주머니일 거라 생각했던 것처럼. 다만, 그런 편견이 신념이 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그러니 언제든 생각의 환기가 가능한 뒷문 하나쯤은 열어둘 수 있기를. 그 문이 낡고 녹슬지 않게 수시로 기름칠을 해두어야겠다는 다짐을 할 뿐이다.


그나저나 콩나물시루를 가져가신 아저씨는 잘 사용하고 계실까. 다시 중고거래 물품으로 올라오지 않은 것을 보면 그렇다고 봐도 괜찮으려나. 만약 그렇다면 오늘 그 댁의 저녁 메뉴는 어쩐지 내가 콩나물을 키울 때 주로 해 먹던 콩나물이 듬뿍 들어간 콩나물 밥이라면 참 좋겠는데.


Wind From The Sea_Adrew Wye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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