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상자보다 더 달콤한
부동산 경기가 조금 나아진 건지 아니면 그저 봄을 타는 건지 한동안 조용하던 동네가 2월부터 이사하는 집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3월이 시작되고 완연한 봄이 되면서는 본격적인 이사 철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일주일에 두어 번씩은 이사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 와중에 한 달쯤 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위층의 이웃은 이사를 가게 되었다며 이사하기 전 인사 한 번 하러 오겠다는 말을 했다. 갑작스러운 이사 소식에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따금 아파트나 빌라에서 층간 소음으로 크고 작은 다툼이 일어난다는 기사를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된다. 층간 소음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들이라면 벌어진 행위 자체에는 공감할 수는 없을지라도 사건의 발단, 그러니까 층간 소음이 오죽 심하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 경우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는 옆집 아저씨의 코 고는 소리나 새벽녘 안방 화장실에서 일을 보는 소리 등의 '측간 소음'은 물론이거니와 위층의 늦은 시간 시작되는 쿵쿵 거리는 걸음 소리와 매일밤 김치라도 담그는 듯 콩콩콩콩 거리는 찧는 소음의 '층간 소음'에 시달렸다. 조금은 조심해 주십사 위층에 찾아가서 얘기도 해보고 쪽지도 붙여봤지만 소용없었고, 아파트 관리사무소나 나라에서 운영하는 층간소음센터에 도움을 요청해 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사를 오고 난 이후에도 층간 소음은 계속되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나 이따금 식탁 의자를 끄는 소리는 기본이었다. 퇴근이 늦을 때면 밤에도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으며 이따금 손님이 찾아오는 날엔 아래층인 우리 집에서도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소음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살던 곳에서와는 달리 웃으며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배려와 이해가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아래층을 배려하고 위층을 이해하는 마음 말이다.
자고로 옛말에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고 했고,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고도 했다. 생활 속에서 발생되는 소음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그 소음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그릇의 크기는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오고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 바로 위층의 이웃은 아이가 이제 돌이라 걷고 뛰기 시작할 거라며 발생될 수 있는 소음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했고, 혹여 불편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해달라고 말을 했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우려했던 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발소리는 커졌고, 그런 아이를 따라다니는 어른들의 발소리도 함께 커졌다.
이후 사사로운 만남을 갖진 않았지만 오가며 마주칠 때마다 미처 인지하지 못한 채 발생되는 소음에 대한 사과로 인사말을 전했고, 그런 사과를 받는 나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마찬가지로 나 또한 아래층의 이웃을 만날 때면 인사를 나누며 이따금 혹시 모를 소음에 대한 사과의 말을 전하곤 한다. 우리 집 역시 아래층 이웃에게는 위층이며 우리 집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우리 집의 위층에서 발생하는 소음보다 작다고 장담할 수는 없으므로.
아파트나 빌라는 공동주택이다. 여러 이웃과 함께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 한 소음은 얼마든지 발생될 수 있다. 비록 공간은 나누어져 있지만 함께 사는 사람들이며 일가친척들보다 가까이에 살고 자주 얼굴을 보는 이들이다. 그런 이웃과 내내 얼굴을 붉히며 살아가기보다는 이해하고 배려하며 살아가는 쪽이 낫지 않을까. 이해받기 위해서는 나부터 상대를 배려해야한다. 내 아래층을 배려하고, 나의 옆집을 배려하는 마음 말이다.
어느새 한 달의 시간이 흘렀고 위층 이웃은 지난주에 이사를 갔다. 외출에서 돌아오니 현관문 앞엔 과일 상자와 함께 편지가 놓여 있었다. 달콤한 과일 상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빼곡히 적은 손편지만 눈에 들어왔다. 편지 안엔 덕분에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 간다며,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가 가득 들어있었다.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이사 때문에 정신없을 와중에도 이렇게 굳이 손편지까지 남겨준 그 마음이 너무나 감사해서.
위층의 이사 소식이 어쩐지 아쉬웠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구나. 살가운 왕래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만날 때마다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어린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고, 루피와 보아에게 살갑게 인사해 주던 익숙한 얼굴들이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이웃사촌의 다정함은 없었더라도 배려하고 배려받은 마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이웃은 바로 이사 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위층은 비어있다. 이제는 새로운 이웃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어떤 분들이 오게 될지 걱정되는 마음이 없지 않지만, 걱정은 일단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부디 우리의 배려와 이해, 그리고 상식이 맞닿아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