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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Oct 20. 2023

그리운 부석사

심리 상담사가 운영하는 심리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매일 아침 함께 읽는 책과 연결되는 마음을 돌아보는 질문을 받고 있는데 지난주 금요일 질문을 시작으로 이번 주 마음 읽기의 질문은 조금 어려웠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상처를 들춰보며 마음은 물론 몸까지 힘들었다는 분이 있을 정도로 그 질문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해서, 조금은 쉬어가자는 의미로 어제오늘 이틀간은 비교적 가벼운 질문을 받았다.


올해가 시작되면서 세웠던 목표가 있었겠죠. 남은 기간 꼭 하고 싶었던 일 있으실까요? 아니면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신가요?


새해가 되면서 남편과 했던 이야기가 많은 거 바라지 말고 그저 <건강하자>였어요. 몸도 마음도 건강하면 뭐든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사실 작년에 비해 운동을 많이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아예 놓지는 않으려 애쓰고 있고, 똥강아지들 산책 덕이겠지만 하루 1만 보는 꼬박 걷고 있어요. 16:8 간헐적 단식을 한 지는 한 달이 넘어가고, 최근에는 하루에 물 2리터를 마시기도 하고 있고요. 다음 달 건강검진이 있는데 나쁜 소리만 듣지 말자…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문득, 부석사에 다녀오고 싶어졌어요. 좋아해요. 부석사. 못 간지 오래됐는데. 초입에 은행나무 길(아직 있겠죠?)이 몹시도 걷고 싶어졌어요. 겨울이 오기 전에 혼자라도 부석사에 다녀와야겠네요.


라고 대답했다.


나의 대답을 들은 참여자 중 한 분이 부석사에 추억이 있는지를 간결하게 물었다.


부석사의 추억이라…


아마도 그 시작은 정호승 님의 시였을 것이다. 믿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시를 참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내가. 사랑하다가 죽어버리라며 시작되는 <그리운 부석사>를 좋아했고, 그래서 부석사에 처음 가게 되었던 거지. 결혼 전 혼자서 기차 타고 버스 타고 가 근처 식당에서 밥도 먹고 사과도 먹고 했던 기억을 시작으로, 남편이 남친이었을 때도, 그 남친이 남편이 되어서도 부석사는 수시로 잊을만하면 한 번씩 다녀오는 곳이었다.


부석사로 가는 길에 은행나무 길이 참 좋은데, 어쩌면 그래서 더 이 계절이 되면 생각이 나는가 보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석사에 앉아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자면 그냥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그 모습이 정말 장관이라 그 앞에선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부석사에 갔던 건 심정지로 소파수술을 하고 나서였다. 초음파 사진을 어찌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부석사에 가서 태우겠다는 혼자만의 다짐을 했지만 차마 남편에게는 말을 하지 못했다. 못하겠더라. 부석사에 가서 양해를 구하고 거기서 태우는 것을 생각했다. 태울 때 담을 틴 케이스와 불을 붙일 때 사용할 캔들 라이터(부부 모두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냥 라이터는 없다)까지 챙겨갔는데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허락을 받지 못할 확률이 더 높겠지만, 만약 그곳에서 태우게 된다면 혹여라도 그곳을 다시 찾을 때마다 생각이 나 마음이 아플까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다.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길 뒤늦게 남편에게 말을 하고 휴게소에 들러 준비해 간 틴 케이스에 담아 남김없이 태웠던 잊고 지내던 기억이 대답을 하며 떠올랐다.


그래. 그랬지. 그런 시간이 있었지.

분명 가벼운 질문에 가벼운 대답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만…….

그래도 덮어만 두었던 지난 시간을 이렇게 살펴보게 되어 감사하다.

정말, 반드시,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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