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가정 출산
2020년 5월 22일 금요일, 오랜만에 버터핑거팬케이크에서 거하게 아내와 브런치를 먹었다. 저녁에는 곧 있을 출산에 대비해 처갓집에 덕구를 맡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그날 새벽이었던 2020년 5월 23일 토요일 3시,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잠에서 깨어 보니 아내가 분주하게 화장실로 가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보니 양수가 터진 것 같다고 걱정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제 시작됐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내 몸이 갑자기 이상하다. 배가 살살 아프면서 체한 것 같이 속이 답답하고 구토가 나올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강한 수축에 더 당황하고 있을 아내에게 나도 모르게 그만 내 속이 이상하다고 말해버렸다.
짧은 주기로 아내에게 수축이 오기 시작했다. 수축이 올 때마다 그동안 연습했던 라이트 터치도 해보고 아내의 몸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을 때에는 어깨에 손을 올리고 힘을 빼라고 살며시 이야기도 해보았지만 그동안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아내도 자신의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당황한 눈치였고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 허리가 새우 등처럼 휘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당황스러워 둘라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둘라 선생님이 진통 주기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셨지만 이제야 앱을 설치하고 주기를 재기 시작해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일단 출발하겠다는 말씀과 함께 풀장에 물을 받아 놓으라고 하셨다. 전화를 끊고 보니 정신이 없었지만 주기가 5분도 안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뒤늦게 아내가 설치한 앱에서도 5분 이내로 결과가 나온다.
수축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급격히 진행되는 것 같았다. 풀장을 미리 소독해놓지 못해서 급하게 소독하고 닦아내고 있는데 아내가 짧은 주기로 수축을 느끼며 힘들어하고 있었다. 풀장을 닦다가 달려가서 봐주고 수축이 끝나면 다시 와서 닦고를 반복하며 정신없이 있었다.
물을 받을 즈음, 둘라 선생님이 도착하셨고 전문가답게 상황을 정리해주시기 시작했다. 한숨 돌리며 풀장에 물을 받고, 아내에게 돌아가 마실 물도 주고 이완 자세를 취하는 것도 도와주었다. 곧 나올 것 같다는 둘라 선생님의 말씀에 둘이 풀장으로 들어가서 아기가 나올 수 있도록 힘을 주었다. 그러나 빠르게 진행됐던 초반과 달리 후반에는 진행이 느려져 다시 물에서 나와야 했다.
이때부터 아기를 밀어내기 위해 푸시를 시작했는데 짧게 오는 수축 주기마다 아내는 호흡과 함께 힘을 주어야 했고, 진행이 느려져 꽤 오랜 시간 반복하느라 아내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지쳐버렸다.
나는 정신이 몽롱했고, 힘들어 보이는 아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원래 생각했던 대로 조금 더 이완하며 기다리는 출산을 하면 어떠냐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말문을 열지 못하고 조금은 지치고 불편한 마음으로 아내의 몸을 지탱하며 푸시를 도왔다.
한 둘라 선생님이 잠깐 인터뷰를 하자고 거실로 불러서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나보고 빨리 와달라며 소리를 질렀다. 다른 선생님들보다 내가 지탱해주는 것이 더 편했던 모양이다. 또 다른 둘라 선생님은 부엌에서 아내가 먹을 미역국을 끓여주고 계셨다.
몸과 마음이 지쳐갔고 이제 아내가 힘들지 않도록 아기가 빨리 나왔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염원하며 아내가 힘을 줄 때 나도 함께 힘을 주었다. 아내의 몸을 지탱하는 중간에 갑자기 다시 속이 안 좋아져 잠깐 둘라 선생님께 맡기고 화장실로 가서 헛구역질을 하고 돌아왔다. 다행히 그 이후로는 속이 더 악화되진 않았다.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고, 아내는 이제 조금 적응이 됐는지 더욱 힘을 내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둘라 선생님의 지시를 정말 잘 수행해주었다. 그 모습이 참 존경스럽고 멋져 보였다.
심장박동 측정기로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으려고 할 때마다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심장박동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둘라 선생님께 거의 다 됐다는 말을 여러 번 듣고 나서야 정말 아기를 만나기 위해 다시 풀장에 들어갔다. 미리 설치해둔 카메라는 배터리가 다 되어 꺼져버린 것 같았다. 대신 다른 둘라 선생님이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을 해주셨다.
이제 아기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머리숱이 좀 많아 보이는 게 우리 부부의 자식답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느새 밖은 밝아서 빛이 환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싶었다. 마지막으로 힘을 내어 아기를 밖으로 밀어내며 아내의 신음소리가 흘러나오는데 옆집 분들이 무슨 일이 있나 걱정되어 혹시라도 방문하실까 봐 살짝 신경 쓰였다.
아기 머리가 꽤 많이 나왔다. 아기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어 주며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응원을 보냈다. 아기 머리만 보았을 때는 마치 무생물처럼 아무 미동이 없었다. 몇 번의 수축과 밀어내기를 반복한 끝에 아기가 고개를 돌리며 이목구비가 보이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드디어 아기 머리가 돌아가며 몸이 스윽하고 빠지더니 우리 부부의 품에 안겼다. 연한 분홍색 피부톤의 생명체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이제야 생명처럼 보이고 실감이 났다.
아기는 정말이지 내 귀에는 엄마~ 하는 소리의 울음소리를 서너 번 낸 후에 조용해졌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힘겹게 뜨며 우리 얼굴을 바라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참으로 기특했다. 예상과 달리 과정이 힘겨워서였는지 눈물이 나오지 않았는데, 아내가 둘라 선생님들께 고생 많으셨다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나의 지난 글들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 부부는 자연주의 출산을 계획하고 있었고, 조심스럽고 기대감에 찼던 10개월을 지나 지난 5월 드디어 출산을 했다. 위 경험담을 읽으며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집에서 아이를 낳았다.
출산을 기다리며 우리 부부는 어느 정도 출산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적당한 준비를 마쳤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출산 과정이 평생 처음 해보는 훌륭한 경험이었음은 분명했으나 당연하게도 생각한 것처럼 만은 되지 않았다. 사실 부부가 출산의 지향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는 듯하다. 다만 서로가 막연히 공유하고 있는 이미지가 있었다고 믿는다. 적어도 내가 생각했던 출산의 목표 또는 지향점은 다음과 같다.
목표 = 주도적인 출산 + 황홀한 출산
기존에 언급되는 여러 출산 방법론 중 히프노버딩이 가장 맞는 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
출산을 기다리며 했던 준비는 크게 두 가지인데, 부부가 각각을 주도하여 준비하였다.
아내 = 출산과 육아 용품 준비
본인 = 집 정리(출산/육아 환경 만들기)
이때, 안방에 겨울철 결로 현상으로 인해 발생한 벽지 곰팡이를 제거하기 위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도배도 해봤다.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아내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출산을 하기로 했고, 실제로 가정 출산을 하게 됐다. 준비 과정에서 내가 집 정리에 많은 시간을 사용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집에서 출산을 할 것 이기 때문이었다. 거실에 수중 분만을 위한 가정용 풀장을 놓기 위해 책장이나 탁자도 전부 치웠다.
사람들은 집에서 아기를 낳았다고 하면, 대부분 놀라워하고 대단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말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정 출산의 불안정성이나 어려움에 대해 우리가 이를 감내하고 해낸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에서 출산을 해본 우리 부부는 오히려 병원에서 출산을 하는 분들이 더 대단해 보였다.
일단 우리의 경우, 익숙한 집이기 때문에 더욱 출산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자유롭게 움직이며 여러 자세를 취해 자궁 수축의 고통을 경감할 수 있었다. 또 지치면 언제라도 마시고 먹으며 다시 힘을 낼 수 있었고, 원하는 음악이든 어떤 환경이든 마음대로 조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내가 직업으로서 참여한 병원 출산에서의 산모는 병원의 통제에 따라 대부분 누워만 있어야 하고 자연 분만의 경우에도 만약의 사태에 수술을 할 경우를 대비하여 먹고 마시지도 못하고 수시간의 진통을 이겨내야 했다. 사전에 원치 않았던 특정 의학적 조치들도 어물쩍 넘어가 하게 되는 등 산모가 생각했던 출산 계획이 유지되기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집에서는 그나마 그런 부분들을 신경 쓰지 않고 출산을 했어도 쉽지가 않았는데, 통제되는 환경에서의 출산을 도저히 감내할 자신이 우리에겐 없다.
우리가 첫 아이부터 과감하게 가정 출산을 결정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도움을 주신 분들 덕분이다. 아내는 임신 전까지 자연주의 출산을 도와주는 둘라를 하고 있었고, 함께 일했던 둘라 선생님들이 우리의 출산을 든든하게 지지해주셨다. 참고로 둘라는 비의료인이지만 의료적 개입이 없고, 나오는 아기를 부모가 받으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보통 출산 비용이 상당히 지출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는 자연적인 방식과 더불어 아내의 인덕 덕분에 출산과 육아 비용 지출이 굉장히 적었다고 생각한다. 임신 중의 산부인과 검사 비용은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바우처로 해결했고, 가정 출산으로 인해 병원 출산 비용이 들지 않았다.
또한 대부분의 필요한 아기 용품들은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을 받거나 물려받았다. 산후 조리원도 가지 않았고 집에서 산후 관리사님을 모셔 2주 정도 도움을 받았다. 이 비용도 국가 지원으로 40% 정도만 지불했다. 게다가 모유수유를 하고 천기저귀를 사용해서 분유와 기저귀 비용도 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나라에서 나오는 지원금으로 자산이 플러스가 되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출산 과정은 우리 부부의 삶에 있어 중대한 경험으로 자리 잡았음이 분명하다. 첫 번째로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목도했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이 경험은 큰 가치가 있었다. 보통 남편은 아기가 나올 때 밖에 나가 있어야 하는 병원 출산의 경우와 달리 나는 물속에서 아내와 함께 아기의 머리를 보았고 머리를 살며시 만져주며 아기에게 출산의 마지막 과정을 응원해 줄 수 있었다.
8시간의 진통을 겪는 동안 뜻대로 되지 않았고 고통스럽기도 했던 출산 과정이었지만 이를 이겨내며 힘을 내는 아내를 보니 존경스럽고 그 모습이 아름답다 느껴졌다. 아내가 수축이 올 때 다른 둘라 선생님들이 아니라 나를 찾았는데, 이게 참 고마웠다.
남편이 아내가 아기를 낳는 모습을 전부 보면 이성으로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전혀 공감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더 사랑하고 신뢰하게 된 것 같다. 그 힘으로 출산보다 더 힘겨울 수 도 있는 육아 과정도 함께 잘 이겨내 가고 있다.
분명 너무나도 좋은 경험이었지만 처음 겪는 일에, 또한 나 자신의 미숙함으로 인해 아쉬웠던 점도 분명 많았다. 그중 하나는 진통이 시작되었을 때, 컨디션이 좋아도 모자랄 판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속의 불편함이다. 너무 당황스러운 마음에 그만 더 당황스러운 상황을 겪고 있을 아내에게 내 몸의 상태를 말해버렸다. 나중에 들으니 아내는 이 말 때문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고 했다. 아내가 출산 과정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했어야 하는데 후회가 남았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진통 초기에 수중 분만을 위한 풀장을 준비해야 된다는 생각에 풀장을 닦고 물을 받느라 정신없이 보냈다는 것이다. 열심히 준비했던 풀장을 포기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때에는 강한 수축에 힘겨워하고 있을 아내에게만 집중했어야 했다.
그 당시에는 상상했던 것과 진통 시의 아내의 반응이 많이 달라서 아내와 나 모두 당황했었는데, 당황하느라 천천히 상황을 체크하지 못하고 급하게 둘라 선생님께 연락부터 드렸다. 우리끼리 분만 과정을 보내다가 천천히 둘라 선생님을 부르자고 했던 원래의 계획과는 달라지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급하게 서두르기보다 몸의 상황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아내가 이완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시간을 보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둘라 선생님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당황스러운 상황에도 잘 중심을 잡고 분만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의견이 너무 없었기에 자연주의 출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보다는 둘라 선생님들께 더 주도적으로 상황을 맡기게 됐다.
또 처음에는 진행이 빨라 일찍이 아이를 밀어낼 수 있도록 푸시를 시작했지만 그때부터 진행이 느려져 오랫동안 푸시를 하게 됐다. 아쉬운 점은 나는 조금 더 기다리면서 이완하는 방법으로 출산을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모두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의견을 내는 것뿐인데 혼미했던 정신과 더불어 누군가에게 쉽사리 의견을 전달하지 못하는 나의 단점으로 인해 조금 더 소통하면서 주도적으로 진행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힘을 주며 아기를 밀어내다 보니 당연하게도 회음부 손상이 왔다. 이 과정을 보며 출산을 하고 나면 왜 몸이 변형되는지 왜 산후조리가 필요한지 절실히 알게 됐다.
나는 출산에서 남편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출산이 스포츠라면 아내는 선수이고, 남편은 코치가 된다. 아내가 출산이라는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코치인 남편이 상황을 만들고 유도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내를 대변하여 외부에 의견을 내고 변수를 조절해야 한다.
아내와 출산 과정을 함께 복기해보며 여러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다 보니, 벌써 둘째 이야기가 나오게 됐다. 처음에는 힘들었고 지쳐있었기에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는 정말 우리가 목표로 하는 출산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한 번 이 경험을 해보고 싶다고 둘의 의견이 일치했다. 물론 지금 아기를 돌보며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를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우리의 삶이 흘러갈지 정말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