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맞춤 가구 제작을 처음 배우러 집에서 1시간 45분 거리의 대구에 드나들었다. 이참에 어떤 카페를 가볼까. 기대 속 방문 목록을 채웠다. 그러나 나에겐 단 한차례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내겐 집에서 기다리는 토끼 같은 어린 자식과 그 자식을 하루 종일 보느라 지친 아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어느 날 혼자 일탈을 하러 원래 있던 일정을 내팽개치고 오랜만에 대구로 내달렸다. 그 더운 날 대구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의 카페, 바로 블랙로드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유일무이할 카페 블랙로드에서의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블랙로드는 확실하고 조금은 마니아틱한 컨셉을 가진 카페다. 약간은 회색빛이 감도는 검은색 외관의 카페 건물에 BLACK LOAD COFFEE라는 심플한 문구가 쓰여있다. 입구에 들어서 2층으로 올라가 문을 여는데, 어릴 적 롯데월드에서 혜성특급을 타기 위해 지나가던 길목처럼 모험과 신비의 기분을 느꼈다.
내부로 들어서자 데낄라 한잔 해야 할 것 같은 품격 있는 어두운 조명과 바(bar)가 나를 반겨주었다. 직원들은 모두 탐험가 컨셉의 동일한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바리스타가 내가 첫 방문인 것을 확인하자 입구 앞에 비치된 작은 스탠드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커피 탐험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내 앞에 주어진 작은 세 잔의 커피를 마셔보고 취향 순서대로 재 나열했다. 커피 탐험 안내자 타잔은 내가 배열한 순서를 보고 나의 커피 취향을 알려주었다. 엘리자베스 형.
“당신은 여왕입니다. 새로운 모험과 혁명적인 커피들이 출시되어도 그런 커피가 주류가 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립니다. 당신의 잔에 들어갈 수 있는 커피는 오로지 오랜 세월을 걸쳐 검증된 시대를 상징하는 커피들 뿐! 화려하면서도 검증된, 그리고 모든 면에서 강력한! 최고의 커피를 당신께 드릴 수 있길 기원합니다. 하지만 그런 만큼 당신의 취향을 만족할만한 커피들은 가격이 비쌉니다. 싼 가격대에서 당신의 취향을 만족할만한 커피는 에티오피아 내추럴뿐… 비싼 입맛은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게이샤 커피를 드세요!” - 뉴비 커피 도감 중에서 -
커피 취향 분석이 끝나고, 마신 커피를 기록할 수 있는 뉴비 커피 도감을 받아 들고 바에 한 자리를 차지했다. 커피 도감을 전부 채우면 중급 탐험가로 승급하고 중급 탐험가 뱃지를 준다고 한다. 바에 앉자 분석된 취향대로 바리스타가 “페루 라 솔리다리아 게이샤 워시드”를 추천해 주었다. 바리스타와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커피에 대한 설명도 듣고 집중해서 커피를 마셔보았다. 마신 커피에 대해 도감에 기록해야 하기 때문이다. 커피에만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에 커피 맛도 훌륭하여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잠깐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만약 내가 대구에 살았다면 최고 등급의 탐험가가 되었을 텐데 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