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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께밭 Feb 19. 2019

쉬어가기

휴학


  학교를 다닌 지 벌써 3년, 남은 기간 또한 3년. 보통과 다른 6년의 학사과정은 휴학을 쉬이 허락지 않았다. 간혹 휴학을 하는 소수의 학생들은 매번 동기들 사이에서 입방아에 올랐고, 무엇 때문에 휴학을 했는지는 항상 과사람들의 관심사였다. 그만큼, 우리 학과에서 휴학은 참 특수한 경우였다.     


 가끔 괜스레 휴학을 하고 싶은 적은 있었다. 꽉 막힌 학과 생활을 벗어나 자유로운 대학생이 되고 싶었다면 우스운 이유일까. 그래, 조금 우습다. 말이 휴학이지, 빠졸(빠른 졸업)이 유행어일 만큼 휴학은 그저 투정 섞인 우스갯소리였다.


  그러다, 나는 아버지를 잃었다.


  한 평생 나의 우상이었던 아비를 잃었다. 갑작스러운 이별은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기 충분했다. 그만큼 그는 내 삶의 큰 부분이었기에.


  무엇 하나 아빠와 함께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유년기, 청소년기 모두를 되돌아보아도 야속하리만치 모두 그와 함께였다. 매 순간 아빠와의 이별을 부정하면서 기적과 희망을 주문현실을 회피해왔던 나라 갑작스러운, 사실 갑작스럽지 않았을지도 모를, 이별은 끔찍했고 괴로웠다. 차라리 희망도 기적도 바라지 않으며 살아왔다면 덜 괴롭지 않았을까 라는 뒤늦은 후회는 정말 말 그대로 뒤늦었다.

      

  학교 수업은 잔인하게도 매일 누군가의 아픔을 가르쳤다. 모든 병증과 증상이 아빠를 향하는 듯해 도저히 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파했던 아빠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서, 그 고통 옆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던 내가 무력해서, 그런 무력한 내가 우습게도 그 고통을 활자로 배우고 있어서, 그렇게 배워 그 고통을 치료해주는 의료인이 되어야 하는 처지라서.  

    

  정말 버티면서 남은 학기를 다녔다. 수업을 듣다  아빠의 아픔냉정 표현될 때면 도저히 들을 수가 없어서 뛰쳐나가곤 했다. 병리학 교재의 암 파트는 계속 볼 엄두가 나질 않아 빈 종이로 가려놓기도 했다. 밤이 되면, 밤마다 잠들지 못해 괴로워하던 아빠의 모습이 떠올라 잠들지 못했다. 이 새벽에 눈을 감았을 아빠의 모습이, 차갑게 식어 있던 아빠의 얼굴이 떠올라 새벽마다 좁은 원룸 방의 적막을 깨며 울부짖으면서 밤을 새웠다. 그렇게 남은 학기를 다녔다.   

   

  휴학을 해야만 했다.

내 정신 상태로는 도저히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다. 친구들도, 엄마도 모두 만류했지만, 이 시점에서 쉬지 않는다면 남은 학기 동안 나는 산산조각 나버릴 것 같았다.


  엄마에게 부탁했다. 1년간 아빠를 떠나보낼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아빠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추억하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아빠와 함께 걸었던 길들을 되돌아보고, 그 발자국들을 다시 찍어볼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그렇게 해서 아빠의 죽음을 마주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나는 남은 학교 생활 동안 계속해서 아빠의 죽음을 변명삼아 절망에 허우적거릴 것이라고...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손을 맞잡고 한참을 울었다.



  휴학을 하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특별한 무언가를 하기 위한 쉼이 아니였기에 더 억지로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빠가 선물해준 소중한 시간이라, 무언가로 덧칠하고 싶지 않았다.


  1년 중 반년 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들을 보냈지만,  나머지 반년 간은 아빠와의 약속을 위해 떠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용기 있게 떠날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이 곳에 기록하고자 한다.


 사주에도 없는 역마살을 아빠로부터 물려받아, 지키지 못한 약속을 뒤늦게 지킨 딸의 이야기다. 




"오늘도 이별의 하루가 지나, 꿈이 되면 그대를 찾아갈래요.

그대를 따라갈래요. 당신의 발자국에 맞춰 내가 살아갈래요."

                                         -에픽하이, 당신의 조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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