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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께밭 Feb 23. 2019

배낭을 메다.

1. 역마살


  유독 떠나는 것을 좋아하시던 아빠는 역마살(驛馬煞)을 지닌, 타고난 여행꾼이었다. 그 덕에 어릴 때부터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집을 비우곤, 전라도 땅끝에서 경상도든 강원도든, 산이든 바다든 전국을 누비며 여행을 다녔다. 전국 곳곳에 추억이 서린 곳 투성이다.


  중학생 때는 가족 네 명이 전부 배낭을 메고는 유럽으로 떠났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에 여행 책자 하나에 기대 한 달간 배낭여행을 다녀왔었다. 여행은 배낭을 메야한다고, 패키지는 여행이 아니라던 아빠의 여행 철학은 어찌 보면 꼰대스럽기도 하지만,  우리 가족에겐 여행 지침과도 같았다.


  그렇게 아빠와 함께한 수많은 여행은 내게 떠나는 법, 여행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나는 혼자 끊임없이 떠나려고 했다. 어디든 어디로 다녀오는 것이 왜 이리도 즐겁던지. 전부 아빠가 물려준, 사주에도 없는 역마살 때문이었으리라.



2. 세계여행


  아빠가 떠나기 1년 전 즈음,  아빠는 내게 휴학을 하고 둘이서 세계여행을 다녀오자고 제안했었다. 아마도 아빠는 마지막 여행임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럴까, 휴학이나 하고 아빠랑 세계나 누벼볼까?

웃으면서 가벼이 회답했었다. 가벼운 대답이었기에 지키지도 않았다.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으니까.



아빠가 떠나고 휴학을 하게 되었고,

그 말도 안 되는 대답을, 지키지 못한 약속을, 지켜보고

나는 뒤늦게 배낭을 메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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