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세이]
길로 보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삶이란 미행지를 대하는 하야오만의 시선

by 영화돋보기

지브리 스튜디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자연과 조화를 중시하는 생태주의. 폭력을 반대하는 평화주의적 성격을 그의 작품들에서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 강력한 특징은 우리의 삶을 토대로 한 상상들을 시각화하는 마법을 부린다는 것이겠죠.


이따금 지인들이 제게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물으면 매번 고민이 됩니다 . 좋은 작품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러나 최고의 애니메이션을 고르라고 하면 주저 없이 지브리 스튜디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말합니다. 이는 아마 앞으로도 바뀌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제게 특별한 이유는 우리 삶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말하는 우리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절대 뒤돌아 보지 마.

길은 걸어온 이들이 누적한 퇴적의 역사다. 이 영화는 하야오의 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은 여러 수식어로 불립니다. 자연주의, 반전주의, 회고의 성격이 담긴 작가주의 영화, 어른들을 위한 동화, 애니메이션의 존재 이유 등 다양한 수식어로 불립니다. 저 또한 매우 공감하는 수식어들입니다. 그리고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도 이러한 특징이 대부분 담겨있지만 제게는 특별한 하나가 더 느껴진 작품이었습니다. 바로 후회입니다.


후회는 과거를 되돌아본다는 말입니다. 후회할 때 머리에 아른거리는 것이 한 때 마음을 부풀게 했던 노스탤지어의 정취일지 또는 통탄 섞인 발자취일지 모르지만 무엇이 되었던 후회라는 감정은 결국 스스로에게 하는 자기 고백입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하는 고백에서 자기반성과 실행이 수반되었을 때, 비로소 성장하고 나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후회를 통해 성장한다는 당연한 진리는 우리 삶에 있어서 매우 귀중하고 가치 있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치히로가 겪는 신비한 모험으로 후회하더라도 곧게 나가아가야 얻을 수 있는 성장의 가치를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전합니다.


이 영화 속 길에 주목하자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行方不明)에서는 여러 종류의 이 나옵니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이삿짐을 한 아름 실은 차 안에 누워있는 치히로를 비춥니다. 이윽고 카메라는 구불구불한 산 길을 비추죠. 그 외에도 숨을 찾아야 건널 수 있는 다리, 절대 뒤돌아보면 안 되는 터널, 수면 아래 길게 뻗은 기찻길, 하쿠와 함께 날으는 하늘길, 모험 이후 아득히 멀어지는 터널과 이제는 유유히 내려갈 수 있는 산 길 등 여러 종류의 길이 등장합니다. 길로 시작하여 길로 마무리되는 이 영화에서 길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선 이 작품의 오프닝은 도로를 지나 구부진 언덕과 거친 산 길을 오르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렇게 불길해 보이는 돌상 앞 터널을 지난 후, 그녀가 한 눈을 판 사이 부모님들이 돼지로 변해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당황하던 일순간 신들의 세계로 당도한 치히로는 평탄치 않은 모험을 시작하게 됩니다. 숨을 참지 않으면 지날 수 없는 신계의 다리, 가마 할아버지에게 부탁하러 가는 무섭고 험난한 계단길, 하쿠의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 유바바에게로 떠나는 기찻길. 마지막으로 절대 뒤돌아보면 안 되는 터널까지!


치히로가 신들이 세상에서 지나온 길들은 올곧은 마음 없이는 지나기 어려운 길들 뿐입니다. 이제 막 청소년기에 접어든 소녀 치히로가 이 기상천외한 여정들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던 이유는 도와준 이들을 올곧게 사랑하고 돈에 구애받지 않으며 요령 없더라도 정직한 방식으로 다가오는 문제를 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기상천외한 이야기는 신들의 세계를 용감히 모험하는 소녀의 성장 로드뮤비이자 미야자키 하야오가 말하는 감동적인 성장의 본질이자 가치입니다.


영화 속에서 치히로가 지나온 길들은 다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 속 그녀가 새로운 길을 마주할 때마다 매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합니다. 그러나 요령은 없더라도 곧은 마음으로 나아갔을 때 목적지가 어딘지 알 수 없던 여정들은 익숙하거나 쉬운 길로 변모합니다. 그 예로 다시 되돌아오기엔 지난했을 그 기찻길이 사랑스럽고 빠른 하늘길이 된 것처럼요!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行方不明)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삶이라는 미행지에 던져진 소녀의 모험기를 다루고 있으니 너무 좋은 제목이 아닐 수 없죠.


고로 이 영화에서 길은 행선지를 알 수 없는 모험의 과정이며, 이는 우리의 삶에 강력하게 은유됩니다. 치히로가 겪는 기상천외한 모험들은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우리의 삶과도 같으니까요.


그러니 무섭더라도 곧게 나아가보아요. 그녀처럼요.


잊을 수 없는 꿈같은 경험 그보다 소중한 것은 앞으로 나아갈 지금

이 영화의 마지막,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는 하쿠의 말을 끝으로 치히로가 다시금 터널을 지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왜 하쿠는 그녀에게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고 했을까요? 뒤를 되돌아보는 행위에 새겨진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겠죠. 이와 관련된 신화, 오르페우스 신화가 있습니다. 아내 에우리디케를 구하기 위해 오르페우스가 어두운 동굴을 지나는 이야기죠. 신화 속 지옥의 신 하데스는 그녀(아우리디케)를 지옥에서 꺼내주는 대신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뒤돌아보면 안 된다는 말을 하쿠와 같이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모습을 다루는 모든 신화가 그러하듯 그는 결국 뒤를 돌아보고 아내 에우리디케는 다시금 지옥으로 끌려가게 되죠.


철없던 어린 시절, 오르페우스가 아내를 구하지 못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안 보면 되는 것을 궁금증 하나 때문에 그가 일을 그르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문제에 대해 남탓만을 해오던 어렸던 저를 뒤로하고 수년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이 이야기 속 오르페우스가 뒤돌아본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후회들에 새겨진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후회라는 돌멩이에 박혀버린 회한과 지난 실수에 대한 미련이 오르페우스의 마음을 삼켰고 아내를 다시금 지옥으로 밀어 넣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죠.


당신이 뒤를 돌아봤을 때 먼저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요.

목적지를 알 수 없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일은 언제나 무섭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치히로처럼 두 발로 곧게 부딪혀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난 후 되돌아보겠습니다. 그때 보이는 것이 후회라는 잔여물만이 아닌 적어도 한 뼘쯤은 성장한 내가 담담히 서있기를 바라면서요.


그리고 지금 어두운 터널 초입에서 망설이고 있거나 터널 안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적어도 지금은 되돌아보지 않기를. 눈앞의 지금을. 현재에 최선을 다했을 때, 어려웠던 길들도 조금은 수월해질 테니까요. 그러니 적어도 지금은 무섭더라도 묵묵히 앞을 바라봅시다. 그녀가 줄곧 무서워했던 터널은 다 지나고 되돌아봤을 때 두려움이 아닌 담담함을 내비쳤던 것처럼 우리도 담담하게 과거를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그리고 새롭게 다가올 목적지 모를 모험에 두려움 보단 조금 더 용감하게 걸을 수 있는 저와 우리가 있기를 바라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