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글쓰기와 나

by 영화돋보기


영화 글을 쓰다보면 묘하고도 익숙한 기시감을 느끼곤 한다. 그리고 그 느낌 끝에 맺히는 잡념들은 "나 지금 뭐하는 걸까" 하는 그런 자각들이 머리 속에 안개처럼 자리잡는다.



내게 영화 글은 큰 실익은 없다. 우선 블로그를 포함한 투고 사이트들을 마케팅용 채널로 키울 생각도 크게 없었기에 금전적인 보상은 기대하지 않았고, 그 결과 당연하게도 많은 이들에게 노출되지 않았다. 사실 어차피 실패할 것에 시간을 쏟기 두려워 진심을 다해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비겁하지.



아무튼 영화 글로 용돈이라도 좀 벌어볼까하는 나의 의지는 진작 매말라버렸지만, 그럼에도 글을 쓰는 행위를 놓지 못하고 지속하는 큰 이유는 오직 기록(아카이빙)과 아주 이따금 달리는 귀중한 관심들 덕이다.


실제로는 대세에 어울리지 못하면서 감투가 싫다는 핑계로 내 맘대로 휘갈긴 글을 배설하는 의미를 그래도 몇 개 더 찾는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 눈치 안보고 말할 수 있다는 것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픈 마음이랄까.



이 마음을 조금 빗대어 표현하자면 등산과도 같다. 영화라는 작은 산을 혼자 등정하고 뿌듯하게 달성한 풍경을 보며 야호를 외치는 느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영화라는 나만의 작은 언덕을 올랐을때의 작은 성취감.



"나 산에 올라왔어~!" 라고.



아무튼 스크린 위로 영사되어 눈에 담긴 특별한 이야기가 나를 거쳐 글로 나왔을 때, 모르는 타인에게 작은 의미가 되길 바라는 무용한 생각과 미련에 의해 계속하는 것 같다.




나는 이따끔 침대에 누워 의미 없는 문답을 한다.



이르면



"나는 영화를 왜 좋아할까?"



"그야 재밌으니까!"



그럼 나는 뭐에 재미를 느낄까?



"그건 영화마다 다르지."



또는



"내 리뷰를 보고 영화에 관심을 가져줄까?"



"이번 글은 너무 감성적인가?"



등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꼬리를 물며 하곤 한다. 마치 끝나지 않을 폐곡선을 빙빙 도는 듯한 문답을 지속한다.



하여간 왜 영화를 좋아할까 라는 질문을 몇 년간 스스로 주기적으로 했고, 최근 이런 문답을 반복하는 이유를 찾았다.



'지금을 충실히 사랑하지 않아서'가 결론 끝에 나온 답이었다.



그럼 현재를 '크게' 사랑하지 않는 건 행복하지 않은 걸까?



여기에 대한 생각은 '그건 또 그렇지 않아' 였다. 과거 만큼은 아니여도 나는 적어도 어제보다 조금 더 행복하다.




내 눈에만 담기는 1인칭짜리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어려워졌고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기에 다가오는 일을 정직히 마주하는 것이 아닌 회피를 했다. 매번 정직히 대하기에는 머리 아프니까. 그렇게 하루를 보내며 겪는 사건들, 예기치 않게 부닥치는 여러 일들은 감정에 도달하기까지 거리가 내겐 필요했다.



그렇게 회피한 시간이 조금 지나야 마음에 충격이 갔고 그보다 더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서야 "아 그땐 내가 우울하고 슬픈 거였구나", "그 시간이 생각보다 더 소중한 것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나중에서야 불어 닥쳤다.



이처럼 매번 회피하는 멍청한 내게 영화는 프레임을 통해 삶을 좀 더 다각도로. 그리고 3인칭으로 나를 보게 해주었다. 그러니까 영화는 조금 느려져버린 감정의 시차를 조금 줄어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나는 영화로 세상을 간접적으로 느꼈다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원체 무딘 인간이고 지금을 엄청 사랑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영화는 내게 다소 해롭다. 영화 속 세상은 현실의 반영이자, 현실처럼 보이는 거짓에 취하는 일이다. 즉, 영화 속 세상은 모두 거짓인 동시에 해로운 술과 담배와 같다. 만약 영화에 너무 깊이 빠져버렸다면 언제가는 현실로 빠져나와할 중독물질 같은 것이라 생각이 종종 든다.



그 예로 좋은 영화는 마치 스스로가 대단하고 교양이 쌓인듯한 착각, 많은 책을 보고 많은 경험을 한 듯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이는 이내 교만해지기 쉬운 것 같다. '나 이런 영화도 알아~', '이 영화를 보니 이런 관점이 맞는 것 같아~' 하는 내 자존감에 1도 도움 안되는 거추장스러운 자긍심 같은 것들 말이지.



그렇기에 영화 속 타인의 삶을 감독의 시선으로 잠시 본 게 내 삶의 메인 가치관과 생각으로 잡히는 것을 매우 경계한다. 가치관은 직간접적인 경험들이 내 안에 지층이 쌓이듯 점차 퇴적해나가는 것이니까.



만약 영화를 보고 중요한 가치관을 배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면, 그건 감독이 그렇게 느끼도록 연출하고 만들어졌을 뿐인 허상이다. 여기에 빠지면 위험하다는 생각을 한다. 현실과 영화 속 세상은 비슷하지만 다르니까.



이처럼 현실 감각을 둔하게 만드는 영화는 감정의 시차를 줄여주는 동시에 뭔가를 깨우친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마치 손흥민의 축구 경기를 본다고 내가 그처럼 뛸 수 있고 득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과 같은 환각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절대 그럴 수 없다. 프로 체스 선수나 바둑 선수의 경기를 많이 본다고 깨달음을 얻어 그들처럼 우수한 경기를 펼칠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다. 거기에는 내 시간이 녹아있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내가 적어내린 글들은 내 시간이 녹아있다. 라며 작은 위안을 삼아본다.




최근은 영화를 보는 양을 줄였다. 당연히 영화를 본 수가 주니 글을 쓸 수 없어졌다. (핑계+1)



적어도 안 본 영화를 쓸 수는 없다. 최소한 영화에 국한해서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으니까. 암튼 작품을 덜 보는 것이 이전보다는 지금을 조금 더 사랑해보려고 하는 시도인데, 사실 이게 맞는 일이지는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영화를 보고 분석하는 나를 좋아하긴 하니까. 이러다 다시 관성처럼 또 도망치고 자괴감 느끼고, 다시 영화를 보고 슬그머니 글쓰러 기어올 수도 있지만 이젠 그러러니 하려고 원래 나는 이러니까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이전보다 바뀐게 있다면, 이제는 "나 지금 뭐하는 걸까" 보단


"그래도 나 잘하고 있지?"로 생각해보려고 �


(매주 토,일 연출로 보는 영화와 시네마 인사이드로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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