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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말 서재 Sep 15. 2024

나만의 장수 비결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길 -  열두번째 이야기

오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분명 100살까지 산 사람은 80까지 산 사람보다 오래 산 사람이다.

그런데, 100년간 살고도 죽기 직전에 펼쳐지는 주마등에 채워질 추억이 80세까지 산 사람보다도 적다면, 과연 죽음을 앞에 두고 나는 충분히 살만큼 살았다고 웃으며 눈 감을 수 있을까?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10년 정도 지났을 때의 일이다. 문득, 3년 전에는 무슨 일들이 있었지? 아니 첫 입사 후 5년차 때는 무슨 일들이 있었지? 이러한 단순한 질문들이 떠올랐고, 이들 질문에 곰곰이 생각해도 별로 생각나는 게 없는 내가 과연 정상인가 의문이 들었다. 희한하게도 대학 생활 기간은, 더 오래 전인데도 불구하고 1학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2학년 때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몇 가지씩은 기억난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최근이면서 오랜 기간인 나의 직장 생활은 매년 똑같았던 건지, 결혼하거나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과 같은 빅 이벤트 말고는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혹시 내 기억력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곰곰이 지난 10년을 억지로 돌이켜 생각해 봐도, 분명 기억은 존재하지만 추억처럼 떠오르지는 않았다.


우리는 태어나서 초등학고,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를 나오면서,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매년 다른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취업 이후에는, 직장을 변경하지 않는 한, 한 직장 내에서의 삶은 1년이 지나던 3년이 지나던, 한해 한해를 구분지을 만큼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건들이 별로 없다. 그래서 직장인들은, 열심히 살다보니 어느새 세월이 훌쩍 지나버렸다는 하소연을 하나보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내가 60살을 살든 100살을 살든, 지금처럼 10년간의 직장 생활 동안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면, 과연 나는 죽기 전에 충분히 살 만큼 살았으니 편히 눈 감을 수 있을까?

남들이 바라보는 장수가 아닌, 나 스스로가 느끼는 상대적인 장수의 비결은, 실제로 몇 살까지 살았는 가가 아닌, 살아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추억을 쌓았는 가로 결정지어지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매년 아무 생각 없이 흘러 나이를 먹는 그 자체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한 해 한 해를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으로 채울 수 있을까. 막연하게 매 순간을 의미 있게 살도록 노력하고, 자기 전에 일기도 써 보자고 마음먹어 보지만, 사실 그때뿐 시간이 지나면 지난 10년과 다를 바 없는 나로 되돌아갔다.


그러다, 내가 실천하기에 쉽고 확실한 방법 하나를 찾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여행이다.

여행은 매번 다른 여행지에서 다른 추억을 남길 수 있는 만큼, 한 해 한 해를 채워갈 추억을 쌓기에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첫 직장이던 L사를 다니던 10년 동안, 5일 이상의 휴가를 보낸 적이 딱 두 번뿐이었다. 당시에는 주말조차도 제대로 쉬기가 어려웠던 시절이라, 일주일 이상 휴가를 간다는 것 자체가 큰맘을 먹지 않는 한 어려웠다. N사로 이직한 이후, 나는 동안의 습관을 버리고 매년 한번은 가족과 5일 이상 여행을 가고자 했다. 지금 같아서는 당연히 한 해 한번 떠나는 여행인만큼 해외여행을 계획했겠지만, 뭘 해도 해본 놈이 잘한다고, 지금껏 휴가 기간을 여행으로 채워본 적이 거의 없던 내가 처음 시도했던 여행은 제주 여행이었다. 해외여행은 부담스럽고, 그래도 적어도 비행기는 타줘야 매년 기억에 남을 만한 큰 이벤트로 여겨질 것 같아서, 대안으로 생각한 게 제주 여행이었다.


한 3년간 제주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야 드디어 큰 맘 먹고 해외 여행을 결심했다. 아주 오랜만에 가는 해외여행인 만큼, 어머님과 장모님까지 모두 모시고 다녀오는 것으로 계획했다.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다보니, 이 정도의 큰 비용을 들여 꼭 여행을 다녀와야 하는 걸까 의구심도 있었지만, 막상 다녀오고 나니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여행이 주는 만족은 단순히 여행 기간 동안의 재미만은 아니었다. 각자가 나름의 추억을 만들고 돌아온 후에도, 한 1년간은 모이기만 하면 당시 여행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러면서 다음 여행의 꿈을 다시 키워나갔다.


이때부터 나는 매년 가족과 해외여행을 다닌다. 마치 도장 깨기처럼, 안 가본 나라들을 하나씩 정해서 다니기 시작했다. 심지어, 남들은 자녀가 고1 때부터 입시 준비하느라 가족 여행은 생각도 못 한다던데, 나는 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일 때까지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아마 담임 선생님께서는 차마 말씀을 못하셨겠지만, 학원 선생님은 아이한테 제정신이냐고 물으시기까지 했다. 차마 첫아이가 고3이 되었을 때는 아이와 함께 여행을 갈 수는 없었지만, 이때에도 나는 둘째 아이와 둘만의 여행을 다녀왔다. 마찬가지로 둘째 아이가 고3일 때는 첫째 아이와 여행을 다녀왔다.


매년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가려면 꽤 부담스러운 비용이 든다. 하지만 그 가치를 생각하면, 다른 데 사용하는 비용을 아껴서라도 기꺼이 가족 여행에 투자하게 된다. 나는 13년 된 중형 세단을 아직도 몰고 있고, 와이프도 직장 생활 때문에 차량을 이용하는 데 경차를 이용한다. 이렇듯 다른 곳에 드는 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여행에 기꺼이 비용을 투자하는 것은 나의 가치관일 뿐이다. 


덕분에 지금은 지난 시간들 중 집어서 년도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적어도 어디에 여행을 다녀왔다는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 외에도, 회사일적으로나, 자기 개발 관점에서도 매년 한 가지씩 두고두고 기억날 만한 것들을 남기고자 노력한다. 유럽 법인을 설립해 본 것도, 개인적으로 소믈리에 자격증을 딴 것도,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지난 시간들을 기억나게 할 추억이 되었다.


앞으로도 내 몸이 허락하는 한, 가족과의 여행은 지속할 것이다.  아마 나이들어 죽기 전에 주마등처럼 지난 날을 떠올릴 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넘치는 추억 덕분에, 난 참 충분히 오래 살았구나 하고 후회 없이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만의 장수 비결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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