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대화가 많지 않아도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고, 일을 함께 할 때도 어떤 신뢰가 쌓여 있습니다. 이런 감정은 호감으로 번져 손해를 좀 보더라도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합니다.
브랜드에게서 이런 감정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나를 닮은 무언가를 만나는 순간인데, 무인양품이라는 브랜드가 저에게 그렇습니다. 화려하지 않은 색과 패턴이 만들어내는 심플함, 군더더기 없이 기본에 충실한 형태, 과하지 않은 적당한 가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마 제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을 무인양품도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이 오롯이 담긴 제품들로 만들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초기의 브랜드는 구분의 도구였습니다. 누구네 가게에서 만들었다는 표시였지요. 이것이 발전해서 신뢰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이 브랜드를 선택하면 실패하진 않는다는 기준이자 메시지가 된 셈이지요. 지금의 브랜드는 한 단계 더 발전하여, 라이프 스타일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보여주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고유의 영역을 넘어 다른 분야로 확장하는 브랜드가 많아지고, 이것이 어색하지 않아졌다는 사실이 이런 역할 변화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박함과 간결함으로 요약되는 무인양품의 철학과 스타일은 의류부터 문구, 생활소품, 식품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적용됩니다. 그리고 그 일관된 스타일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드러내는 방법으로서 기능합니다. '과시적인 화려함에 대한 거부, 내실 있는 소박함의 지향'같은 것이 제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인데, 이것은 무인양품이 가진 철학과 스타일로 연결되어 무인양품을 소비하는 이유와 의미로 이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무인양품의 카피들도 참 좋아합니다. 보통의 브랜드 매장은 '완벽하다거나, 최고라거나, 세상에 없었던' 같은 자극적인 수식어로 가득 차게 마련인데, 이곳의 카피는 참 정갈합니다. '잘 벗겨지지 않는다는 양말, 쉽게 꺼지지 않는다는 쿠션, 펜으로 적을 수 있다는 줄자, 흔들면 나온다는 샤프'처럼 제품이 가진 핵심적인 특징을 그들의 스타일처럼 소박하고 단정하게 적어두었습니다.
최근에 무인양품 매장을 잠시 들렸는데, 공간의 여백이 점점 주는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몇 달 전에는 광고 속 커다란 글씨에 이질감을 느끼기도 했었습니다. 무인양품만의 소박함과 간결함을 잘 유지하며 오랫동안 좋은 브랜드로 남아주길 바라면서 이번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