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의 반짝이던 눈망울을 기억한다. 그때 나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이의 야심과 세상 물정 모르는 하룻강아지의 패기가 과도하게 혼합되어 지나친 흥분 상태였다. 사무실에서는 선배들에게 시킬 일이 없는지 자주 물어보았고, 새로운 기획안을 써봤는데 한 번 봐달라며 애교를 부렸다. 집에 돌아와서는 성공한 이들의 인터뷰나 자기계발서를 들춰보며 그들처럼 번듯한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의욕은 찰나였다. 일한 지 2년쯤 지났을까, 급격한 현자 타임이 찾아왔다. 어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일을 하며 자연스레 스며든 감정이었다. 신입사원에게 주어진 일이란 무척이나 작고 단순한 일이지만, 나름대로 무언가 새로운 걸 해보겠다며 이런저런 기획안을 자주 만들었다. 그걸 보고했다 까이고 가끔 추진하며 절로 체득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회사에서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하나 없구나...’ 아이디어를 내서 무언가를 시도하려고 해도 상사들은 게임 속 악당 캐릭터처럼 단계별로 팔짱 끼고 앉아 있는 것 같았고, 무얼 하더라도 잔소리가 많았다. 보고가 통과된 다음에는 도움을 받기 위해 다른 부문에 가서 굽신굽신해야 하는 절차가 남아 있었다.
그날도 회사에 관한 회의를 잔뜩 품은 채 집에 돌아왔던 거로 기억한다. 여기저기 얻어맞아 그로기 상태에 빠진 복싱선수처럼 침대에 누워 TV를 켰다. 마침 연예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초점을 잃은 멍한 눈으로 ‘텔레비전 멍’을 때리고 있다 보니 배우 하정우가 나왔다. 미술 전시회를 연 그를 리포터가 찾아가서 인터뷰하는 내용이었다. 지금은 희뿌연 기억이지만 리포터는 이런 질문을 했던 것 같다.
“하정우 배우님이 생각하시는 미술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뭐 미적인 아름다움, 숭고함, 고상함 같은 우아한 단어를 늘어놓겠지. 하지만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영화라는 공동의 작업에서 채울 수 없는 부분을 미술이라는 개인 작업을 통해 채울 수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누군가는 그의 이야기에 눈이 번쩍 떠지는 기분을 느꼈겠지만, 그날 나는 거리에서 신을 만난대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지친 상태였다. 멍한 눈으로 티브이를 보던 나는 솔직히 ‘뭐래...’하는 마음으로 건성으로 그 순간을 지나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르르 잠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의 말이 자꾸 생각났다. 다음 날에도 다음다음 날에도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정우면 작품마다 주연을 하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영화에서 채우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그리고 그걸 미술이라는 개인 작업으로 채워? 문득 이게 회사 일에 현타가 세게 온 내게 중요한 가르침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일이란 공동의 작업이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 주체성을 얻기는 어렵지. 어쩌면 나는 회사에서 얻을 수 없는 걸 그간 바라 온 거고. 마치 추운 나라에서 열대 과일을 찾는 사람처럼. 하정우 배우가 그렇듯 나도 회사 일을 통해 느끼는 부족함을 개인적인 작업으로 채워야 하는 거 아닐까?’
내게도 개인 작업이 필요하단 걸 깨닫고 몇 가지 후보들을 시도해보았다. 우선 서점에 방문해 드로잉 책을 산 다음 스케치북에 따라 그려보았다. 최악이었다. 볼펜을 그렸는데 볼펜이 볼펜 같지 않았고, 내 손을 그렸는데 안 그래도 못 생긴 손이 더 못 생겨져 있었다. 중학교 미술 시간에 공격수의 슈팅을 몸을 날려 막고 있는 골키퍼를 그렸다가 미술 선생님에게 “도대체 뭘 그린 거냐?”며 핀잔을 듣던 일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림은 안 되겠다 싶었다.
베이킹 원데이 클래스에도 나가 봤다. 수업을 이끄는 사람의 말을 따라 재료를 섞고 주무르고 자르고 구우면 스콘이 되는 수업이었다. 제법 맛도 괜찮은 결과물을 베어 먹으면서 베이킹을 좀 더 배워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보니 낡고 좁은 집에는 반죽을 숙성하고 그걸 구워낼 냉장고와 오븐을 둘만 한 공간이 없어 보였다. 운동을 하겠다며 샀지만, 방구석에서 먼지만 쌓여 가는 아령처럼 결국 돈 낭비하는 꼴이 되진 않을까, 싶어 손사래 쳤다.
그러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노트북이 보였다. 마침 몇 달 전부터 일기를 쓰고 있던 차였다. ‘우선 글쓰기를 해보면 어떨까?’ 대단한 독서가라고는 할 수 없지만 평균보다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고 활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니 제법 잘 어울리는 개인 작업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솔직히 글 쓰는 일은 투자 비용도 없잖아, 하는 셈법도 있었다. 시작하기 부담 없어 보였고, 시작하고 그만두더라도 손해 보는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일기를 쓰던 습관을 이어받아 한 주에 하나씩 주제를 정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잘 되진 않았다. 주제가 잘 떠오르지 않았고, 글은 거칠었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길게 이어가기가 어려웠다. 어딘가에 공개해두기엔 부끄러워 네이버 블로그 비공개 글로만 쌓아두었다. 그래도 꾸준히는 했다. 쓴다는 건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글을 통해 묵은 감정을 해소하는 시원함이 있었고, 사색을 통해 나름의 깨달음을 얻거나 좋은 문장을 썼을 때 느껴지는 희열과 카타르시스가 있었다. 그 재미 덕분인지 퇴근하고 돌아와 글을 쓰고 글을 쓰기 위해 무언가를 보고 경험하는 삶의 패턴이 오래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운이 좋았는지 책 한 권이 나왔고(비록 잘 팔리지 않아 편집자의 시름을 깊어지게 했지만), 잡지사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기도 했다. 작은 돈벌이였지만, 수입을 떠나 삶의 한 부분을 단단하게 일궈나간 시간이었다.
작년 말, 갑작스럽게 직책이 바뀌면서 몇 달간 무척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간 글을 쓰며 나름대로 일과 삶의 균형을 잘 잡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무거운 추들이 일 쪽에 몇 개 추가되니 균형이 깨졌고 나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그래서 요즘은 짧은 시간일지언정 몇 글자라도 쓰려고 애쓰고 있다. 주제를 잡는 것부터 쓰고 고치는 것까지 자신의 힘으로 해야 하는 글쓰기를 하고 있으면 삶의 운전대를 잘 잡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변변찮은 인생이지만, 내 의지와 생각으로 한 발씩 내딛고 있다는 실감이 생긴다. 나는 이것이 개인 작업이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으로 시작해 내 의지로 마무리 짓는 개인 작업을 하고 있으면 회사에서 느끼는 주체성의 틈을 조금은 메울 수 있게 된다.
어쩌면 개인 작업은 인생의 보조 바퀴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서툴고 어리숙한 나는 인생이란 자전거 타기에서 자주 넘어지지만, 글쓰기란 개인 작업이 있어 조금은 덜 흔들리고, 조금은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잘 산다는 건 내게 필요한 보조 바퀴를 찾고 만들어 적당한 위치에 매다는 과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