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병이 사라졌다

by 송정훈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일 년 남짓 지났을 때였다. 몇 가지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며 친해진 차장님이 아침부터 나를 찾았다.


“커피나 한잔하러 갈까?”

“네, 좋죠.”

카페가 있는 1층으로 내려가면서 유독 피곤해 보이는 차장님께 물었다.

“차장님, 오늘 무슨 일 있으세요? 얼굴이 많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요?”

그러자 차장님이 대답했다.

“별일은 없어. 월요일이라 그런 거지, 뭐.”

그의 말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아니, 차장님은 회사 생활을 스무 해 넘게 하고 계신 분인데, 그런 분이 아직도 월요병을 겪고 있어?’


나는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 일요일 오후부터 느꼈던, 흔히 월요병이라고 불리는 우울감을 이십 년이 지나도 계속 느껴야 한다는 건가? 이건 갈수록 적응되고 줄어드는 게 아니라 계속 끌어안고 가야 할 불치병이었던 거야? 갑자기 절망이란 이름의 돌덩이가 내 마음에 툭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 후로 월요병은 매주 마주해야 하는 질병이었다. 일요일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 점점 빛을 잃어가는 세상처럼 내 마음도 어두워졌다. ‘내일 회사를 가는구나, 내일 회사를 가..’. 이런 생각 때문에 일요일 저녁에 하는 일은 뭐든 다 재미가 없었다. 이상하게 일요일 예능 프로그램은 토요일 예능보다 재미가 없는 것 같고, 일요일에 좋아하는 식당을 찾아 외식을 해도 영 맛이 덜한 것만 같았다.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보고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려 해도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월요병을 줄여보려고 여러 종류의 노력을 해봤다. 일요일에 출근하면 월요병이 없어진다고 해서 일요일에 나간 적도 몇 번 있었는데, 월요병이 좀 줄어들긴 하지만 대신 그만큼의 짜증을 일요일에 미리 받는 기분이었다. 월요일 아침에 운동을 하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싶어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를 뛰어보기도 했는데 하루가 너무 길고 고단했다. 차장님의 말에 개인적인 경험이 덧대어지며 월요병은 어쩔 수 없는 것, 노동자라면 누구나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확고하게 굳어졌다.


그사이 회사를 옮기고 이직한 곳에서도 6년쯤 일했을 때, 갑자기 장마 기간처럼 우중충하고 우울했던 월요일 출근길의 기분이 화창하게 바뀌는 경험을 했다. 아침부터 괜스레 신이 나는 금요일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화요일이나 목요일과 비슷한 감정의 풍경을 품게 된 것이다. 그건 보리수나무 밑에서 참선한 석가모니처럼 월요병의 덧없음을 깨달았다거나 인생의 멘토로부터 월요병을 없애는 대단한 비법을 전수받은 건 물론 아니었고, 단순한 외부의 변화 때문이었다. 바로 본부장님의 퇴사. 본부장 자리가 공석이 되자 회사는 본부 내부 직원 중의 한 명을 본부장으로 올리거나 외부에서 임원 하나를 데려오는 대신 다른 본부를 맡고 있는 본부장님이 영업본부의 장 역할까지 겸임하는 결정을 내렸다. 내가 속해 있는 영업본부는 3층에 있었고, 새로 본부장이 된 분이 이전부터 담당해오던 본부는 6층에 자리 잡고 있었으니, 그로서는 선택이 필요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근무할 것인지. 시간 단위로 3층과 6층을 오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본부장님은 월요일, 화요일, 목요일은 6층에서, 수요일, 금요일은 3층에서 업무를 보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월요일 출근하는 마음이 두둥실 가벼워졌다.


물론 이런 변화에는 내 특수한 위치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나는 팀에 속해 있고 팀장님이 있긴 하지만, 독립적인 일을 맡고 있어 팀장님과 수직 관계에 있지 않다. 진행하고 있는 업무 대부분을 본부장님에게 직접 보고를 드리고 마무리된 후에야 간단하게 공유하는 정도다 보니 팀장님이 어렵다거나 눈치를 봐야 할 대상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직속 상사가 곧 본부장님인 셈이라 그가 같은 건물에는 있되 다른 층에 머무는 날에는 한결 자유로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월요병이 줄어드는 경험을 하며 분명하게 깨달은 건 월요병의 가장 큰 유발요인이 바로 상사라는 것이다. 구글에서 ‘월요병의 원인’을 검색해보면 뭐 주말에 늦잠을 자는 버릇 때문에 생활 패턴이 무너져서 더 피로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지난 경험에 비춰보면 그보다는 상사의 존재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똑바로 일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존재, 지나가면서 괜히 내 모니터를 힐끔 쳐다보는 존재, 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평가하는 존재. 조그만 일 하나를 진행하려고 해도 보고하고 컨펌을 받아야 하는 존재. 가끔은 이러다 화장실 가는 것까지 보고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존재 덕분에 주말에 자유를 만끽하던 우리는 월요일이 다가오면 답답함을 느낀다. 월요병이란 곧 자유의 상실이자 속박이 주는 고통이었다.




허나 월요병이 사라진 내게 또 다른 문제가 생겼으니 그건 바로 수요병이 생겼다는 것이다. 수요일 출근을 하고 나면 비어있던 자리에 그분이 앉아 계셨고, 그냥 앉아 있기만 한 것뿐인데 왠지 사무실이 더 고요하게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런 분이 괜히 내 쪽으로 걸어오는 것만 같아도 괜히 몸이 경직되는 것과 수요일 출근길에 예전 월요일 같은 우울감을 느끼며 두 가지를 분명하게 배웠다. 하나는 회사 스트레스의 가장 큰 요소가 상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월요병의 총량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는 슬픈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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