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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정훈 Oct 22. 2022

8월 25일 목요일 : 입원 하루 전

  오전 6시 47분, 문자가 왔다.

  푸른 이비인후과의원입니다. 8월 24일에 시행한 코로나 바이러스 19 검사(PCR test) 결과 최종 음성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음성 결과 확인되었더라도, 위생에 신경 쓰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코로나를 핑계로 유급 휴가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아쉽긴 했다. 어쨌든 코로나 감염 여부와 상관없이 몸살기에 별 차도가 없었다. 하루 정도는 더 쉬는 게 낫겠다 싶어 출근 시간에 맞춰 대표님께 보고한 다음 팀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두 시간 남짓 더 자고 일어나 TV를 켰다. 그리고는 어제 못 본 <나는 솔로>를 재생했다. 아파도 볼 건 봐야 하는 법이다. 처음부터 이 프로그램의 열렬한 팬이었던 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1화부터 다시 보기를 시작했다. 남들 연애에는 별 관심이 없어 <짝>이나 <하트 시그널>을 보지 않았던 나는 같이 보자는 아내의 말에 괜찮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속상한 마음을 품었다. 아내가 우리의 관계에 설렘이 부족한 걸 아쉬워하는 것 같아서. 사람은 자기에게 부족한 걸 갈망하는 법이다. 중년 여성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꽃이 많은 건 꽃이 가진 생기가 부럽기 때문이다. 중년 남성의 프로필 사진에 명언이나 커다란 나무가 많은 건 그만큼 불안하고 흔들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9년 연애를 하다 올해 봄에 결혼했다. 연애 기간이 길었던 만큼 설렘, 심쿵, 풋풋함 같은 건 이제 느낄 일이 별로 없다. 아내가 우리의 편한 관계로 채우지 못하는 부분을 TV 프로그램으로 대리 만족하는 게 속이 좀 상했다.

  나는 6기부터 함께 보기 시작했다. 시간 죽이는 셈 치고 가볍게 시청했는데, 지금은 일주일 중에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 됐다. 한 기수 안에는 무수히 많은 드라마가 담겨 있다. 설렘, 순애보, 엇갈림, 그리고 오해와 파국까지. 잘 어울리는 남녀의 만남을 보면 저절로 광대가 승천한다. 남자의 답답한 행동에는 그러면 안 되지!, 하고 궁시렁대는데, 돌이켜보면 나도 연애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나는 솔로>를 볼 때엔 아픔도 잊었으나 끝나고 나자 다시 열이 나는 것 같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가정의학과를 찾아 신속항원검사를 한 번 더 받았다. 결과는 역시나 음성. 푹 자면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시 침대에 누웠다. 


  저녁이 되자 잠시 떨어졌던 열이 더 나고 인후가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예전에 몸살 기운이 있을 때나 장염에 걸렸을 때, 수액을 맞고 금세 회복했던 기억이 나서 야간 진료를 하는 병원을 검색해 방문했다. 어디가 아프냐는 의사의 물음에 몸살 기운이 있고 열이 난다고 말했다. 코로나 검사를 어제와 오늘, 두 차례 받았는데 음성이었단 말도 건넸다. 의사는 그럼 어떤 치료를 받고 싶냐고 내게 물었다. 그건 당신이 나를 진료한 다음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참고 수액을 맞고 싶다고 했다. 의사는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비타민도 같이 맞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수액을 맞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김치찌개 냄새가 너무 향긋하게 느껴져 배달을 시켰다. 아내는 아끼는 후배의 송별 회식이 있어 늦을 예정이다. 도착한 음식을 한 숟갈 떠서 먹었는데 기대와 달리 입맛이 없다. 미각을 상실한 느낌이었다. 밥알을 씹어도 맛은 느껴지지 않고 탱글탱글한 젤리 같은 식감만 느껴지고 김치찌개 속 고기 역시 고무처럼 씹는 질감만 느껴졌다. 코로나의 증상 중에 미각 상실이 있다고 하던데... 내일은 양성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결국 얼마 먹지도 않은 김치찌개를 냉장고에 넣었다. 수액을 맞았으니 확 좋아지든, 아니면 시원하게 코로나 양성이 뜨든 얼른 결론이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일찍 침대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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