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함께 했다. 유튜브 채널 <시네마로드>에 올라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몰아보기> 3시간 41분 영상을 본 것이다. 11쯤 보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중간에 건너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광고까지 생각하면 4시간이 훌쩍 넘었을 것 같고 뒷부분을 조금 남긴 채 3시쯤 잠이 들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몰아보기 콘텐츠를 보면 본편 정주행을 하는 사람이 줄어들 테니 콘텐츠 제작사와 방송국 입장에서는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을 것 같다. 그런데도 이런 영상들이 제법 많이 올라와 있는 걸 보니 양자 간에 어떤 합의가 이루어졌을 것 같다. 나중에 찾아보니 방송사는 몇몇 유력한 계정과 계약을 맺고 영상 수익을 일부 나누거나 본편 영상으로 연결되는 링크를 삽입하는 식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드라마를 요약해서 본다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세상 참 많이 바뀌었다.
병원에 입원을 하고 나서 깨달은 인체의 신비가 있다. 인간의 피지가 이렇게까지 농밀할 수 있다는 걸. 내 머리는 떡진 지 오래라 만져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얼굴에 손을 가져갔다가 크림처럼 진하게 기름기가 끼어있단 걸 알았다. 일주일 동안 이 피지를 모은다면 조그만 식용유 통 하나를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얼굴로 담당 교수나 간호사를 마주하는 건 민폐라고 생각해 아침저녁으로 물티슈를 이용해 최소한 인간다운 면모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아무런 대비 없이 중환자실에 입원했기 때문에 치약, 칫솔도 준비하지 못했다. 토요일까지는 병원에서 주는 가글액으로 간단히 헹구고 말았지만 어느 순간 양치질이 절실해졌다. 아내에게 부탁해 치약과 칫솔을 받았고 어제부터 삼시 세끼 밥을 먹은 다음 양치질을 하고 있다. 간호사에게 양치질을 하기 위한 통과 헹굴 물을 부탁하면 오줌통과 동일한 플라스틱 통과 믹스 커피 타 먹는 종이컵 두세 개에 헹굴 물을 준비해준다. 칫솔에 치약을 조금 짜 양치질을 한 다음 받은 물로 입을 헹구고 칫솔을 헹구고 나면 그래도 사람답게 산다는 느낌이 든다.
매일 9시 전후로 담당 교수가 회진을 돌기 때문에 7~8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나면 양치를 하고 물티슈로 얼굴을 닦는다. 내 상태가 좋아지고 있단 걸 보여줘서 얼른 일반 병실로 옮기고 싶기 때문이다.
“몸은 좀 어떠세요?”
“많이 좋아졌습니다.”
“호흡이나 기침, 가래는 좀 어떠신가요?”
“호흡은 많이 편해졌고요, 기침, 가래는 약을 먹어서 그런 건지 둘째 날부터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네. 다행입니다. 심장 관련 수치는 분명하게 좋아지는 게 보입니다. 다만, 폐 사진이 일반적이진 않아요. 흔히 폐렴일 때 나오는 폐렴균이 20~30종 있는데, 검사를 통해서 나오지도 않았고요. 폐 쪽은 호전되는 모습이 아직은 보이지 않아 더 지켜봐야 할 것 같고요. 폐의 치료를 위해 심장에 무리가 가는 쪽으로 치료 방향을 정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스테로이드 같은 약물을 함께 쓰는 식으로요.”
“네, 알겠습니다. 빠르면 오늘 일반 병실로 갈 수도 있다고 들었는데 어려울까요?”
“네, 조금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답답한 거 저희도 아는데, 며칠만 더 지켜보시죠.”
월요일이면 일반 병실에 가서 자유롭게 대변을 보고 스마트폰을 만지고 마음껏 유튜브 광고를 스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와장창 깨졌다. 속상하다.
일반 병실로 옮기는 것과는 별개로 식욕이 느는 것이 느껴진다. 입원 전에는 미각을 잃은 느낌이었고 입원 후 이틀간은 억지로 서너 숟가락 먹는 게 전부였다. 뭐라도 섭취해야 얼른 회복할 수 있단 생각에. 그러다 몇몇 음식이 먹을만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상큼한 소스가 묻어 있는 양배추 샐러드가 맛있었고 쾌변의 원인이었을 수 있는 요거트가 상큼하니 좋았다. 평소에 야채를 잘 먹지 않는 편인데, 새콤달콤한 초고추장이 뿌려져 있어서 그런지 브로콜리도 묘하게 맛이 좋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고추장으로 볶은 닭갈비나 간장에 조린 장조림도 술술 넘어갔다.
식욕이 돌아오는 걸 느끼며 몸이 많이 좋아지고 있다는 걸 체감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중환자실에서의 대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식욕이 돌아왔지만 마음껏 먹지는 말자며 나름의 관리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대변을 추가로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아내는 매일 병원에 온다. 아침 일찍 병원에 와서 담당 교수와 면담을 하고 간호사에게 내 안부를 묻는다. 가끔 마음씨 좋은 간호사는 몰래 통화도 시켜준다. 샤인 머스캣, 귤, 책, 연습장, 치약, 칫솔 같이 내가 요청한 물건들도 이때 간호사를 통해 전달받는다.
어제 처음으로 아내에게 편지를 전달했는데, 아내도 짧은 편지를 써왔다. 소통에 결핍이 생기면 이렇게 애틋한 관계가 된다. 어제 아내가 적은 편지에는 바깥일은 자신이 잘 챙길 테니 나는 건강 회복에만 신경 쓰라는 다정한 말이 적혀 있었고 어제 올라오신 부모님이 언제 내려갔고 또 언제 올 예정인지도 쓰여 있었다.
오늘은 더 긴 글의 편지를 써왔다. 아내는 자신의 손 글씨가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늘은 컴퓨터로 작성한 후 출력해왔다. 대신 길다. 그 안에는 밖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의사와 나눈 이야기가 담겨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갑작스러운 병의 원인을 몰라 다들 추측만 하고 있는 중인데, 매형이 혹시 회 같은 음식이 문제가 될 수도 있냐고 물었다고 한다(매형과 입원 5일 전에 회를 먹었다). 나 역시도 날 것에서 바이러스가 시작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담당 교수는 그럴 경우 장 쪽에 문제가 함께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고 한다. 공무원인 누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쪽저쪽 연이 닿는 곳을 알아봤고 결국 담당 교수가 속해 있는 한 협회의 장에게 잘 부탁한다는 청탁 아닌 청탁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부탁이 유용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런 모습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느낀다. 병원에서는 심장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보조적인 약을 쓰면서 심장의 기능이 회복되길 기다리는 방식으로 심근염 치료를 하는데, 이런 방식이 가족들에게는 소극적인 모습으로 비치나 보다. 편지 말미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병원도 알아볼 거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오늘은 두 가지 검사를 했다. 오전에는 심장 초음파 검사를, 오후에는 갑상선 내시경을 받았다. 나를 담당하는 곳은 심장과 관련된 순환기 내과지만, 폐 쪽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호흡기 내과도 협진 중이다. 갑상선 내시경은 호흡기 내과 쪽에서 폐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급하게 진행하게 됐다.
갑상선 내시경 검사는 반수면으로 진행되었지만 기억나는 건 숨을 크게 쉬라고 요청하면 크게 쉬어달라는 요청에 고개를 끄덕인 것밖에 없다. 그 후에는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위해 안정제를 많이 쓴 탓인지 잠이 든 것 같다. 내시경을 진행한 호흡기 내과 교수는 피와 가래를 많이 빼냈고 폐포에서 채취한 걸로 원인을 찾기 위한 여러 검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