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3D Sketch
prologue
가족을 제주에 두고 서울에서 일하며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한지도 벌써 4년째에 접어든다. 그맘때부터 서울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무료하여 의미 있는 취미 생활을 찾게 되었고 딱히 운동이나 활동적인 프로그램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간 조경가로 살아가면서 작업했던 프로젝트나 내 삶의 잡다한 상대적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weekly hoonyeon’을 시작했다.
어느덧 이제는 정기적으로 기록하는 블로그의 포스팅이 가족과 떨어진 이 서글픈 서울살이에 조그마한 일상으로 자리 잡았고, 이왕 한 김에 더 욕심을 내어 한없이 편파적이고 가벼웠던 블로그의 상대적 이야기와 함께 조경가라는 전문영역에서 쌓은 경험을 통해 얻은 꾀나 진지한 ‘상대적 지식’을 이곳에 담아보려 한다.
비록 회사 눈치 보는 월급쟁이 조경가에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가족을 돌봐야 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신세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 단순히 허세 넘치는 나의 아카이빙을 넘어 어느 누군가에겐 순간이나마 곱씹어 볼만한 의미 있는 지식이 되었으면 한다.
같은 사물이라도 관찰자의 시점에 따라 보이는 것은 다르다.
내가 이 시대의 조경가로 일하면서 여타의 다른 보통? 조경가들과 구별되는 작업방식이 있다면 평면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조경가나 건축가 같은 부류의 공간 디자이너들이 창조해내는 결과물은 종이에 인쇄된 출판물이나 사각의 모니터 속 가상현실 속에서 출현되는 그것과는 사뭇 차원이 다르다. 차원이 다르다는 표현의 이유는 그것들의 평면적인 종이나 디스플레이에서 구현되는 2차원의 세계와 이용자가 직접 만지고 경험하는 3차원의 공간이 분명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지 다른 폄하의 의도는 없다.
조경가가 만들어내는 3차원의 공간은 각각 관찰자의 시점에서 모두 다른 경험과 정보를 전달하기에 디자인을 기획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부터 3차원적인 사고와 접근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모니터 속 현란한 CG로 구현된 3D 렌더링 이미지나 동영상들도 결국은 2차원의 모니터 속에서 경험해야 하는 제한적 정보만을 줄 뿐이다.
3D Sketch
스케치는 디자이너들이 머릿속에 구상하고 있는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다. 그리고 그 수단은 꼭 평평한 종이에 슥슥 그려 넣는 2차원적 방법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인류는 우리가 땅을 밟고 서있는 이 지구가 둥글며 어느 한 곳도 평평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에 증명했고 그렇기에 공간을 창조하는 디자이너의 스케치도 반드시 꼭 평평할 필요는 없다.
3차원의 스케치는 2차원의 스케치에서 얻을 수 없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내가 조경가로 작업하는 디자인 과정에서 3D Sketch를 중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구상하는 공간을 직접 입체적인 스케치를 통해 발전시키는 이 과정이 디자이너로서 참 즐겁기 때문이고 이런 기쁨을 나를 비롯해 우리 분야의 후배들도 함께 느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착각하기 쉽지만 단순히 평면적인 기법으로 디자인된 결과물을 검증해보기 위해 모형을 만들어보는 것과 디자인의 기획 처음부터 3D Sketch를 통해 공간을 발전시키는 과정은 분명하게 구분된다.
마음을 움직이는 일..
게다가 이런 입체적인 스케치를 통한 디자인 과정은 상대적으로 분야의 경험이 적은 초보자나 클라이언트와 같이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들과 손쉽게 소통하기 위한 훌륭한 매개체가 되어준다.
3D Sketch는 어려운 도면이나 종위에 그려낸 모호한 스케치보다 굳이 따로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공간의 유형과 정보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직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에게 소통의 방법은 굳이 따로 강조할 필요 없을 만큼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설계자로서 우리가 겪는 디자인 과정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 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좋은 디자이너는 번거롭더라도 디자인을 소비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사고하며 소통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3D Sketch기법은 디자이너의 사고를 확장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이면서 타인을 위한 좋은 소통의 도구가 되어줌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