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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위나 Feb 09. 2023

묵묵하고 순순한

대단하지 않지만 동네한의원입니다.

 


“AC발”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나는 침을 놓고 있었고, 나에게 목을 맡기고 누워있던 환자는 중2 여학생이었다.

 “앗, 침이 아팠나 보네요. 이젠 괜찮죠?”

 “…”

 침묵을 일부러 깨뜨릴 필요는 없다. 나는 숨죽여 남은 치료를 하고 진료실로 들어왔다. 침이 처음 자입된 때 종종 따끔하지만 이처럼 강렬한 리액션은 처음이라, 그것도 다소곳이 누워있던 여학생의 중얼거림에 한참 동안 가슴이 뛰었다. 

 이후 그 학생은 한 달에 한두 번 한의원을 내원해서 허리가 아프다, 어깨와 목이 아프다, 배가 아프다, 생리통이 있다면서 치료를 받고 학교에 제출한다면서 확인서를 받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학생의 어머니가 치료를 받기 위해 내원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학생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애가 학교를 안 간다고 자꾸 그래서요.. 제가 직장에 먼저 출근해서 일하고 있다 보면 아이가 학교에 안 왔다고 담임선생님한테 연락이 와요. 그때마다 제가 집에서 자고 있던 아이한테 전화해서 여기 와서 치료받고 확인서 받아 오라고 알려줬어요. 원장님, 죄송해요.”

 “아니, 별말씀을요..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어머니의 숙여진 뒷모습을 보면서 나의 마음은 복잡해져 왔다. 그 학생의 알파벳 소리가 생생한데, 이후 그 여학생은 오지 않았다. 

 해가 바뀌고 새롭던 것들이 익숙해져 갈 무렵 어머니가 다시 내원을 했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치료를 받던 그녀에게 속으로 망설였던 질문을 했다.

 “**이는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안 온 지 한참 됐네요.”

 “아, 네, 제 아이가 작년에 왕따 비슷한 게 있어서 학교를 안 가려고 했는데, 새 학년이 되고 반 배정을 새로 받더니 지금은 학교를 잘 다니고 있어요. 다 선생님 덕분이어요.”

 “어머, 제가 한 게 뭐 있다고.. 어머니께서 고생 많으셨네요. **이는 말할 것도 없고요”

 “저도 한 게 없어요. 그냥 기다린 거 밖에는요.. 중2가 지나면 괜찮으려니 했는데, 정말 그런가 봐요.”

 어머니는 곁에서 아이의 1년을 묵묵히 지켜주었고 아이는 잘 버텨내였다. 단순히 중2의 시기를 지나서 괜찮아진 걸까, 그 아이는 1년이라는 시간을 얼마나 어두운 터널에서 보냈을까, 3학년때에도 그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사춘기 터널의 끝을 빠져나온 그 아이가 대견하고 다행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를 왕따 시켰을 또 다른 사춘기 아이들을 생각해 본다.  

 근래에 학교 폭력에 관련된 연예인들 기사를 종종 접한 적이 있다. 그 연예인들은 더 이상 연예인 생활을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더불어 학교 폭력에 관한 드라마나 영화들이 인기몰이중이다. 학창 시절의 그릇된 과오는 다른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고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본인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자동차처럼 본인들도 행동을 억제를 할 수 없는 상태를 소아청소년정신과 김붕년 교수는 사춘기 시기의 급격한 뇌의 발달로 인한다고 하였다. 그는 아이를 수용하고 존중해 주는 방향으로 이끌어주라고 하면서 나쁜 행동까지 허용해주는 무조건적인 수용은 안된다고 하였다. 특히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는 행동은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올바르게 키운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어려운 일이다. 아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면서 자랄 때 사춘기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어 겪는 다양하고 어려운 삶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올바르게 나타날 수 있다. 

 세 아이 중 한 아이가 지독히도 청개구리였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속을 썩이던 아이가 잠을 잘 때는 어찌 그리 천사 같은지, 잠을 자고 있는 아이 곁에서 한밤중에 쪽잠을 자다가 나오곤 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 즘에 신기하게도 변화가 있었다. 아이는 순순해졌고 자고 있을 때뿐 아니라 낮에도 이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가 순순해진 게 아니라, 아이 곁에서 잠을 자던 내가 순순해진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아이에 대해 어떻게 할 수 없이 갈피를 못 잡을 때 같은 방에서 잠을 청해보자. 생의 끈으로 이어진 부모자식 간은 서로 수용하고 존중해 줄 때 그 끈이 빛난다. 그 끈을 빛내게 할 수 있는 주체는 바로 어른인 부모들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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