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동안 시가 없어도 될 것 같다.
올해 22살이 된 내 둘째 아이는 지적장애이다. 오래전 내 아이는 엄마를 엄마라 부르기 힘겨운 아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마음속에 가두어버린 아이였다. 겨울 속에 갇힌 듯 바람을 가로막는 바람벽 안에서 불러도 대답 없이 세상을 지냈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나의 눈물도 얼어버렸다. 6살에 장애진단을 받고 치료를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녔고 그런 현실이 다 내 탓인 것처럼 나의 마음도 닫혀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차에 태우고 복지관을 오가던 길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시 한두 편이 낭독되었다.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시와 나의 머리와 심장만이 뛰고 있었다. 그렇게 시가 내게로 왔다. 그날 이후 여러 권의 시집들을 구해서 무작정 읽었다. 가슴속에 꽉 찼던 먹구름들이 걷히고 아이와 주변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무채색에서 유채색으로 변해갔다. 시들은 나를 겨울에서 봄으로 데리고 나왔다. 오랜 겨울의 터널에서 나와 마주친 햇살은 너무도 눈이 부셨다. 나는 다시 눈을 떴다. 시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후 연년생 동생의 장애로 마음에 상처가 있던 큰 아이도 보듬어 줄 수 있게 되었고, 남편과의 오랜 고민 끝에 셋째 아이를 낳았다. 둘째 아이는 귀여운 여동생과 더불어 아무 탈 없이 자랐고 특수반이 있는 통합학교를 열심히 다녔고 그 와중에 가까이에서 도움을 주시는 시부모님 덕분으로 다시 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마음속에 혼자만의 소망이 생겼다. 추운 겨울의 터널에서 헤매던 나의 손을 잡고 환한 봄으로 이끌어주었던 시들이 세상 힘겨워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었으면 하는 소망, 더 나아가 그런 시들을 나도 써보고 싶다는 소망이다.
문학과 거리가 멀었던 내가 시를 쓴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를 쓰다 보면 과거와 현재 힘들었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과 위안을 받는다는 느낌이었다. 잘 알지 못하는 시를 읽고 어설프게 흉내 내어 시를 쓰고 있지만 그럴수록 시는 나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안아주고 있다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