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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위나 Nov 13. 2021

행복의 프레임을 다시 열다





터널이 시작되었다

터널 안의 모든 차들은 일정 간격을 두고 시간을 타고 갔다. 공간이동의 자각 없이 그저 핸들을 잡은 손과 액셀 위의 발을 통한 진동만이 느낄 수 있었다.

터널 밖이 나타났다.

하늘은 눈부셨고 나무와 강이 슬쩍 지나갔다.

터널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길 두세 번 반복했다.

운전을 한 기간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터널에 들어서면 늘 긴장을 한다. 어둠을 달리다가 터널 밖으로 나오게 되면 밝은 햇빛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는데 또다시 시작되는 터널에 조금은 당황이 되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처음 가보는 두물머리로의 여정은 그렇게 여러 개의 양평 터널의 출현으로 긴장과 설렘의 연속이었다.







"악!!."

후다닥 큰애의 방으로 들어갔다.

번개처럼 지나간 한밤중의 비명은 적막 속으로 사라졌다.

가쁜 숨을 내쉬는 아이의 어깨를 어루만진다.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는다.

"괜찮아질 거야. 좋아질 거야."

나의 떨리는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붕대를 감은 한 손을 바라본다.

밤마다 악몽과 통증사이에서 잠을 설치는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가길 바란다.


 6개월 전 큰 부상을 당한 아이는 이제 제법 다친 손을 사용하게 되었다. 인대와 신경이 크게 다쳤으나 불행 중 다행으로 손목 동맥은 안전했다. 하마터면 위험할 상황으로 갈 수도 있었다니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하다.  아직 신경회복이 진행되는 중이라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씩씩하게 다시 일어선 아이가 대견할 뿐이다.


코로나 상황이 다행인 건지, 아이는 집에서 생활하면서 후유증을 치료, 관리를 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초년생 때까지 객지에서 생활했던 아이는 오롯이 집에서 케어를 받았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더 많은 대화, 더 많은 미소, 더 많은 관심을 나누었다. 터널 속에서 피운 꽃들이다.




 





  탁 트인 강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원하고 시원했다. 초가을의 이른 시간이라 쌀쌀한 강바람을 피해 햇빛이 드는 카페 창가에 앉아 그림자가 짧아지길 기다렸다.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이러다간 사진 찍기도 힘들겠다 싶어서 부랴부랴 강가에 나갔다. 강물 위에 햇빛과 강물 아래 햇빛에 눈이 부셨다. 

 막내딸과 나는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인생 컷을 건지겠다는 일념으로  포즈를 취하고 핸드폰을 눌러댔다. 주변에 사람들도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한눈에도 알아볼 수 있는 명당자리에 줄을 서서 추억을 찍어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의 미소는 흐르는 강물만큼 여유로웠다.

  남편은 혼자 카페에 앉아 있다. 아직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여보, 이리 한번 와봐."

큰아이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무렵의 어느 아침, 화장실에서 남편이 부른다. 혈변이었다.

지난날 거실 바닥에 낭자했던 혈흔이 떠올랐다.

"응급실 가요. 어서."


 며칠 후 남편은 대장용종제거술을 받았다. 조직검사상 선종이었고 암으로의 진행은 다행히 되지 않은 상태였다. 크기가 제법 컸기에 며칠 후 출혈이 또 있었고 재시술을 받았다.

 응급실행, 그리고 두 번의 입원으로 남편은 중년의 출발을 내디뎠고, 뜻하지 않은 병원 신세로 인해 지금까지 지내왔던 건강의 무관심에 적신호를 받았다.

 암일지도 모른다는 주치의의 한마디에 지옥 같은 1주일을 보냈고, 아니라는 결과에 천국을 다녀왔다.


 두물머리 강가를 걷는 남편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커다란 물줄기를 이루는 곳의 물결을 바라본다.

 잔잔하고도 넓은 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본다.

 그들과 우리들의 모습에서 즐거운 미소들을 본다.








 올 해는 여러 개의 터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개의 터널을 막 지나왔고 지금은 아직 끝나지 않은 터널을 달리고 있는 중이다. 3년째 대장암 투병을 하고 계시는 시어머니는 길고 긴  터널에서 아직 운행 중이시다.

 삶이라는 도로에서 얼마 되지 않은 거리 동안 몇 개의 터널을 지나오면서 나에게 내면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족들의 생(生)과 사(死)를 오가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기는 순간을 겪고 난 후 선명하게 느낀 것은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아주 나약한 존재이며 언제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신체적 정신적 상해를 입을 수 있고, 그 트라우마 또한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뉴스나 인터넷을 통해 접하여 어렴풋이 알게 되는 어이없는 사고나 한순간의 교통사고 등으로 유명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일들이 내 일이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산다는 게 공허하고 허무했다.

 아이가 다친 후 왜 이런 불행이 우리에게 닥쳤을까 하는 괴로운 마음에 하루하루 힘들었 어느 날, 한 지인의 위로에 그 어둡던 터널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만하니 다행 아니냐"는 말 한마디에 생각이 180도로 바뀌었다. 아이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로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인 내가 다 큰 아이의 다친 손 역할을 하면서 그동안 곁에 없어 잘 못 느꼈을 가족의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누렸다. 남편의 경우를 봐도 본인은 힘들었을 입퇴원 반복과 시술이었지만 암으로 진행될 가능성을 미리 차단했으니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이 기회에 그동안 소홀히 했던 운동을 다시 계획하고 식습관을 조금씩 바꿔나가면서 건강을 돌보는 계기가 되었다. 말기암 시한부를 선고받고 와병 중인 시어머니는 요양병원이나 호스피스 병동이 아닌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자택에서 방문의료 서비스와 사랑하는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고 하루하루 편안하게 지내신다. 친손주와 외손주들의 산후조리와 육아를 마다하지 않으셨던 어머니는 주말마다 방문하는 이제는 제법 성장한 손주들의 문안을 받고 흡족한 미소를 지으신다.






 최인철 교수는 그의 저서 [프레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인 프레임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고 결국 이것이 우리의 행복을 결정한다고 하였다.

 나는 어두운 터널에서 "그만하니 다행이다"라는 창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아이의 불운의 사고를 뒤집어 생각하는 새로운 창이었고  남편의 병원생활 중에도 변함없이 나를 이끌어준 창이었으며 지금 시어머니의 터널에서도 이 창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이 창은 나에게 적어도 행복은 아니었어도 불행은 막아주고 있다. 이 창을 통해 터널을 빠져나가는 날에는 비로소 행복이란 무엇인가 알 수 있지 않을까...



 두물머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많은 사람들은 가족, 또는 친구, 연인들일 것이다. 그들은 감탄을 자아내는 경치를 함께 바라보고 추억을 남기고, 주변의 맛집을 향해 움직인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풍광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상의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들... 최인철 교수는 이런 일상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 행복이라고 [아주 보통의 행복]에서 말했다.

 예전에는 누군가가 간절히 원하는 꿈을 이루는 순간 느끼게 되는 성취감과 희열을 행복이라고 했었으나 그 행복은 크고도 멀고 희미하다. 지금 우리는 가깝고 선명하고 소소한 행복이 간절하다. 

 오늘 하루 이 순간 숨을 쉬고 맛있는 것을 먹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진정한 행복임을 느끼면서 말 없는 큰 강물이 융숭하게 흐르는 두물머리를 나온다.



 지나온 터널을 다시 되돌아간다. 강과 나무들은 반대편에 지나간다. 한번 지나온 터널이기에 긴장은 덜하다.

되돌아가는 길이 훨씬 수월하고 안정된다. 그렇다고 방심하면 안 된다. 터널을 빠져나가는 출구를 바라보면서 운전대 손에 힘을 놓지 않는다.

 강가에서 수많은 환한 얼굴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가족의 안전과 안녕, 그리고 건강한 하루하루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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