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회사 입사 3년 차, 고속노화 루틴

6편

by 위선임


대부분의 직장인이

홀수년마다 겪는다는 그 증후군,

회사 사춘기가 차별 없이 내게도 찾아왔다.


3년쯤 지나자 일은 어느새 손에 익었고

크게 고민하지 않고 처리해 내는

습관화된 업무 사이사이

딴 생각이 둥지를 틀었다.


매력을 느끼던 조직문화는 당연시되어

동기가 약해졌고, 직장 생활은 점점 시들해져 갔다.


끊임없이 회사와 소통하려 노력하고

바뀌지 않는 부분을 개선하던 의지 대신

냄새나는 불평불만이 싹을 틔웠다.


눈치채지 못할 만큼 시나브로

즐거움과 열정의 자리에

안일함과 무력감이 파고들었다.


잊고 살던 불안도 슬그머니 복귀했다.

일이 이렇게나 재미없는데, 계속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또 무슨 일을 다시 하나? 이제 와서?


당시 나이 고작 스물대여섯살 쯤이었는데도

방향을 틀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했다.


하는 일이 힘든 것보다

뭘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

훨씬 사람을 지치게 한다는 걸

일찍이 깨친 나였다.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당과 알코올, 카페인에 기대기 시작했던 게.


회사 생활에서 무료함이 밀려올 때마다

트윅스 초콜릿과 손바닥만 한 쿠키를 집어먹었다.


텅 빈 오피스텔에서 올라오는 불안이 싫어

퇴근 후에는 동료들과 함께 술을 들이부었다.


술자리에서 반복되는 일 이야기에 스트레스가 올라오면

노래방 기계 앞에서 접신한 듯 탬버린을 흔들었다.


숙취와 피로를 주렁주렁 달고 나선 다음날 출근길,

주문한 벤티 사이즈 커피에 샷을 추가했다.


커피를 홀짝이며 오전 업무를 하다 당이 떨어지면

책상 아래 서랍을 열어 다시 초코와 과자를 꺼냈다.



성실한 고속노화 생활과 야근으로 다져진

입사 4년 차의 어느 날,


기계적으로 엑셀을 애무하던 오후 업무시간,

낯선 저림 증세가 오른팔을 타고 흘렀다.


아니다.

그 감각은 뭐랄까, 낯설지만은 않았다.

분명 처음 느껴본 것이 아니었다.

익숙한 낯섬이라 해야 할까.


무릎 꿇고 오래 벌서다 일어났을 때,

좌식 밥상 앞에 한참 앉아 밥 먹다 일어날 때,


양 다리가 죽어버린 듯 아무 감각이 없다가

별사탕 터지듯 찌르르 전기가 통하는 느낌.

바로 그거였다.


살며 여러 번 경험한 감각인데도

다리가 아닌 팔에서 느껴지니 몹시 낯설었다.


으악!!! 뭐야 이거!!!!!!!!

어깨에 다리가 달린듯한 생경함에 몸서리치며

반사적으로 코끝에 여러 번 침을 발랐다.

다리가 저렸을 때 그랬듯.


대단히 이상했지만

금방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그 팔 저림은

점점 대수로운 일로 발전했다.


그 후로 여러 번

키보드를 두들기는 도중에 손을 털어댔고

젓가락질을 하다 말고 손가락을 쫙 펴제꼈다.

은은한 두통도 백그라운드로 깔렸다.


별다른 액션은 취하지 않았다.

이러다 말겠지 하며 버텼다.


스스로의 상태를 관찰하고 보살피기에

세상은 너무 복잡했고,

할 일은 항상 많았고,

시간은 늘 부족했다.


내 관심사는 좀처럼 내가 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업무를 하던 와중 뒤에서 부르시는 팀장님 음성에

앉은 채로 고개를 틀어 돌아보다 돌연, 섬뜩함을 느꼈다.

목이, 돌아가지 않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ㅈ됐구나.


짙게 드리워진 망조를 수습하고자

난생처음 MRI 기계 안에 누웠다.


설마 하며 찾았던 그 병원에서

목 디스크 중증을 진단받았다.


예기치 않았던 입원과 수술,

남의 일인 줄로만 알았던 병가.

삽시간에 그 모든 것이 내 일이 되었다.


더 큰 문제는

그 친구가 신호탄이었다는 것이었다.


터져버린 목의 수핵을 필두로

몸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해할 수 없는 온갖 병마들이

나를 점령해갔다.


느닷없이 찾아온 노로바이러스에 위아래로 뿜다가

좀 잦아진다 싶으니 갑자기 잇몸이 부었다.


일주일쯤 치과를 들락날락하며 고쳐놓고 나니

갑자기 눈알이 빠질 것 같았다.


치과에서 안과로 옮겨 진료받자

선생님은 안압이 높다 했다.

안압이요..? 갑자기..?? 왜죠???


혼란 가득한 질문에

선생님은 무심한 목소리로 물으셨다.

혹시 최근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었느냐고.


스물한 살, 부산의 병원에서 받았던

바로 그 질문이었다.


안과를 또 얼마쯤 다녀 괜찮아졌을 때쯤,

이번에는 하혈을 했다.


어이없음과 허탈감을 안고

안과에서 부인과로 환승했다.


이유를 묻는 내 말 끝에

부인과 선생님은 답하셨다.

혹시 최근 스트레스받는 일이..


짜증이 솟았다. 그놈의 스트레스.

반문하고도 싶었다.


그러는 선생님은 안 받으세요?


그 후로도 얼마쯤

갖가지 병원을 순례하는 코스가

일상을 뒤덮었다.


쌓여가는 각종 의료비 영수증에

월급이 동나기 시작했을 무렵,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7편으로 이어집니다.



완벽보다 완성,

오늘은 여기까지-

위선임 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건 취업일까 사기일까 기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