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연습 22. 미워하는 수고로움

by 위그리

미움

누군가를 미워하다 보면,

이 세상에는 그 사람을 제일 많이 생각하는 사람은

어느새 내가 된다.


작년까지만 해도 참 미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유 없이 나에게 갑질하는 그 사람이

너무 미웠다.


유산하고 처음으로 회사에 복귀하던 날

어떤 위로의 말도 없이

그 사람은 내게 새침한 말투로 말했다.

"에어컨 좀 켜주세요."


미웠다. 정말 미웠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에어컨을 리모컨으로 켜주는 바보 같은 내가 미웠고

그 사람이 미웠다.

항상 그렇게 비슷한 류의 심부름들을 시켰다.

별거 아닌 일들이었는데, 그 사람은 그렇게 내게 심부름을 시키며 자신의 위치를 내게 각인시켰다.

(물론, 그 이후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때는 거절했더니 어이없는 심부름들에서 벗어나지더라. 진작 거절할걸...)


한동안 미움은 계속됐고,

나는 미움을 되새김질했다.


이처럼 번거로운 일이 없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생각했다.

'힘들고 바빠 죽겠는데,

이런 수고를 내가 미워하는 사람 때문에 해야 한다니...'


그럼에도 그 미움을 놓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지금도 문득문득 떠올려지면, 다시 잠잠했던 그 미움이 고개를 들고는 한다.


그럼 나는 내게 말한다.

미움을 놓고, 더는 쓸데없는 수고로운 짓을 하지 않기를...

이 세상에는 값진 수고로움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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