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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 Oct 24. 2021

대안학교 여행기를 마치며

그 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렇게 끝을 맺을 수 있는 이야기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하지만 우리가 발을 붙이고 있는 세상에 단일한 해피엔딩과 단일한 배드엔딩이란 없듯이, 학교를 뒤로하고 먼 길을 떠난 아이들의 삶에도 수도 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학교라는 흙에서 뿌리를 거두어들이고 더 넓은 곳으로 향한 우리들은 두 가지의 커다란 돌풍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대안학교의 졸업생으로 공교육에 발을 들인다는 것


아이들이 졸업 후 밟는 전철은 무어라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렵다. 졸업 후 대안학교로 진학하는 아이들이 반, 일반 공립 고등학교나 특수목적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아이들이 반. 그리고 개중 드물게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여행을 떠나거나, 유학길에 오르거나, 자신의 교육 가치관 또는 다른 이유로 인해 홈스쿨링을 택하는 아이들도 있고, 일찌감치 사업 내지는 기타 직업적 분야에 종사하는 쪽을 택하는 아이들도 있다.

일상의 변화가 가장 적은 쪽은 단연 같은 대안학교로 진학하는 아이들이겠지만, 대안학교로 진학한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세상이 마냥 장밋빛인 것은 결코 아니다. 말했다시피 모두가 대안학교와 같은 방향성을 추구하고 대안학교를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 해서 진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학교가 한없이 만족스럽고 행복한 선택인 반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다녀야 하니 다니는 '타성에 젖은' 선택에 불과하다. 

이러나 저러나 대안학교에서 발을 떼어 아예 전혀 다른 영역으로 가는 아이들만큼 큰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안학교를 떠나 다른 학교로 가는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격변이란, 하나의 물리 법칙이 통용되는 행성에서 나와 전혀 다른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는 행성으로 발을 들이는 것과도 같다. 그러니 다른 행성에 발을 들이자마자 눈앞이 뒤집히고 몸이 말을 듣지 않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졸업 후 고등학교에 쉽사리 마음을 주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굉장히 많았다. 나 역시도 그 중 하나였고.

생활 공간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일이나 전혀 다른 낯선 인간관계 속에 놓이는 일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매일 아침 일찍 같은 옷을 입고 학교로 향해, 매일 같은 수업을 듣고, 이른 아침부터 야자라는 명목으로 붙잡혀 있는 밤에 이르기까지의 그 기나긴 시간을 꼼짝없이 같은 교실 같은 자리에 갇혀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요즘의 교육방침이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나, 대학 입시라는 관문을 통과할 의무를 진 고등학교라는 세계는 너무도 거대하고 굳센 탓에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그런 수업 방식을 채택하는 고등학교가 셀 수 없이 많다. 하루를 꽉 채운 일정으로 따지자면 대안학교나 고등학교나 크게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 시간표를 어떤 방식으로 보내는지에 관해서는 평행선의 이쪽과 저쪽만큼이나 먼 차이가 있었다. 고등학교에서의 시간표는 입시를 위한 훈련 일과에 가까웠다. 선생님이 지식을 건네주면, 아이들은 최대한 많은 지식을 빠르게 받아들고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한다. 늘 선생님들에게 '바깥으로 뛰어나갈' 시간을 건네받곤 했던 우리에게는 숨쉴 틈이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이 이야기는 공교육과 대안교육 중 어느 것이 더 낫고 어느 것이 더 뒤떨어지는지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방침이 더 이상적인 교육에 가까운지는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고등학교 진학 후 한동안 겪어야만 했던 혼란은 공교육이 옳고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항상 하나의 행성에서 발길 가는 대로 움직일 수 있었던 아이들이 일순간 다른 행성의 다른 중력에 놓임으로써 겪게 되는 변화란 정말이지 불가피한 일이라는 뜻이다.



대안학교의 졸업생으로 산다는 것


우리 학년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한 후부터 지금까지 들어 왔던 '대안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그 노골적인 정도에 따라 일렬로 배열한다면, 아마 수묵화의 농담을 가장 연한 것부터 가장 진한 것까지 한데 늘어놓은 듯한 모양새가 될 것이다. 대안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아주 순수한 마음에서 흥미를 보이는 백색에서부터, 대안학교는 문제 있는 아이들이 가는 곳 아니냐는 아주 노골적인 먹색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 물론 그 모든 먹색이 악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정말 대안학교에 관해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대안학교 출신'이라는 명함을 달고 산다는 것은, 어딜 가든 비교적 독특한 배경 때문에 눈길을 끄는 동시에 약간의 차별과 편견 어린 시선이 따라붙을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일 당신이 대안학교의 졸업생이라면, 당신이 '대안학교 출신'이라는 명찰을 꺼내 둔 상태로 만나게 될 사람들은 긍정적인 쪽이나 부정적인 쪽 중 하나의 어드메쯤에 당신이 위치하리라고 이미 잠정적인 결론을 내려 둔 상태일 것이다. 어느 생각을 충족시키는지는 순전히 당신의 몫이다.


당신이 대안학교의 졸업생이라면, 그저 살아가면 된다. 당신이 학교를 좋아했든 싫어했든 관계없이 당신이 대안학교에서 보냈던 시간은 당신의 안에 차곡차곡 쌓인 물감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당신의 안에 자리한 물감들 중 마음에 드는 색을 골라내어 원하는 그림을 그려내며 살면 된다. 오직 그뿐이다. 

만일 당신이 대안학교의 졸업생을 마주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학교를 지워 두고 그 사람을 그저 지켜보면 된다. 그 사람이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올곧은 자세로 매사에 임하는 사람이라면, 그를 좋아하면 된다. 반대로 그 사람이 지나친 면모를 가지고 있어 주변인에게 불편함을 주거나 줄곧 부정적인 언행을 보이는 사람이라면, 그를 싫어하면 된다. 그뿐이다. 간단하지 않나?






이렇게 대안학교라는 미지의 대륙에 관한 여행기는 끝을 맺는다. 그렇지만 하나의 대륙에 오직 하나의 나라만 존재하는 경우는 드물듯, 대안학교라는 대륙 역시 이 글에서 다루지 않은 무수히 많은 다른 나라들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이 여행기는 다만 커다란 문에 달린 작은 창문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의 앞에 있는 큰 문을 열고 나가면 '대안교육'이라는 새로운 장소에 다다를 수 있다. 그러나 섣불리 그 문을 열고 싶어하는 사람은 잘 없을 뿐더러, 사실 대안교육이라는 세계는 관심이 없다면 굳이 문을 열지 않아도 무방한 곳이다. 하지만 그 앞을 지나치는 사람들이 저 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정도는 짐작할 수 있게끔 문에 창문 하나를 내어 놓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문을 열지 않을 사람들은 가던 길을 계속 가면 되고, 궁금증이 피어오르는 사람들은 그 문을 열어 보게 될 것이다. 

방금 막 엿보고 온 '한 대안학교의 일상'은 문을 열기 전 창문을 통해 내다본 작은 풍경이다. 문 너머에는 이와 비슷한 풍경이 줄곧 펼쳐질 수도 있고, 창문으로 잠시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나 우리를 당황하게 할 수도 있다. 창문으로 대안교육이라는 세계의 일부분을 잠깐 엿보았으니, 이제 문을 열지 말지는 당신에게 달린 셈이다.


여행기를 읽으며 잠시나마 현실을 내려놓고 다른 작은 세상을 엿보는 재미를 느꼈기를. 이 여행기가 비록 거대하고 웅장한 창문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유리창에 얼룩 한 점 없이 깨끗한 창문으로서 받아들여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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