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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 Oct 24. 2021

학교에서 이사를 나오던 날

졸업

처음 발을 들였을 때 꼭 바깥 세상과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작은 세상 같았던 학교는,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여전히 작은 세상 같아 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미 이 작은 세상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는데 이제 그 작은 세상 안에 우리가 머물 자리는 없다니. 학교에서 처음으로 잠이 들었던 그날처럼 한참 동안이나 천장의 전등을 응시하다 어렵사리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면, 이윽고 너무도 귀에 익은 기상송이 들려와 눈을 뜨게 된다. 눈을 뜨면 이전에 그토록 우리를 놀라게 했던 '내 방이 아닌 흙벽'이, 이제는 익숙해지다 못해 친근해지기까지 한 그 흙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언제까지고 먼 일일 것만 같았던 졸업식 날의 아침이 밝았다.



장미꽃 한 송이를 손에 들고, 잔뜩 부은 눈으로 건네는 안녕 


거대한 강당에 수많은 의자가 채워지고, 그 의자만큼이나 많은 수의 사람들이 들어와 강당을 가득 메운다. 3학년, 2학년, 1학년은 물론이고 선생님들, 학부모님들, 졸업식을 위해 특별히 초청된 귀빈들까지 모두가 그 해에 학교를 떠나게 되는 아이들의 발걸음을 배웅하기 위해 찾아온다. 

입학식이 그러했듯 졸업식도 지극히 평범하게 그 막을 올린다. 몇 가지 의례를 거친 뒤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각종 귀빈들이 졸업 축하 말씀을 해 주신다. 그러나 유독 오늘만큼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함마저 특별하게 느껴지곤 한다. 축하 연설이 끝나면 아이들이 순서대로 한 명씩 호명되고, 자신의 이름이 모두의 앞에 울려 퍼지면 단상으로 나가 졸업장과 장미꽃 한 송이를 건네받게 된다. 학교에서 주는 마지막 기념 선물인 셈이다. 


모든 3학년 아이들의 손에 장미꽃이 한 송이씩 들려 있게 되면, 2학년 후배 중 대표가 무대로 올라 송사를 낭독한다. 사실 송사를 낭독한다는 표현은 이 분위기를 설명하기에 조금 부족한 감이 있다. 2학년 후배가 3학년들을 향해 직접 쓴 배웅의 편지를 한 자 한 자씩 읽어 주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후배의 입에서 문장 하나하나가 나올 때마다 3학년 아이들은 눈이 붉어져서 고개를 숙이거나 남몰래 코를 훌쩍이기 일쑤다. 

그래도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최대한 조용히 울려 노력했던 송사 낭독 시간과는 달리, 3학년 학생 중 대표가 앞으로 나와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보내는 답사를 읽을 때면 3학년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대놓고 흐느끼는 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온다.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는 마음은 단지 정들었던 곳과 이별한다는 말 정도로는 잘 표현되지가 않는다. 어쩌면 깊숙이 뿌리를 내린 흙에서 스스로 제 뿌리를 뽑아 나가야 하는 나무의 마음이 그와 가장 비슷할지 모르겠다. 이러나 저러나 학교는 아이들에게 '집'이었던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평범한 듯 하면 반전이 시작된다'라는 규칙 아닌 규칙은 변함없이 적용된다. 장내를 눈물 범벅으로 만든 송사와 답사 낭독이 끝나면, 1, 2학년 후배들이 사전에 몰래 준비했던 합창을 선보인다. 이 송별 노래는 매년 바뀌지 않는 015B의 <이젠 안녕> 이다. 지난 해와 그 전 해에 우리가 선배들을 향해 불러 주었던 노래를 이제는 우리가 듣게 되는 것이다. 노래를 듣는 우리도 훌쩍이고, 노래를 불러 주는 후배들도 연신 훌쩍인다. 그 모습을 지켜보시던 선생님은 노래가 끝나자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네 졸업식은 매 해마다 눈물이 끊이질 않네요."


졸업식이 끝나자 아이들의 눈은 정말 부을 대로 부어 더 이상 쥐어짜도 눈물이 나올 것 같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이제는 공식적으로 졸업생이 된 3학년 아이들이 안쓰러울 정도로 팅팅 부은 눈을 하고 계속 코를 훌쩍이는 소리를 내면서도 휘적휘적 인파를 헤치고 운동장에 모여들자, 사람들은 모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보았다. 그리고 웅성거림이 커지는 순간 누군가 타이밍 좋게 음악을 틀었다. 플래시몹의 시작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눈이 새빨개져 앞이 제대로 보일까 싶기나 한 상태로 열심히 연습했던 동작을 선보였다. 그러자 여러 모로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에 선생님들, 학부모님들, 후배들이 모두 우리를 빙 둥글게 둘러싸고 박수로 호응하기 시작했다.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표정을 한 열여섯 살짜리 아이들이 단체로 흥겨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모습은 모르긴 몰라도 꽤나 장관이었을 것이다.


플래시몹의 마지막은 입학식 때 선보였던 자기소개 노래였다. 그때와 똑같은 위치에 서서, 그때와 똑같은 가사와, 그때와 똑같은 동작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멋들어진 수미상관과 잇따르는 박수 세례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학교에서 보낸 삼 년에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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