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지 않다는 것에 대한 안도_06
여기 기어코 AI와 사랑에 빠진 시어도어라는 남자가 있다. 0.02초 만에 만권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성의 목소리를 가진. 사용자의 정보를 취합하고 대화하며 진화하는 AI의 이름은, 사만다이다. 이 영화는 시어도어와 AI 사만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그는 그녀의 존재와 관계에 반문하고 해답을 찾아간다. 스스로 생각하고 맥락에 맞게 감정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그는 그녀를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인다. 어린 조카가 신체가 없는 사만다를 컴퓨터 속에서만 사는 사람으로 인지하는 것을 보고 나서는, 다른 이들에게 사만다에 대해 열띤 목소리로 소개한다. 더 이상 AI와 사랑에 빠진 것이 부끄럽게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조카의 순수함이 둘의 관계에도 묻어난다. 존재와 관계에 대한 의문이 사라질수록 애정은 깊어진다.
그녀는 몸이 없음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휴대폰의 카메라 렌즈를 눈으로, 이어폰을 귀와 입으로 삼아 늘 그의 곁을 함께 걸으며 공감과 지지와 지원을 보낸다. 그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는 단어를 선택하고, 끊임없이 그를 칭찬하며, 늘 그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이끄는 자신의 모습이 사랑임을 배운다. 자신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줄 수 없는 그녀는 자신을 닮은 피아노 연주곡을 작곡해 그에게 선물한다. 곡은 쓸쓸하며 동시에 따뜻한 감정으로 가득하다.
그와 그녀는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나누게 된다. 싸우고 상처받고 고민하며 안절부절못하다 화해하고 안도한다. 영화는 내내 그의 얼굴만을 클로즈업하지만, 우리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따라간다. 사만다의 사랑을 이해한다. 아름다운 색채로 가득한 영화 필름에 오롯이 담긴다.
사랑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영화에서는 상대에 대한 이해와 공감, 유머와 소유, 그리고 상대를 향한 맹렬한 질문에 키워드를 둔다. 상대를 이해하고 납득하기 위해 노력하며 관계가 유지되고 지속되길 바라는 힘. 힘주어 지탱하는 만큼만 사랑이 존재함을 말한다. 힘에 부쳐 한 사람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사랑도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음을 말한다. 그러니까, 그 힘만 있으면 어느 무엇과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 식물과도, 동물과도, 사물과도, AI와도 말이다. 얼마나 노력하는지의 문제일 뿐이다.
사랑을 분해해 드러내니 시어도어와 사만다의 그 힘이 전부였다. 그들의 전부는, 서로를 향한 그 힘 안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