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의 독립(Pseudo Independence)'이라는 말을 들었다
'자기 주도', '주체성', '능동적'
모두 나와 잘 어울리는 말이다. 스스로 결정하고 설계하고 수행하는 것에 있어서 크게 거부감이 없었고, 이제는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에 종종 불편함까지도 느낀다. 그 배경에는 어린 시절의 내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지금 가진 나의 독립성은 '혼자서도 잘해요',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아이'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쯤이었던 내가 하루는 별 뜻 없이 세면대 청소를 하고 나왔는데, 그때 어머니가 해주셨던 칭찬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아버지는 내가 학교에서 받아 온 상장들을 모두 액자에 걸어 한 쪽 벽면을 도배해 주셨을 정도로 칭찬과 격려에 후한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학창 시절에도 공부에 대한 강요가 전혀 없다시피 했던 부모님 밑에서도 제대로 된 사교육 한 번 없이 알아서 수능 공부까지 마쳤다. 입시전략 또한 스스로 공부하고 판단했으며, 전역 후에는 집과 가까운 거리의 학교를 재학 중임에도 혼자 나와살았다. 진로 설정에 있어서도 부모님은 물론 친구들과 학교 환경에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다. 그렇게 '원하는 대로 알아서 잘' 살아왔다고 느꼈다.
언젠가 SNS에서 그런 구절을 본 적이 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은 사실 누구보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라는 의미의 말이었다. 사람이 좋은 사람은 사람에게 기대를 하게 되고 때문에 실망하기를 반복한다. 같은 아픔을 반복하기 싫어서 결국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크게 공감하면서, 한편으로 나의 높은 독립성도 내가 누구보다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의지하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을 때의 힘듦이 싫어서 애초에 의지하는 편보다는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던 와중, '허구의 독립(Pseudo Independence)'이라는 말을 들었다.
사실 정확히 나에게 딱 들어맞는 개념은 아니지만 '허구의 독립'이라는 워딩 자체가 나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허구의 독립(Pseudo Independence)
: 의젓해 보이고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주요 애착 대상자에게 결핍된 의존 욕구를 끊임없이 채우려 하는 것
나에게는 일부는 해당되고 일부는 해당되지 않는다. 아주 독립적으로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말은 맞지만, 끊임없이 의존 욕구를 채우고자 하지는 않는다(잠시 무거운 이야기를 떠나, 애초에 나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에게 "우리 아들은 철이 너무 빨리 들었어. 조금은 철이 늦게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을 종종 들었는데, 그럴 때마다 그리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마냥 혼자서도 알아서 척척 잘한다는 칭찬인 줄만 알았다. 그래서 때때로 나의 높은 독립성을 자랑마냥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심지어 친구들이랑 있을 때마저도 나는 '뭐든 알아서도 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강박적으로 움직였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에 인색했고, 도움 없이 이뤄낼 수 없는 일에 힘들어했다.
인간은 당연하게 불완전한 존재이며, 생물학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는 완전히 다 해내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데, 상대적으로 웬만하면 혼자서 다할 수 있는 사람인 척을 유지하는 것은 여간 체력을 소모하는 것이 아니다. 20대 후반의 나는 가짜 독립성을 유지하느라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한 나머지 한동안 크게 아팠던 적이 있다. 당시에도 느꼈지만 그 나이에 겪었던 아픔은 나에게 큰 축복이었다. 덕분에 지금은 혼자 전부 다 해낼 수는 없다는 것도, 주로 노력하겠지만 가끔은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아직은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허구의 독립을 내려놓고 진짜 독립을 서서히 해나가는 것을 다가오는 30대의 목표로 삼았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허구의 독립으로 힘들어 한 적은 없는지, 혹은 누군가에게 허구의 독립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돌이켜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위 글은 처음이라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운 현생 1회 차 한 20대 청년이 기록하는 일, 사람, 환경 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또 다른 이에게는 공감이 또 다른 이에게는 지난날에 대한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청춘기록 #청춘을글이다 #日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