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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훈 Feb 29. 2024

으유, 이 (서울)촌놈들!

겨우 이천오백만, 그들만의 세상

그간 '서울'에 대한 이야기는 지겹도록 많이 했다. 그래서인지 스물의 기록에는 남기고 싶지 않다가도, 나의 20대에 '서울'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키워드이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정성껏 끄적여본다.


20대 중반의 나는 언제나 상경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무라도 썰 수 있을지는 몰라도 칼은 뽑아보자는 마음이었다. 일에 대한 욕망이 컸던 나에게 가치 있는 삶을 위해서는 서울살이가 필수였다. 결과적으로 현재 나는 서울에서 아주 가치 있고 보람찬 하루하루를 (아직까지는) 보내고 있다. 글이 조금 퉁명스럽게 느껴져 보일 수도 있는데, 옳게 봤다. 나는 근 1년간 '서울'에게 삐져있었고, 요즘은 사이가 나쁘지 않지만 아직 잔여 감정이 남아있는 듯하다.


'우당탕탕 서울 적응기'를 짧은 글 하나에 전부 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잘 요약해 보려 한다. 서울로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취직을 한 내가 빠르게 적응해야 했던 크고 작은 차이들은 꽤나 많았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일반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음을 밝힌다.


우선, 역시나 가장 먼저 체감되는 것은 '사투리'였다. 만 27년 정도를 경상도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서울은 거의 해외나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그것도 아주 소심하게, 내뱉은 나의 한마디는 안타깝게도 두 음절만 뱉어도 "어, 지훈님. 어디서 오셨어요?"라는 질문을 불러일으켰다.(한편으로는 역시 외국어(표준어)는 해외(서울)에서 배워야한다는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한다.) 또 하나 의외로 가장 먼저 겪었던 생소한 경험은 점심시간에 일어났다. 보통 대구에서는 직장 상사, 연장자 등의 소위 윗사람과 밥 먹을 때 주로 더치페이를 하지 않았는데, 서울에서는 거의 대부분 더치페이를 했다. 하, 그리고 서울을 묘사할 때 이것 없이는 논할 수가 없는데, 바로 '줄서기'다. 아직도 친구들이 놀러올 때면 서울을 대신하여 그들에게 가장 많이 사과해야하는 부분이다. 지방에서는 일반적으로 놀이동산을 제외하고는 줄을 잘 서지 않는다. 하지만 서울은 내 집을 제외하곤 일반적으로 모두 줄을 서야한다. 이동할 때, 밥 먹을 때, 화장실 갈 때...마지막으로 가장 큰 체감은 역시나 생활비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대도시인 대구만 해도 월세가 그리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다. 심지어 요즘은 우연찮게도 주변에서 방이 비어있으니 공짜로 살라는 이야기도 종종 들린다. 서울에서는 꿈도 못꾸는 이야기다. 식비 또한 말도 안되게 비싼 것이 아니라 한끼에 2천원 정도 소소하게 딱 지불할 수 있을만큼 더 비싸서 은은하게 지갑을 비워간다. 다만, 더 비싼 값을 하냐고 물었을 때는 글쎄다. 정말 서울로 올라와 느꼈던 가장 대표적인 차이점만을 아주 간략히 말(투정)했으니 이제서야 본론으로 넘어가보려한다.


우리는 서울 촌놈이라는 말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말의 의미와 모순되게도 '서울 촌놈'에 대한 정의 또한 서울 촌놈들이 만들고 있을 확률이 높다. 이 작은 땅덩어리 안에 이렇게도 동상이몽이 심할 줄은 몰랐다. 그 때문에 대학 시절 서울과 지방의 차이에 대한 콘텐츠를 만들기도 했다. 다행히도(?) 서로의 문화를 이해시켜줄 서울 촌놈에 대한 밈이 요즘 많이 떠돌아 다닌다. 사는 곳을 물어볼 때, 누군가는 사는 도시를 말하지만 누군가는 마포, 목동과 같은 동네를 이야기한다. '서울 사람들이 생각하는 우리나라 지도'는 볼때마다 소리내어 웃게 된다. 서울 좌측에 '공항'이 위치하고 동쪽 끝에는 '우리땅', 동남쪽에는 '해운대', 최남단에는 '귤'이 존재하고 나머지는 모두 '지방'이라는 단어로 우리나라 땅이 꽉 차있다. 일부러 사진은 첨부하지 않으니 상상해보시길 바란다. 정확한 표현인 듯 하다. 내가 봤을 때는 많이 봐줘야 남서쪽에 '밤바다'정도 추가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런 상황에 우리나라의 콘텐츠 생산과 비즈니스는 상당수가 서울에서 이뤄진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우리나라에 살고 있을 뿐 겪고 배우는 모든 것들은 사실상 서울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온갖 서울 내의 지역을 언급하는 노래 가사들을 보며 어딘지도 모른채 그저 따라부르고, 맛집은 가볼 수도 없으며, 품절 대란을 일으키는 신제품은 심하면 1년 후에 받아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른다. 이들이 모르는 것은 이것뿐만 아니다. 20대 후반이면 저마다 차 한 대씩은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출퇴근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는 사실은 더더욱이 모른다. 지하철이 없고, 버스 시간표를 볼 수 없는 출근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도 열심히 절약하면 충분히 30대에 아파트를 살 수 있음을 모르고, 천혜의 자연이 펼쳐지는 카페에 줄을 서지 않아도 편히 갈 수 있음을 모른다. 출퇴근에 매일같이 쓰는 2시간이 어딘가에서는 퇴근하고 바람쐬러타 지역에 있는 바다를 오갈 수 있는 시간임을 모른다. 서울 촌놈들은 본인들이 얼마나 당연하게 누리면서 살고 있는지, 또 얼마나 당연하게 불편하게 살고 있는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마치 '우리 촌놈'들 처럼.


나는 한동안 이 곳, 서울에서 살아갈 예정이며 지방과 서울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져 있음에 아주 감사하고 또 기대하며 살고 있다. 종종 한강 너머로 출퇴근을 할때면, 강을 건너는 지하철 안에서 여전히 두근거림을 느낀다. 내일이면 지옥의 2호선을 타고 강남을 향하고 있을 것을 뻔히 알지만 말이다. 10년 후의 나는 조금 달라진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너무 궁금한 채로 서울살이 2년차의 내가 글을 남긴다.


위 글은 처음이라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운 현생 1회 차 한 20대 청년이 기록하는 일, 사람, 환경 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또 다른 이에게는 공감이 또 다른 이에게는 지난날에 대한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청춘기록 #청춘을글이다 #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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