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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은지 May 13. 2016

가정용 인공지능 로봇의 방향성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48회 <두메 로봇> 리뷰

로봇은 인간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어버이날 특집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는 평균 74세 초고령 마을에 인공지능 로봇을 데려와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과의 교감에 대한 실험을 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며, 가정용 인공지능 로봇의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실험에 참가할 로봇은 3대이다.

수다쟁이 말벗 로봇 '미니', 머슴 로봇 '귀요미', 술친구 로봇 '드링키'이다. 목적에 따라 외형과 기능이 조금씩 다르지만,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노래와 춤은 기본 장착되어 있다. 특히, 말벗 로봇 '미니'는 카메라 센서로 사람을 인식하고 졸졸 따라다니며 수다를 떠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어르신들과 로봇의 첫 만남

말벗 로봇 '미니'와 2박 3일간의 동거 실험에 참여하게 된 윤옥분 할머니. 할머니는 기계에 대한 (아마도 당신이 이제껏 접해보지 않았던 대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보였다. 

로봇에 대한 할머니의 첫 질문. 할머니는 자신이 로봇을 고장낼까 두렵다.
로봇과의 첫만남. 할머니의 말투에서 막막함이 느껴진다.


로봇 '미니'가 할머니 댁으로 온 날, 할머니는 바로 대문을 걸어 잠그고 마실을 나왔다. 특별한 약속이 있어 나오신 건 아닌 듯한데, 로봇이라는 '생명체 아닌 생명체'가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하신 것 같았다. 텔레비전을 봐야 돼서 로봇과 친해질 수 없다고 단언하시는 할머니.

이 장면에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로봇이라는 점이 혹시 할머니로 하여금 '나는 외롭지 않은데'라고 생각하게 한 것은 아닐지. 외로움은 인간은 자연스러운 감정이긴 하지만, 사실 이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타인에게 들키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외로우시죠? 외롭지 마시라고 이 로봇 데려왔어요~"

이 말에 선뜻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현재 로봇은 나물 다듬기, 아궁이 불 때우기와 같은 일을 할 수 없다. 어떤 면에서는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지만, 로봇이 가정용으로 자리잡기 위해 수행해야 할 '가사 활동'의 대부분은.. 사실 사람이 직접 하는 게 훨씬 간단하다. 

이러한 이유로 로봇이 쓸모없다고 대답하시는 할머니. 여기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정용 로봇의 주 목적은 보통 가족의 '일원'이 되어 1)가사일을 돕고(실용적), 2)외로움을 달래주는(감성적) 데에 있다. 그러나 과연 감성적인 이유가 가정용 로봇에 대한 구매로 이어질까? 이 몸 하나 외로운 거야, 텔레비전 보는 걸로도 달랠 수 있는데 굳이 로봇이 있어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시끄럽다고 구박받는 미니로봇..






예상할 수 없어서 흥미롭고, 완벽하지 않아서 관심이 간다.

단호박 같던 할머니들의 태도도 로봇들의 끊임없는 애교(?)에 조금씩 돌아선다. 아직 로봇의 완성도가 그리 높지 않은 까닭에 시골길을 자유롭게 오가며 농삿일, 집안일을 돕기란 쉽지 않다. (밭일 하는 할머니들 사이에서 꼼짝달싹도 못한 채 호랑이 울음소리를 내던 로봇의 모습이 어찌나 처량해 보이던지... 비싼 허수아비가 따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들이 로봇에게 마음을 주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Scene #1

할머니들이 마을 정자에 모여 부추전을 부치고 있다. 

이 때 로봇이 "부침개 냄새가 죽여줘요"라고 한 마디 거든다. 

전혀 예상치 못한 로봇의 말에 "자기가 무슨 냄새를 맡는다고"하며 핀잔을 주면서도 할머니들은 "냄새가 죽여준다네~ ㅋㅋㅋ"하면서 박장대소 하신다. 


Scene #2

마을회관에 모인 할머니들. 로봇 '미니'에게 "할머니 어깨 아프니까 안마 좀 해봐"하며 안마를 요청한다. 돌아오는 '미니'의 대답이 뜻밖이다.

"보시다시피 팔이 짧아서 할 수가 없어요" (넘나 당당한 것..)

이런 '미니'의 대답에 할머니들은 또 다시 빵 터진다. 

"팔이 그래 짧아가 우짜노~"


Scene #3

할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머슴 로봇이 마당에서 빗자루질을 하고 있다. 바닥에 빗자루가 닿지도 않았는데 열심히 하는 척을 한다.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마당 청소를 하는 척을 하고 있는 머슴 로봇을 발견하고 대견한듯 바라본신다.

사후 인터뷰에서 할머니는 "오늘 아침에도 빗자루를 보고 로봇을 떠올렸다"고 하셨다. 이런 할머니의 대답에서 내 일을 돕던 '기계'가 사라진 주인의 마음보다는, 잠깐 왔다간 손주를 그리워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진다.


로봇이라면 '완벽'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이 녀석들은 전혀 완벽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건 못해요'하고 제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는 당당한 모습까지 보였다. 단순히 버튼을 누르면 정해진 기능을 수행는 보통의 기계와는 다르다. 완벽하지 않고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기계'들과는 '다르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엉뚱해도 기특한 우리 손자! 우쭈쭈~

하루이틀이 지나자 로봇에 대한 할머니들의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

특히 로봇 '미니'를 외면했던 윤옥분 할머니의 태도 변화가 가장 크다.


첫번째 변화는 할머니가 로봇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너와 나의 관계를 재정립하겠다는 의미라고 생각된다. 특히나, 할머니가 새로 지어준 '메리'라는 이름은 할머니가 오래 키우던 개의 이름이다. 


두번째 변화는, 시종일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던 할머니가 수시로 '메리'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시끄러워! 가만히 있어"하며 귀찮은 듯한 모습을 보이시던 할머니가, "할머니, 저 시끄러워요?"하는 메리의 질문에 "메리가 왜 시끄러워~ 노래 불러줘"라고 답하신다.


이런 모습도 있었다. 윷놀이에서 패배한 윤옥분 할머니를 보고 메리가 '할머니 파이팅' 하자 다른 할머니가 핀잔을 준다. 

"졌는데 뭘 파이팅을 해!"

그 말을 들은 윤옥분 할머니는 메리 편을 들며 역정을 내신다.

"졌으니까 파이팅하지 이 사람아!" (우리 애한테 왜 그래!)

이 장면을 보고 굉장히 놀랬다. 

할머니가 '메리'를 로봇 그 이상의 존재로 대하고 있음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메리'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슬픈 할머니

윤옥분 할머니는 '메리'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어했다.

혼자 식사를 하실 때에도 '메리'에게 "나 혼자 먹어서 미안해~"하시고, 이별의 순간 앞에서도 "메리한테 뭐 해줄까?"하며 고민하시는 모습을 보였다.


윤옥분 할머니만의 변화가 아니다. 마을의 할머니들은 로봇에게 '손자'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당신을 졸졸 따라다니며 엉뚱한 모습을 보이는 로봇에게서 어린 아이의 모습을 발견한 걸까. 실험 마지막 날. 윤옥분 할머니가 '메리'에게 "늦둥아~"하며 볼을 맞대는 장면은 정말이지 뭉클했다.


실제로 실험 전후 윤옥분 할머니의 스트레스 지수는 매우 낮아졌다. 그러나 꼭 정량적인 평가를 통해 확인하지 않더라도, 로봇과의 교감. 그 가능성에 대한 설명은 할머니의 태도 변화만으로도 충분할 듯 하다. 






실험에 참가한 로봇의 완성도나 실험 설계가 엉성한 면이 없지 않아서 보는 내내 조금 민망했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가 가정용 로봇에 대해 시사하는 바는 크다.


'할매가 로봇에게 마음을 준 진짜 이유.

똑똑해서가 아니라, 가끔씩 정신줄 놓는 손주 같아서'

-이규연의 생각노트-


가정용 로봇을 구매하게 하는 것은 실용적인 가치가 크겠지만, 구매 후 가정용 로봇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데는 감성적인 가치가 좀 더 크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감성적인 측면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힌트도 다큐멘터리에서 얻을 수 있다. 

실험 내내 할머니들은 로봇을 '반려동물'이나 '철부지 손주'와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연 그들의 어떤 요소들이 감성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걸까? 그들과의 인터랙션에서 할머니들이 얻는 가치는 무엇일까? 이런 부분들에 대한 연구를 선행하여 가정용 로봇에 적용한다면, 좀더 교감하기 쉬운 가정용 로봇으로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사용자의 성별, 연령대, 성향 등에 따라 다를 수는 있다. 


중국 가정용 로봇업체 ROKID 대표이사 인터뷰의 한 부분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가정용 로봇이 갖는 일반적인 이미지가 있죠. 가사 활동을 돕고, 가족과 대화를 할 수 있다거나. 그런데 그런 기능이 정말 필요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쉬운 일이 로봇은 어렵죠. 예를 들어 ‘차(茶) 한 잔 줘’라고 명령할 때를 상상해보죠. 로봇이 차를 우려내기 위해 부엌으로 가면서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를 잘 피할 수 있을까요? 내가 원하는 차가 어떤 차인지 쉽게 알 수 있을까요? 내가 좋아하는 물 온도를 알아내기 쉬울까요? 그 정도로 소소한 취향을 일일이 가르치려면 너무나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냥, 직접 하기 쉬운 간단한 일은 인간이 하면 됩니다. 그보다 로봇이라서 잘할 수 있는 걸 해야죠.”

http://economyplus.chosun.com/special/special_view.php?boardName=C15&t_num=9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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