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음가짐으로 연구를 해야할까
Martin, D. (2008). Doing Psychology Experiments, Thomson Wadsworth. Ch. 5: How to Be Fair with Science.
초등학교를 입학하며 11년 동안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배우는 지식 소비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이후 대학원이라는 길을 선택한 나는 난생처음으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내는 역할을 맡았고, 정해진 답도 심지어는 주어진 문제도 없는 ‘연구’라는 것이 굉장히 막연하고 어렵게 느껴졌다. 석사학위 논문을 집필할 때쯤 지도교수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은, 지식 생산자로서의 내 역할과 책임이 무엇인가 생각해볼 계기가 되었다. 교수님께서는 “연구란 무수히 많은 돌이 쌓여있는 돌탑 위에 나의 돌 하나를 얹고 또 다른 연구자들에게 디딤돌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그러니 연구자 혼자 대단한 발견을 해냈다며 그것을 뽐내기보다는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디자인을 전공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아이디어나 직감에 의해 솔루션을 내놓으려는 버릇이 있었는데, 기존의 지식 체계를 존중하고 또 엄격하게 연구를 수행해야 하는 연구자로서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일깨워주시는 말씀이었다. 그렇게 연구의 멋짐에 반한 나는 박사과정에 진학했고, 태평양처럼 넓고 깊은 지식의 덩어리에 허우적대며 정말 우주 먼지만큼 작은 지식을 더해보겠다고 갖은 애를 쓰고 있다.
이번 주에 읽은 책 <Doing Psychology Experiments>는 심리학 연구의 교재로 널리 활용되어 왔을 정도로 연구 수행을 위한 필수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한 챕터를 할애하여 이제 갓 연구를 시작한 이들에게 연구자가 지녀야 할 에티켓을 안내하고 있다. 무책임하게 생산된 지식은 많은 동료 연구자들의 시간과 노력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챕터를 읽으며 나는 오랜 시간 쌓아온 지식 체계를 수호하려는 저자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특히 ‘깔끔한 속임수 (Neat tricks)’는 지식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에 오히려 권장되는 행동인데, 굳이 이 챕터에서 소개한 이유는 무엇일까? 실험을 실패한 이들이 더러운 속임수로 지식 체계를 위협하는 것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초보 연구자가 마냥 낙담하며 기존의 자료들을 통째로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조금 더 효율적으로 연구를 수행하도록 조언을 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지식 체계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연구자 개개인이 양심을 지키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연구실, 학과, 대학, 더 나아가서는 학계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개인의 비윤리적인 행동을 감시하고 페널티를 주는 것도 중요하나, 그러한 행동을 예방하기 위한 지원책도 같이 주어져야 하는 게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어느 책 구절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길에 떨어져 있는 빈 깡통을 줍는 일은 누구의 의무도 아닙니다. 자기가 버린 게 아니니까요. 그런 일은 모두의 일이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이’입니다. ‘어른’이란 그럴 때 선뜻 깡통을 줍고 주변에 쓰레기통이 없으면 자기 집으로 가져가 분리수거해서 재활용품 수거일에 내놓는 사람입니다. ‘아이’는 시스템 보전이 모두의 일이므로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른’은 시스템 보전은 모두의 일이므로 곧 자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