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은지 Apr 10. 2021

박사과정, 설득을 훈련하는 과정

Kajiya, J. (1993). How to get your SIGGRAPH paper rejected. 


이번 주 읽기자료는 1993년 SIGGRAPH의 papers chair를 맡은 Jim Kajiya가 전수하는 “학회 논문 reject 당하는 법”이다. 먼저 저자는 약 3달이 걸리는 논문 리뷰 절차를 소개한다. 

논문 리뷰의 꽃은 paper selection meeting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출된 모든 논문에 대해 담당 리뷰어들이 리뷰를 작성하고 점수를 매기고 나면, 논문의 당락을 결정하기 위한 끝장토론이 벌어진다. 저자에 따르면 논문의 약 60%가 쉽게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때문에 일정은 항상 예정보다 늦어진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이야기라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논문 리뷰 절차에 대해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설명을 듣고 나니 어쩐지 모든 리뷰어들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조금의 실수는 이해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고강도의 paper selection meeting을 겪은 이들은 해마다 SIGGRAPH에 페이퍼가 accept되는 확률도 높아지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이미 능력자라서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리뷰어로써의 시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paper selection meeting에서 주로 다뤄지는 쟁점을 요약하여 review criteria를 서술한다. 연구의 요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가? 학회가 다루는 연구분야인 컴퓨터 그래픽스에 뚜렷한 기여를 할 수 있는가? 후속연구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하는가? 학회에 속한 독자들이 관심있어 하는 주제인가? 잘 쓰인 글인가? 재현가능한 실험인가?  

매번 논문을 쓸 때 확인하는 것은 학회 테마, 마감 제출 기한, 포맷 정도다. 마치 숙제를 제출하는 학생의 자세로 논문 submission을 해왔었다. 내가 쓴 논문을 리뷰하는 사람들이 누구이고, 어떤 여건 속에서 리뷰를 하고 있을지 전혀 상상해보지 못했다. 시간에 쫓겨 방대한 양의 논문을 분류/선정하고 리뷰하는 리뷰어들의 여정을 들으며, 조금 불친절하거나 내용이 부족하다고 생각이 드는 리뷰를 보며 불평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리뷰 시스템은 익명으로 운영되지만, 그 너머에는 결국 봉사정신으로 동료와 후배 연구자들의 페이퍼를 리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자 Kajiya의 말처럼 논문 리뷰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완벽할 수가 없다. 이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논문을 작성하는 연구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은 바로, ‘읽기 쉽고 보기 좋은 논문’을 쓰는 것이라 당부했다.

이 아티클을 읽으며 나는 우리 연구실에서 매주 월요일 두시간씩 랩세미나를 떠올렸다. 랩세미나는 지도교수님과 모든 연구실 학생들이 참석하며, 매주 두 명의 학생이 안건을 들고온다. 각자의 학위연구를 어떻게 진행하고 있으며 어떤 고민이 있는지 터놓고 디스커션을 하는 시간이다. 학위연구 심사처럼 공식적인 자리는 아니지만 매번 긴장하고 자료를 준비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presentation을 잘못 준비해가면 그 오해를 푸는 데에만 시간을 쓰게 되어 정작 내가 논의하고 싶은 부분에 대해 충분한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발표자리는 아니기 때문에 보통은 사고의 흐름 순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그러다보면 교수님께서 중간 중간 개입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 나도 A가 아니라 B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건데 왜 오해를 하시는 걸까’, ‘그 내용은 이따가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왜 조금 더 참아주시지 않는걸까’하며 답답하고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통 연구실 동료들은 paper champion 이 된다. ‘이 친구가 이야기하는 것은 이런 것인 것 같다’, ‘이런 부분이 재미있는 것 같다’, ‘이렇게 표현하면 훨씬 더 나을 것 같다’ 라는 코멘트를 주며 내 연구가 조금 더 이해하기 쉽고 흥미로운 방향으로 표현될 수 있도록 돕는다. 

‘나는 얼른 이 스터디에 대해 컨펌을 받고 넘어가고 싶은데, 왜 이런 소모적인 디스커션에 발목잡혀 하는 걸까?’ 하는 불만을 품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아티클을 읽고 난 뒤, 랩세미나 시간은 내 연구를 잘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수련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과 연구실 동료들은 내 연구에 태클을 거는 사람들이 아니라 연구가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가이드를 해주는 분들이다. 이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내가 과연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억울해하기보다는 그들의 피드백 속에서 핵심을 간파하고, 내 연구를 보다 더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욱 건설적인 방향일 것이다. 

박사과정을 하며 내가 훈련하게 될 여러가지 것들 중 하나는 바로 ‘남을 설득하는 역량’이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생각의 씨앗을 퍼트리기에 적당한 크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