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의 회복을 말하는 디자인

우리나라에서 로컬을 말하는 것은 일종의 저항이 아닐까

by 우은지

서점에 갈 때마다 잘 큐레이션된 책들 가운데에서 나의 뿌리를 찾으려는 시도를 한다. 로컬, 커뮤니티, 도시 라는 키워드를 따라가보다 보면 결국 건축과 도시계획 분야로 다다른다. 맥락적으로는 분명 내가 관심 있는 주제이지만, 접근법이 다르다. 그곳의 담론은 주로 공간과 구조, 계획과 제도에 대한 것인데, 이런 것들은 나의 전공분야는 아니다. 나는 개인의 창의성과 니즈,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 이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기술적 환경의 설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반면, 디자인 코너로 가면 또 다른 어긋남을 느낀다. 시각 디자인, 그래픽, 크래프트, 예술에 가까운 책들이 많다. 아름답고 정교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과 실천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늘 궁금하다. 내 분야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화두이며 어떤 책들이 나오고 있는지를 찾아보려면 어느 섹션을 들여다봐야 할까? 서점 몇 군데에서 ‘design theory’ 섹션을 발견했다. 주로 유럽에서 출간된 책들이다. 생각해보면 디자인학회에서 비슷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도 대부분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소셜 이노베이션 디자인은 밀라노, 참여적 디자인은 북유럽. 주된 주제는 페미니즘, 반식민주의, 전쟁과 난민, 권력과 억압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여전히 내가 찾는 ‘로컬을 다루는 디자인 연구’는 보기 힘들다. 이 담론들 속에서 로컬은 독립적인 맥락보다는 더 큰 의제의 배경으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나의 학문적 뿌리는 이곳인 것 같은데,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걸까?

생각을 정리해봤다.


산업디자인은 전쟁과 산업화의 맥락 속에서 인간의 노동을 효율화/최적화하려는 목적과 강하게 연결되어 발전해왔다. 이에 대한 저항으로 ‘참여적 디자인’이 등장했다. 참여적 디자인은 노동자를 다시 인간으로 복원하려는 시도였다. 더 효율적으로 일하게 만드는 디자인이 아니라, 일의 방식과 환경에 대해 스스로 발언할 수 있게 하는 디자인. 그 의미에서 참여적 디자인은 ‘인간성의 회복’을 지향해왔다. 이 흐름 속에서 페미니즘, 반전, 반식민주의는 디자인이 저항의 언어를 획득하는 데 중요한 축이 되었다. 그것은 유럽 사회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해온 시민사회와 이미 존재하던 지역 공동체를 전제로 가능했던 저항의 형태이기도 하다.


반면,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전혀 다른 경로를 거쳐왔다. 압축 성장, 국가 주도의 산업화, 수도권 중심의 자원 배분. 한국에서 산업화는 너무 빠르고 하향식으로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지역은 충분히 말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따라서 지역이 경쟁력을 잃은 것은 취향이나 문화적 선택 이전에 구조적 결과물이다. 지방 소멸, 인구 유출, 생계의 붕괴, 관계망의 해체. 이 맥락에서 로컬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낭만이나 힙함의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 중심주의와 산업화 논리에 의해 변방으로 밀려난 삶의 조건을 다시 드러내는 행위다.


유럽에서 로컬은 이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로컬을 디자인하는 일은 종종 문화적 차별화나 브랜딩 전략으로 읽힌다. 하지만 한국에서 로컬은 이미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로컬을 디자인하는 일은 삶의 터전이 소멸되는 구조에 대한 대응이 된다. 이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서구의 저항 언어만을 보편적 기준으로 삼는다면, 아시아에서 나타나는 저항의 형태는 정치성을 갖기 이전에 ‘경제적’ 혹은 ‘마케팅적’으로 축소되어 버린다.


로컬은 단순히 브랜드를 잘 만들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유럽에서 참여적 디자인이 과잉된 산업 시스템 속에서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저항이었다면, 한국에서의 로컬 중심 디자인은 과도하게 집중된 성장 구조 속에서 삶의 기반을 지키려는 하나의 저항으로써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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