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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뽀로리 May 20. 2023

아이들과 함께 UX리서치 하기

새싹 UX Researcher의 직업 일지!




5살이요? 저 조카도 봐본 적 없는데요!


일을 시작한 후, 제 첫 UX리서치 경험은 FGI였어요. 교육 업계에서 일하던 서비스 기획자였거든요. 아이들을 위한 학습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었고, 런칭이 가까워지던 시점이었어요. 그때 당시 팀장님은 우리 서비스가 우리 마음에는 드는데, 실제로 시장에서 먹힐까? 가 궁금하셨던 것 같습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도 ‘우쭈쭈 내새끼’가 되어버린 우리 서비스를 어떻게 객관적인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졌어요. 이런 팀의 고민에 저는 UX리서치를 진행하는 건 어떤지 제안을 드렸답니다. 그때 당시에는 리서처가 아니라 기획자였지만, 제가 연구실에서 배운 건 대부분 리서치에 관련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수행할 수 있었고, 당시 팀원들의 고민에서 리서치가 좋은 해답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산도 많이 필요하지 않을 거라고 설득했고요. 그래서 팀에서 내린 결론은 MVP가 만들어진 시점이니 한 번 리서치를 진행하자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프로젝트의 UX리서치 총 담당이 되었어요.


그렇게 리서치를 해보자고 결론을 내린 건 좋았는데(참 많은 설득의 과정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유관부서들에게 전부 필요성에 대해서 설득하는 게 참 눈물이 났던 기억이 있네요.)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의 저는 서비스 기획만 했지, 이 서비스를 사용하게 될 주 고객 즉 아이들의 수준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교육 업계다 보니 아이들의 학습 수준을 가장 많이 고려하는 건 콘텐츠 팀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건 콘텐츠 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잘못 판단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느 정도의 학습 수준을 가지고, 평소 생활 태도는 어떻고 수업은 어느 정도로 집중할 수 있는지 등을 모두 파악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포기란 없는 법이니까요! 직접 아이들을 대면하고 아이들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어본 팀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일종의 사전 인터뷰를 진행한 셈이었는데요. 이분들이 말씀해 주신 경험과 데이터, 노하우 등을 통해서 제 계획이 대폭 수정되었답니다. 생각보다 고려할 사항이 정말 많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대체 뭘 고려해야 할까요?


제가 아이들과 함께하는 리서치를 진행하기 위해서 평소와 다르게 고려했던 부분은 총 네 가지였어요. 어른들을 대상으로 할 때보다 훨씬 더 섬세한 생각이 필요했습니다. 아이들이 그냥 아이들이 아니라 5세에서 8세까지의 아주 어린아이들이었거든요.


첫 번째로, 아이들의 영어 및 전자기기 사용 수준을 반드시 그룹화해야 했어요. 사실 리서치에서 제가 주로 궁금했던 건 그 사람들의 경험이라, 크게 고려하지는 않았던 요소들이었는데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할 때는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 또 강조를 해주셨습니다. 아이들을 직접 대면하는 직원분들에게 왜냐고 물어보자 해주셨던 대답이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뽀로리님, 수업을 듣고 있는데 옆에서 누가 뽀로리님보다 영어를 너무 잘 말해요. 그런데 선생님이 뽀로리님한테 그 사람 앞에서 영어로 말해보라고 하는 거예요. 좀 위축되시지 않으세요? 아이들은 그런 위축이 백 배는 더 심해요. 심적으로 아주 속상해하고, 심지어는 울어버리는 아이들도 많답니다. 비슷한 수준끼리 나누셔야 해요.” 저는 이 말을 듣고 아! 하고 깨달았답니다. 제가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해서, 아이들까지 덤덤하진 않을 수 있다는 걸 잊었기 때문이에요. 원래는 그룹을 다른 기준으로 나누려고 했는데(학습 수준도 한 요소였지만요.) 전반적으로 그룹을 나누는 기준을 다시 설정한 이유였어요.


FGI 결과 보고에서도 그룹을 나눈 이유를 설명했어요!


특히 어릴수록 성별에 따라 말을 잘할 수 있는 경향도 다르고, 1살 차이가 발달 수준의 꽤 큰 차이를 낸다는 것도 강조하셨어요. 다 큰 뒤로는 1살 차이면 친구라는 느낌이 있지만,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무럭무럭 성장하는 시기라면 언어 발달이 꽤나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해요. 그래서 저는 그룹을 나눌 때 연령 역시 한 가지 구분 요소로 넣게 되었습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할 때는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어요.


두 번째로, 모든 설문지를 그림으로 구성하는 것이었어요. 사실 이 방법은 너무 유명한 어린이들의 장난감 회사 레고(LEGO) 사의 방법론이었는데요. 본인 감정의 척도가 잘 세분화되어있는 성인들은 5점 척도(매우 아니다 – 매우 그렇다 등 감정을 5단계로 나누어 받는 설문 답변 방식)에서 본인의 심정을 잘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달랐어요. 감정이 세분화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글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때문에 척도를 표정 그림으로 수정하여 전달했어요. 딱딱한 텍스트보다 마음이 어떤지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FGI를 진행할 때, 보호자님들도 그림을 기준으로 아이에게 설명하시더라고요. “지금 마음 표정이 어때?” 하고요. 아주 어린 편에 속하던 5살 친구도 텍스트는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림으로 만들어진 설문지는 쉽게 응답하는 모습을 보였어요. 아주 뿌듯했습니다.


설문 문항은 최대한 간단하게, 그림으로!


세 번째로, 계획했던 질문지를 확 덜어내는 것이었어요. 사실 리서치를 진행하다 보면 이것도 궁금하고, 저것도 궁금하니까 결국 뚱뚱한 질문지들을 만들게 되잖아요. 이후에 정신을 차리고 결국 덜어내게 되지만요. 하지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질문지들은 제 생각보다 훨씬 더 덜어내야 했어요. 이 정도 질문이면 정말 마지노선이야 라고 생각할 정도로요. 이유는 바로 아이들의 집중력이 30분 정도에 그쳤기 때문이었어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40분에서 50분 수업을 하더라도 후반에 가면 질려서 드러눕는 아이들도 많고, 마지막 10분에는 집중력이 엉망이 된다는 팁을 들었거든요. 실제로 아이들을 관찰해 보니 그랬습니다. 역시 10년 이상씩 아이들을 지켜본 직원분들의 혜안은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쉬운 말로, 허용선에서 직관적인 말로 구성했고 아이들의 흥미가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질문지를 구성했어요. 아이들은 30분 이내로 리서치에 참여하게 되었고, 20분 남짓의 추가 시간에서는 보호자님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네 번째로, 흥미를 느껴야 하는 건 아이지만 실 구매자는 보호자라는 걸 잊지 않으려 했어요. 사실 리서치 자체가 제게는 의미가 있었지만 회사의 입장에서는 ‘그래서 이게 잘 팔릴까?’가 문제였잖아요. 아이들이 사달라고 떼를 써도 보호자분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면 서비스를 잘 판매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보호자님들에게서는 아이들이 직접 말할 수 없는 평소의 경험, 맥락 등을 물었어요. 어떤 어플리케이션들을 써봤고, 학습 관리는 어떻게 하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어떤지 등등 정말 최근 일주일간의 이야기들을 모두 물어봤네요. FGI로 진행되다 보니 보호자님들이 서로 공감도 하면서 이야기 꽃을 피우시더라고요. 기본적으로 아이와 학습에 관심이 많은 분들을 모시다 보니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보호자님들을 통해 알아낸 사실은 ‘아무리 학습 앱이라고 해도 핸드폰은 많이 안 봤으면 좋겠다!’ 였어요. 공부를 한다고 해도 전자기기를 오래 보고 있는 걸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던 것이죠. 그래서 학습 커리큘럼 자체가 하루에 짧은 시간을 소비해서 진행하게 구성되어야 했어요. 아이가 공부하는 건 알겠는데 자라나는 아이다 보니 시력 걱정에 저러다 폰 중독이 되는 거 아닌가 싶고…라는 보호자님의 말이 떠오르네요. 아주 좋은 포인트였습니다.


보고자료에서도 현장 스케치를 추가해서 집중도를 올렸어요!







✍2주간의 사용일지도 함께 확인할게요.


FGI를 모두 끝낸 뒤, 2주간 어플리케이션을 자율적으로 사용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드렸어요. 일종의 2차 인터뷰였습니다. 학습 어플리케이션이다보니 단기간으로 확인되는 사용성이 다는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실 생활 속에서 얼마나 플레이하고 흥미를 느끼는지, 어느 지점에서부터 흥미가 떨어지는지 등을 확인해야 했어요. FGI에 참가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테스트 아이디를 배포했고 얼마나 사용했는지를 함께 체크했습니다. 보호자분들과의 비대면 인터뷰도 진행했어요.


2차 리서치의 결론은 난이도가 전체적으로 조절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높은 편에 속해서 저희가 기대했던 학습 수준보다 미달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몇몇 아이들은 아주 뛰어난 수준으로 과제들을 수행했지만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어렵게 느끼니 흥미가 떨어져 가는 걸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흥미가 떨어진 지점이 대부분의 아이들에게서 비슷했습니다. 공통적으로 문제를 겪었다는 것이었어요. 이에 해당 지점의 난이도를 조절하고, 동기부여가 필요한 부분에 새 시스템을 반영하기로 결정했어요.


저희 생각보다 훨씬 떨어졌던 학습 정도ㅠㅠ


물론 그냥 공부가 재미없었던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처음 학습 기록이 훅 떨어지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는 저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인터뷰를 진행해 보니 제 생각과 많이 달랐어요. 아이들이 열심히 해도 안되더라고 속상한 마음을 전해주신 보호자분들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그래서 뭘 바꿨냐면!


저희 팀에서 확인한 주요 문제는 아이들이 어플리케이션의 평가 시스템에 저희 생각보다 훨씬 예민하다는 것이었어요. 전 레슨이 게임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점수가 확실하게 나오고, 뭐가 틀렸는지를 피드백받을 수 있었거든요. 이 부분을 아주 속상해하더라고요. 아이들을 위해서 조금 유하게 작성했다고 생각한 피드백으로도 요. 그냥 빨간색 엑스 표시 자체가 아이들의 마음을 충격에 빠트린다는 걸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니 좌절하게 되고, 어플리케이션 자체에 흥미를 떨어트린다는 점을 파악했어요. 그래서 전반적으로 피드백 문구를 유하게 수정했어요. 오답을 제출하더라도 되도록 틀렸다는 느낌을 주지 않게 UI도 변경했습니다. 아이들의 학습 정도는 보호자님이 볼 수 있는 설정 메뉴에 점수를 표기해 주었어요.


이 밖에도 녹음 시 시작 지점과 끝 지점의 박자가 어긋나는 점을 개선하기로 하고, 메인 UI를 전반적으로 바꾸었어요. 저희가 버튼을 너무 작게 제공하는 바람에 터치에 오류가 많이 생겼거든요. 그리고 메인 홈의 UI를 더 크고, 아이들이 인식하기 쉬운 방식으로 변경했습니다.


사실 개선해야 하는 지점은 20개 정도가 도출되었는데요. 바로 적용할 수는 없으니 우선순위를 넣어 WBS를 제작했어요. 시급한 순서대로 업데이트 일정을 계획해서 적용했답니다. 그렇게 어플리케이션을 무사히 출시할 수 있었고, 평점이 4.8점으로 꽤 높게 받았어요. 성공적인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합니다. 보호자분들이 남겨준 평가를 보는 게 제 낙 중 하나기도 했고요.


저도, 회사도 많이 배웠던 리서치였던 것 같습니다. 이 리서치를 진행할 수 있게 되어서 아주 기뻤고 지금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제 업무 커리어를 통째로 바꾼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해서 신경 쓸 게 두 배였지만 그만큼 느끼는 점도 많았습니다. 


그러니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도 리서치를 할 경험이 생긴다면 회사를 먼저 설득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꽤 오래전의 이야기인데 아직도 재밌게 했던 기억이 있네요. 

글을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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