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 UX Researcher의 직업 일지!
그냥 몇 사람이 불편하다고 한 거 아닌가요? 어떻게 믿어요?
사내에 UX 리서치 결과를 전달하는 건 장벽이 많다. 이는 이전 글에서 말했듯, 팀 내에 로드맵을 짜내고 부족한 장비를 채워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세팅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합의점이 필요할 뿐이지 마냥 막막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리서치 결과 전달은 다르다. 마냥 막막할 수가 있다. 열린 마음과 수용적 자세는 나의 개인적인 희망사항일 수도 있다. 글의 시작부터 부정적인 말을 늘어놓아 마음이 편치 않지만, 내가 겪은 바는 그렇다.
결과 보고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장벽이 세워져 있다. 아주 예리하고 높게 말이다. 이를 짚어낸 이유는, 이 마음 속 장벽이 가장 넘기 힘든 산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어렵다고 말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이건 말 그대로 장벽이란 표현이 옳다. 열심히 올라 보긴 하지만 제대로 넘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말이다.
리서치 결과 보고에 대해서 회고하자면, 늘 첫 보고 때를 떠올리곤 한다. 떨리는 마음과 헛 나온 말 때문이 아니라, 그때 들었던 말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냥 몇 사람이 불편하다고 한 거 아닌가요? 이 결과가 다른 사람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나요?” 라는 질문이었다. 그때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내가 진행했던 리서치 방법론은 ‘사용자들은 이렇게 생각해요.’ 라는 인사이트의 정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몇몇 방법론들은 여러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모아 분석하게 되어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분석 결과가 대표성을 갖는다고 가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유관부서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틀린 생각이었다.
앞선 글에서도 꾸준히 말하고 있다시피, 모두가 UX에 대한 지식 기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방법론에 대한 사전 지식은 더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가 ‘이 방법론 정말 좋은데요! 뭐라고 말할 방법이 없네!’ 라고 하면, 아무리 적합한 방법론이었을 지라도 설득력이 떨어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다들 이렇게 사용하거든요. 이 대답은 리서처에게는 편할 수 있으나, 설득에는 좋은 방식이 아닌 듯 보인다. 적어도 나의 경험은 그러했다. 저런 대답으론 좀처럼 설득이 되질 않았다. 뭐라 설명할 수는 없는데요, 일단 좋긴 좋거든요? 라고 말하는 리서처를 뭘 믿고 신뢰한단 말인가?
리서치 결과 보고를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받아본 질문들을 추려 정리해보면, 개발과 기획팀은 ‘자신보다 이 기능을 잘 알고 있을까? 그냥 불편하다고 하면 다 고쳐줘야 할 필요가 있나?’ 라는 질문을 에둘러 했다. 디자인 팀은 ‘이 제안점은 더 나은 방식으로 줄 수 있지 않나? 익숙해지면 다들 잘 사용하던데…’ 라는 생각에 기반한 질문을 많이 했고, 그 외의 유관부서들은 ‘그냥 궁금한 걸 몇 사람한테 질문한 거 아닌가?’ 라는 마음을 가장 많이 드러냈다. 이들의 궁금증이 잘못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리서치 결과 보고 초기에는 당연히 존재할 수 있는 질문들이다. 리서치 결과는 귀찮은 감정을 야기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좀 더 결과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처음은 명확한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으로
궁극적인 UX를 하려는 건 아니고, 사용자들이 불편한 걸 유관부서에 잘 전달하려는 거예요. 이게 내가 처음 팀에 들어왔을 때 그룹장님에게 들었던 말이다. 그게 UX인 것 같은데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어쨌든 나와 회사의 마음이 같다는 걸 확인한 셈 아닌가. 그걸로 족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에게 저런 말을 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리서치를 그다지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리서치 결과를 쌍수 들고 환영하는 사람들과 일하고 있다면, 정말 축하할 일이다.) 지나치게 문제점을 이야기를 하지 말아줬으면 한다는 의사 표현이기도 했다.
들었던 말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제 막 출범한 팀의 입지가 그다지 굳건하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팀의 성격과 방향성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결과가 필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선택한 전략은 ‘한동안 UT를 제공하자’ 였다. IDI나 FGI에 비해서 실제 보이스가 돋보이고, 사용자들이 무엇을 불편해 하는지 노골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 사용해보면서 어려워하는 보이스나 메뉴를 찾지 못하는 등의 행동들이 담긴 영상을 하이라이트로 제공했다. 또한 이미 숙련된 사용자들과 초보 사용자들의 차이를 비교하여 보여주었다. 사용자들이 진행한 과제에서 가장 높은 오류율을 보여주는 지점을 짚어냈다. 전체 과제를 수행하는 데 걸린 시간을 체크하고, 숙련된 리서처가 진행한 시간과 비교하여 비율로 환산했다. 정성적인 보이스, 하이라이트 영상에 덧붙여 정량적인 수치인 오류율과 소요시간을 함께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처음부터 페르소나나 저니맵등을 보고서에 넣지 않았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보일 수 있는 내용들은 분석했더라도 보고서에서는 제외했다. 나야 그 과정들이 모여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던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었다. 팀에서 한 초기 리서치의 목표는 조금 달랐다. 현재 우리 팀이 이런 결과를 얻었고, 이는 ‘객관적인 결과’다 라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온통 그래프와 보이스,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가득 찬 보고서가 나왔다. 솔직히 예뻐 보이는 문서는 아니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단순히 ‘사용자들은 이 부분을 불편해해요’ 보다 훨씬 나은 설득을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는 질문들이 있다. ‘몇 사람이 불편하다고 한 걸 일반화 할 수 있을까요.’ 리서처라면 반드시 받아보는 질문 중 하나일 것이다. 초보 사용자들은 저희 서비스를 잘 모르는데 익숙해지면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배움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같은 결의 질문들이 온 사방에서 들어오기도 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나는 Nielsen Norman Group의 아티클을 차용했다. Why You Only Need to Test with 5 Users는 사용성 테스트 하나를 진행할 때, 5명 이내의 참가자로도 충분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5명의 사용자가 75% 이상의 문제점을 발견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보고서 참고자료에 아래 그래프를 넣고 있다. 그리고 ‘일반화’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해당 그래프를 통해 간단한 대답을 한다. 생각보다 그래프의 효과는 훌륭하다. 보고서 한 장을 할애할 가치가 있다.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잘하자는 마음이에요.
당연한 말이겠지만 리서치 결과는 좋은 부분만 말해주지 않는다. 우리 서비스 너무 좋아요! 라고 추켜세우기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대체로 사용자들이 이 부분을 불편해하고, 이탈율이 높아지니 수정을 고려해 달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서비스를 직접 만드는 부서에서는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 UI와 UX가 최선으로 생각하고 구축해낸 합의의 결과물이 아닌가. 노력의 결정에 말을 얹는 게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을 테다. 나도 그랬기 때문에 그 마음을 너무도 이해한다.
때문에 보고 때의 논조는 리서치 팀이 반드시 신경을 써야하는 부분으로 보인다. 처음 보고를 한 이래로, 우리 팀의 어조는 늘 ‘잘못 만들었으니 고쳐주세요’가 아니었다. 잘못된 설계가 분석 때에 드러나더라도 그랬다. 같이 좋은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가짐을 우선적으로 어필하고자 했다. 최대한 사용자들의 보이스를 전달했고, 팀의 사견을 제외하는 방향으로 문서를 만들었다. (물론 지금은 이렇지 않다. 적절한 제안점을 제시할 줄 아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데이터만 가지고 이야기하고자 했다. 부족한 부분은 영상으로 채우고, 정량적인 분석을 더했다. 팀이 초기 단계에 놓여있기 때문이었다.
리서처의 목표는 잘못을 짚어내는 데 있는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결과적으로 우리 서비스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걸 바라고 있지 않은가.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은 주요하다. 결과 전달 방식은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이렇게 하나하나 신경 쓰는 게 귀찮은 일일 수 있으나,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보고 후의 협의도 부드럽게 만들어야 한다. 보고를 마치고 나면, 이따금씩 개발 팀이나 기획 팀에서 질문이 들어온다. 이 부분을 A로 풀어야 할지, B로 풀어야 할지 고민이라는 게 보통이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몹시 기뻐진다. 그리고 이를 숨기지 않는다. 최대한 진중하게 안건을 고민하고, 생각해 두었던 방식이 있다면 제안해보기도 한다. 유관부서와 대화하면서 최대한 쉬운 방법이 아닌 옳은 방법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보고 회의 때보다 훨씬 더 유해진 태도로 서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기 때문에 수월하다. 같이 고민하겠다는 태도를 여러 번 내비치면, 이후의 리서치 보고가 더 쉬워진다.
모든 제안이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다
현재는 어느정도 팀이 자리가 잡혔다. 때문에 UT만 고집하지 않고, 필요한 방법론이라면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다. 대신 유관부서를 어떻게 이해시킬 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그래프를 넣어봤다가 빼봤다가, 인사이트 위치를 바꿔보았다가, 보고서 포맷 자체를 갈아 엎어보다가 등등… 결과 보고에 베리에이션을 주고 있다. 최근에는 정량조사와 정성조사를 한 세트로 묶어버리는 프로세스를 시도 중이다. 무조건 정량적으로 뒷받침이 되는 결과를 내면 더 편할까 싶은 마음에서 그랬다. 이 시도가 어떤 결과를 낼지는 차후에 서술해보겠다. 어쨌든, ‘결과를 어떻게 믿을까요?’ 라는 질문은 리서처가 늘 싸워내야 하는 대상인 것 같다.
하지만 질문과 치열한 싸움을 했다고 해서, 열심히 노력했다고 해서 모든 제안이 적용되는 건 아니다. 일정이 어려울 수 있고, 반영하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걸 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다. 슬프게도 내부에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고 고칠 수 없는 부분일 수도 있다. 초기에는 이런 일이 생기면 퍽 속상했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한 것 같고, 설득해내지 못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모든 제안이 좋게 보여 지지 않을 수 있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다음에는 더 좋은 방법으로 설득해보면 된다. 첫술에 배부른 게 어디 있을까. 이 마음으로 꾸준히, 자기 자리를 지키다보면 언젠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