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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뽀로리 Sep 21. 2022

UX 리서치에서 질문하기 : 미세팁

새싹 UX Researcher의 직업 일지!








개방적이고 중립적이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맥락을 파악하는 질문이 뭔데요….


‘질문을 개방적으로 하세요. 중립적으로 하세요. 사용자에게 정답을 정해 놓고 유도하지 마세요.’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가? 그 물음에 대한 답으로, 이와 같은 내용을 참 많이도 봤다. 책과 강의, 구글의 힘을 빌려 리서치 질문법을 찾다보면 모두 비슷한 말을 하고 있었다. 리서치를 제대로 진행해 본 적이 없던 시절의 나는 저 말들을 보며 생각했다. 대체 저게 뭔데요.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건가요.


척하면 딱하고 알아들으면 세상이 얼마나 밝을까. 나는 아쉽게도 그렇게 하질 못했다. 그 와중에 한 우물 파는 데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인간이라 우물 파기를 멈추지도 못했다. 대체 개방적이고 중립적이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맥락을 파악하며 상황을 유도할 수 있는 질문이란 무엇인가. 리서처가 질문할 때, 참가자는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일까? 생각은 계속해서 꼬리의 꼬리를 물었다. 설상가상으로 참가자로써 선배들의 연구에 참여한지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 감도 떨어졌다. 연구실에서 홀로 떨어져 나와 자립을 해보려고 하니 옛 기억이 퍽 멀게 느껴졌다. 이게 맞나? 제대로 질문하고 있나?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피드백을 줄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 확신을 가지고 쓰던 스크립트들도 밍숭맹숭, 잘 됐는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옛 기억을 되찾아보려는 노력은 어땠을까. 이전 학습 기록들과 진행했던 리서치 자료들을 볼 때만 자신감이 넘쳤다. 그래, 이게 개방형이고 중립적 질문이지! 자신만만한 생각을 가진 채 이제 내 스크립트를 작성하려고 하면 순식간에 자신감이 사라졌다. 머리는 왜 이럴 때만 깨끗해질까? 타자가 독수리 타법보다 느려졌다. 부디 나만 이랬던 것이 아니길 바란다.


모르겠다고 그래도 안주할 수가 있을까. 개방적 질문이라는 의미는 익히 알았으나,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건데? 라는 마음속 울림이 떠나질 않았다. 때문에 리서처로 이미 일을 하고 있던 선배들, 주변인들, 교수님에게까지 찾아가서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이러했다. “아, 그거그거. 이게 설명하기가 좀 애매한데… 일단 개방형으로 하면 돼.” 이 말로 시작되는 조언들은 대체로 인터넷 검색 결과와 비슷했다. 그때 당시의 나는 ‘아니, 그건 이미 안다고요! 술술 안 나와서 고민이라고요!’ 라고 외치고 싶었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저 말을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 당시의 선배들은 맞고, 나는 틀렸다. 선배들은 일반적인 말을 대충 골라서 대답해준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찌됐든 개방형 질문하기


글 첫머리에 개방형 질문이 어렵다고 구구절절 적어두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초보 리서처분들은 어처구니가 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야하고, 그럼에도 가장 중요하기에 첫 번째로 말하고 싶었다. ‘어려운거 나도 알지만, 해야한다.’ 이게 내 결론이다. 예, 아니오로 답을 내릴 수 있는 질문들은 인지적 리소스가 많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참가자들이 깊은 생각을 하지 않게 만든다. 개방형 질문이란, 익히 알다시피 이분적으로 나누어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후라이드 치킨 좋아하세요?’ 가 아니라, ‘후라이드 치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와 같다.


그렇다면 좋은 개방형 질문이란 무엇인가? 나의 경험으로 보았을 때는 그때그때 다르다 라는 다소 무책임한 답이 결론처럼 느껴진다. 사실이 그렇다. 어떤 질문이든, 대상이나 상황에 따라 그 효용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즉, 좋은 개방형 질문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맞춰 변화한다. 이런 점 때문에 나는 인터뷰에서 순발력이 꽤 중요한 요소 같다.


불행하게도 나는 순발력과 재치가 아주 뛰어난 리서처가 아니었다. 처음이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자연스럽게 다 잘 되던데요?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실제로 연구실에는 그런 재치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러지 못했다. 솔직할 것은 솔직하고 싶다. 당시의 나는 따로 적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개방형 질문이 술술 나오는 고수도 아니었다. 서당개도 3년은 읊어야 되는데, 나는 3년이 아니라 3달차의 리서처였다. 신이 내린 인터뷰어가 아니고, 시간이 쌓아 올린 범재도 아니라면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죽도록 연습하기. 그리고, 약간의 편법을 사용하기까지 더해줄 필요가 있다.


때문에 나는 미리 대본을 짜는 쪽을 선택했다. 대본을 적을 때, 중요하게 물어야 하는 질문들을 모두 개방형으로 치환해 두었다. 일종의 로드맵을 만들고, 최대한 입에 붙을 수 있도록 연습했다. 인터뷰 진행 시에 딱딱하게 질문을 읽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당황해서 인터뷰의 신뢰도를 떨어트릴 수도 없기에 한 선택이었다. 순간순간에 빛나는 재치로 인터뷰 질문을 좋은 개방형으로 만들 수 없다면, 가능한 나올 수 있는 질문들을 모조리 개방형으로 대응을 해두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질문을 개방형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며 습관화될 수 있게 연습도 함께 했다. 지금은 이렇게 일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때 당시의 나는 그랬다.


인터뷰 상황이 아니니 질문을 만드는 건 생각보다 단순했다. 내 감정이 드러나지만 않으면 되었다. 사족을 붙이지도 않았다. ‘이번에 저희가 바꿔본 서비스인데요! 어떠세요!’ 같이 너무 기대하는 표현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혹시 기대나 감정이 드러날 것 같이 말을 하게 된다면, 우리 서비스가 아닌 비슷한 상황을 가정해서 돌려 묻게 작성했다. 즉, 내가 궁금한 건 정해져있으니 질문을 적고, 그 질문에서 의도성을 제거해서 대본을 만들었다. 어디서나 다 볼 수 있는 내용이라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클래식은 늘 이유가 있지 않던가.


나의 스크립트 예시. 개방형 질문을 하나씩 치환해서 만들었다.


여기에 사소한 팁을 붙이자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예비용 질문을 만들어 두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건 중요한 가요? 같이 일반적인 개방형 질문이나, 개인적으로 궁금했으나 실제 인터뷰에는 넣지 못했던 질문들로 이루어진 모음집이었다. 실제 사용하지 않더라도 예비용이 있다는 건 곳간을 가득 채워둔 것마냥 든든했다. 가끔 인터뷰 중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내 경우에는 대체로 시간 문제였다.) 예비 질문집에서 하나씩 털어 사용하면 좋다. 내가 눈에 띄게 당황을 하거나 침묵을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이건 고수가 되기 전까지의 나름의 전략으로 채용하고 있다. 나만의 우황청심원이랄까.








반문 리스트를 만들어서 마음의 안정찾기


리서치에서 궁극적으로 궁금한 내용들은 이미 주요 질문을 통해 던졌다고 가정해보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와 같은 질문에 참가자가 답변을 했다. 그 이후에 자연스럽게 인터뷰를 이끌어나가야 하지만, 이후 질문이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 뒤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아… 정말요?’ 라고 하고 말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이미 능숙한 리서처분들은 내면의 해답을 끌어내기 위해 노련하게 다른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의 부제와 같이, 나는 새싹 리서처이다. 노련한 대응이 불가할 때, 즉 말문이 턱 막힐 때가 종종 생기곤 했다. 처음 인터뷰를 진행할 때에도 그랬다. 이걸 뭐라고 대답해야하지. 그런 생각과 동시에 침묵이 찾아왔다. 인터뷰 중간에 몰아친 그 고요라니.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 후, 나는 ‘반문집’을 만들었다. 아래는 그 반문집의 예시다. 이런 질문들이 꽤 많다. 예시일 뿐이니, 이런 느낌이라는 것만 알아주면 좋을 것 같다.


나의 우황청심원 예시.


반문집을 보고 달달 외워 인터뷰에 임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인터뷰 중간에 잠시만요, 를 외치고 반문집을 허겁지겁 살펴봤단 의미도 아니었다. 그저 입에 붙을 때까지 연습을 하고 기억이 나지 않을 때는 자연스럽게 곁눈질(?)을 했다. 그래도 인터뷰 중 조용함과 어색함이라는 최악을 면한 게 어디인가. 아무 생각없이 진행하다 실수를 하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일종의 mc고, mc의 대본집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물론 모든 인터뷰에 다 만드는 건 아니지만, 내게는 유독 버벅거리게 되는 인터뷰가 생기곤 했다. 그럴 때마다 유용하게 작성해서 사용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절대 내가 더 해야 할 질문을 찾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매우 중요. 별 표 10개는 치고 싶다. 인터뷰 신뢰도를 떨어트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내가 왜 이렇게 말했는지 모르겠어서 괴로워하기


좋은 질문 뽑기는 인터뷰를 진행하고 나서도 계속될 수 있다. 바로 내가 한 말과 질문들을 피드백하면서 다음 번에는 더 좋은 질문으로 돌아와주마! 하고 와신상담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의미다. 아무리 바리바리 준비를 해서 들어갔더라도, 꼭 내 마음처럼 진행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일을 서서히 줄여나가기 위해서, 나는 클로바 노트를 이용하고 있다. 클로바 노트로 변환된 인터뷰 내용들을 뽑아 내 실제 스크립트와 비교를 해본다. 얼마나 이상한 질문을 했는지, 혹은 가끔씩 얼마나 예리한 질문들을 했는지 볼 수 있다. 더군다나 내 대화를 바로 들어볼 수도 있어서 내 목소리 톤도 알아볼 수 있다. 혹시 내가 비언어적으로 뉘앙스를 풍기지 않았는지도 확인이 가능하다. 조금 부끄러운 작업이긴 하나, 내 성장을 위한 발판이라 생각하면 좀 낫다.


클로바노트로 변환한 인터뷰 예시(상기 텍스트는 전부 임의 작성했다.)


이 텍스트에서 나는 나의 말버릇, 문제점을 의도적으로 수정하려고 한다. 가끔은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뭐 중요하지 않으니 괜찮다. 피드백을 하면서 뽑아낸 나의 문제점(일종의 인사이트 아닐까?)을 잘 적고, 인터뷰 진행 스크립트 위에 붙여둔다. “뭐가 제일 불편하세요 금지!!!!” 가 나의 첫 피드백 결론이었다. 저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면 나오곤 하는 내 말버릇 중에 하나였다. 개방형도 아니고, 맥락 파악도 안 되는 나쁜 질문의 예시다. (물론 지금은 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여기까지가 나의 질문하기 미세 팁이다. 팁은 팁인데, 너무 미세해서 쓸 데가 많아 보이진 않는다. 그럼에도 아직 질문이 술술 나오는 고수가 아닌 리서처들에게는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같이 실수를 되짚으며 나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비록 서로 얼굴을 알고, 근처에 있는게 아닐지라도!







추석과 함께 집안에 큰 행사가 있어 업로드가 늦었습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자주 찾아뵙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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