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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 greens Feb 18. 2020

오늘, 레몬청 만들기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는 한 주, 마음 달래기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나는 무언가 만들곤 한다.


글을 쓰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 생각된다.

복잡하게 얽힌 상황은 혼자 해결할 수 없지만,

복잡한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건 혼자서도 가능하다.


글을 쓰며 얽혀있는 실타래를 풀다보면,

격양된 감정은 가라앉고

무언가 해냈다는 묘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잘 해보려 했지만,

어딘가 어설프게 꼬여버려 어려웠던 한 주.

해결할 수 없는 일들로 받은 상처를 다독이고자

오늘, 레몬청을 만들기로 했다.


설탕, 과일, 공병만 있으면 끝나는

손쉬운 요리를 하면서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어보고자

며칠전 주문해둔 레몬을 꺼냈다.



재료


· 제주 무농약 레몬 3kg (약 25개)

며칠 전, 네이버 해피빈에서 봤떤 '제주 레몬'
수입이 아닌 제주에서 직접 기른 무농약이라 물로 뽀드득 씻기만 해도 충분히 먹을 수 있다.

딸에게 물려주고 싶은 무농약 농사라는 글귀를 읽다가 무턱대고 주문했다.



· 설탕 2kg

보통은 과일과 설탕을 1:1 비율로 넣는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덜 달게'를 선호해

2kg만 준비했다.
토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레몬청을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동네 슈퍼마켓에서 구매했다.


· 공병 여러개

이런 날이 올거라 예상했던 걸까,

무언가 만들어보려고 샀던 공병들이 있었다.
사실 개수가 부족해 널찍한 반찬통도 활용!

(아무렴, 내가 먹을 건데)



만들기


· 하나, 레몬을 잘 씻는다.


구매 전, [유의사항]에 적혀있던 말처럼

레몬 모양이 제각각이다.

무농약 레몬이라 표면이 거칠거칠하고

뭐가 묻어있기도 하다.

못나지만 예쁜 아이들. 각자의 모양대로 잘 자라준 아이들을 깨끗하게 씻어 주었다.

뽀드득 씻어준 다음에는 물기를 잘 닦아준다.


· 둘, 레몬을 자른다.


레몬 슬라이서 같은게 있으면 좋겠지만,

당연히 없기 때문에 칼을 썼다.


하나, 둘, 레몬을 자르는데 싱그러운 향이 난다.
예상보다 안 풀릴 때도 있지만,

예상외로 좋은 일이 생길 때도 있다.


상큼한 향에 괜히 기분이 좋다.


레몬청을 위해 산 공병이 아니라서 크기가 좀 작다.

작은 크기로도 잘라준다.




· 셋, 설탕과 함께 공병에 담는다.



설탕과 레몬을 큰 보울에 담고

충분히 섞어준 뒤에 공병에 담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많았던 나는

설탕 + 레몬 + 설탕 + 레몬 ...

번갈아 공병에 담아본다.

레몬 조각 하나 하나 젓가락질로 병에 넣어준다.
한 조각 한 조각 열심히 넣었고,

설탕도 열심히 부었다.


공들인대로 레몬청은 손쉽게,

그리고 너무 잘 만들어졌다.



젓가락질로 한 조각씩 넣다보니

점심이 훌쩍 지나 있었다.


배고픈 줄도 모른채 레몬청을 만들었다.

다 만들고 나니 그제서야 배가 너무 고파

곧장 햄버거를 시켰다.


-


나는 수시로 내가 원하고, 계획한것이 

인생의 정답이라는 착각을 한다.


그래서 내 계획이 틀어지면 오답이라는 생각에

머리와 마음이 복잡해진다.


조금 뒤에 배우게 되는 것은

 생각이 항상 맞지 않고

모든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하던 메뉴가 아니더라도

허기가 채워진것만으로 감사해야한다는 것을

나는 자주 잊곤 한다.


주어진 어떤 상황에도 무던하게 감사하려면

아직 갈길이 멀다.


다행인 건, 나를 위로하는 방법을 안다.

자주 넘어지고, 상처받지만

나를 돌아보고 다시 일어나는 방법을 안다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일어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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