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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 greens Jun 18. 2024

그냥 하고, 살아보는 것

오랜만에 첫 직장 선배, 동기와 점심을 먹었다. 실없고 짓궂은 농담을 곁들이며 각자 사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덧 대화 주제가 '꾸준함'에 머물렀다.



우리가 만났던 첫 직장은 나름 유명한 IT 대기업이었기 때문에 좋은 대학,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고 다들 그냥저냥 일하고 사는거지 하지만 평균 이상으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모여 밤늦게도 건물을 환하게 밝혔다.하지만 우리는 중에서도 놀고만 싶다, 쉬고만 싶다를 외쳐대는 사람들이었기에 이번 만남에도 어김없이 서로에 대한 자조 섞인 농담을 이어나갔다.


아이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학부형에게 영어는 사실 본인이 잘하고 싶은 것 아니냐며 본인은 전화영어조차 꾸준히 안 하면서 왜 영어 숙제 하기 싫다는 아이를 이해해주지 못하냐며 짓궂게 대화를 나누던 중 선배가 과거 팀장님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가 같은 팀이었던 시절, 팀장님이셨던 A님의 아이가 최근 용인외대부고를 입학했는데 알고보니 그 팀장님이 최근까지도 매일 아침마다 전화영어를 하고 계셨다는 것이다. 결국 부모가 공부를 꾸준히 하니, 아이도 그걸 본받아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고, 서울에서 분당까지 매일 출퇴근에 팀원들보다 늘 일찍오팀장님의 삶의 태도와 방식을 아이도 배운 게 아니겠냐고.


결국 우리가 회사에서 보던 그 많은 사람들은 그냥 좋은 스펙을 가진 것만이 아니라 무엇이든 해내는 힘이 있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대단한 건 이미 오랜 시간을 꾸준하게 살아오고 꾸준함의 결과를 만들어 낸 경험이 있어서 본인만의 노련함으로 또 다시 새로운 것을 그냥 그렇게 꾸준히 해내고야 말고, 결국 또 그렇게 잘 성취해낸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제발 올해는 뭐든 해보자고 또 지키지 못할 약속을 서로에게 말하며 헤어지는 길에 문득 취직 후 10년 가까이 되는 시간을 돌아보게 됐다.


어느 순간부터 꾸준함 보다는 새로움이 나의 모토였던 것 같다. 조금만 불편하고 어려운 것이 있거나 답답한 상황에 봉착하면 다른 대안을 찾는 데에 열심이었다. 열심은 있었지만 꾸준함은 없었다. 불편해도 꾸준히 마주하는 것 잘 못해도 그냥 해보는 것. 그게 나에게 없었던 것 같다. 어떤 시점엔 남들보다 빨보이기도 하고, 달라 보이기도 했지만 난 늘 피해다니고 도망다녔던 것 같다.



10년 여의 시간이 지나보니, 학교가 아닌 사회 속에서 내가 마주하며 내 힘으로 해결하려다 실패하고 피해간 꽤 많은 사건과 상황들이 알아서 잘 해결되었던 것 같다. 애써 증명하려던 진실이나 사람들의 인정도 내 수고와 노력이 무색하게 시간 흐르니 그냥 티가 나게 된다. 그래서일까. 남들은 진작 마주하고 기다리고 하던 것들을 나는 이제야 조금씩 하는 것 같다. 


과거에는 작은 가시, 조그만 언덕에도 지름길을 찾고 뛰어가던 내가 전보다도 제법 높아진 언덕과 조금 더 흐릿해진 상황에도 그 어떤 때를 기다리며 그냥 그렇게 천천히 걸어가보고 그냥 참아도 보고 한번 울어도 보며 그냥 또 출근도 하고 하기 싫어도 일 해보고 하는 것 같다. 누군가 이미 터득한 꾸준함일지라도 이제라도 한 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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