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이 먹고 싶구나 2

<일본에서 독거노인으로 삶을 마감한다는 것>

by 카이

최순자 할머니는 요양원의 식사가 너무 입맛에 맞지 않다고 하시며 내게 깻잎이 먹고 싶다고 종종 말씀하셨다.



최순자 할머니 소개


최순자 할머니는 85세에 요양원에 입소하셨다. 할머니는 40세 정도에 첫 남편과 사별했다고 한다. 그 후 재일교포 남성과 결혼하여 일본에 오셨다고 했다.


한국에서 반평생, 일본에서 반평생을 살아오신 분이셨다. 한국어는 당연하고, 일본어도 매우 유창하셨다. 성인이 되어서 일본에 온 사람들은 아무래도 일본어가 어색하기 마련인데, 최순자 할머니는 일본어를 거의 모국어처럼 사용하셨다.


자식이 없으셨던 할머니는 재혼한 남편분과 함께 한동안 일본에서 생활하셨다. 그러나 재혼한 남편분도 본인보다 훨씬 먼저 하늘로 떠나보내셨다고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홀로 살아오셨다고 했다.


연세가 80이 넘으시고, 건강도 예전 같지 않고 본인의 생활을 해 나가는데도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셨던 것 같다. 방문요양 서비스를 받으시면서 자택에서 몇 년을 생활하셨었지만, 85세가 될 무렵 더 이상 자택에서 생활하시는 것이 어려우셨다고 판단하셨는지 요양원에 입소를 하셨다.




외국에서 가족 없이 홀로 있다는 것


할머니의 남편분은 돌아가실 때, 할머니의 걱정을 많이 하시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외국에서 홀로 살아가야 하는 부인이 너무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1995년에 오사카와 고베를 중심으로 큰 지진이 있었다. 이 지진의 공식적인 이름은 '한신 아와지 대지진'이라고 한다. 한신 아와지 대지진이 발생하기 수년 전부터 일본에서도 예고가 있었던 모양이다. 곧 큰 지진이 올지 모르니 대비하라는 이야기가 공식적으로 있었다고 한다.


최순자 할머니의 남편분은 돌아가시기 전에 병상에 누워서 본인의 아내인 최순자 할머니에게 신신당부를 하셨다고 한다.


지진이 발생하면 다 버리고 우선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는 수차례 이야기를 하셨다고 한다. 아마도 그 말은 유언 아닌 유언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아마도 지진 후에 쓰나미가 보통 발생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셨던 것이 아닌가 싶다.


남편분이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큰 지진이 발생했고 할머니는 엄청난 고생을 했었다고 한다. 남편도 자식도 없이 홀로 남의 나라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구걸 같은 배급을 받으며 한동안 생활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지진 후에 어느 정도 복구가 되고, 할머니는 여자의 몸으로 공사판 등을 오가며 돈을 벌어 생활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일본에서 홀로 고생하며 생활하셨던 이야기를 나에게 해 주셨다.




깻잎이 먹고 싶구나


최순자 할머니는 요양원에 입소하셔서 며칠간은 잘 지내시는 듯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식사를 잘하지 못하시고 많이 남긴다는 이야기가 내 귀에 들렸다.


하루는 내가 식사 배식 당번 때 할머니와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할머니 왜 식사를 안 하세요?"


"얘야~ 반찬이랑 국이 너무 니글니글해서 못 먹겠다. 김치도 없고... 깻잎이라도 있으면 같이 먹으련만... 깻잎이 먹고 싶구나"


그렇다. 여기는 일본 요양원이기에, 식단이 일본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서 나올 수밖에 없는 곳이다.


일본에 여행으로 와서 잠깐 일본 음식을 먹는다면 너무 맛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등을 구해서 집에서 한국식으로 식사를 한다.


최순자 할머니도 평생을 본인의 집에서 그렇게 식사를 하셨을 것이다. 할머니의 '니글니글 해서 못 먹겠다'라고 하셨던 표현은 나로서는 정말 공감이 되는 표현이었다. 너무 달고 너무 짠 일본음식은 내 입맛에도 영 맞지 않는다.


그 대화가 있고 난 얼마 후 나는 한국에 갈 일이 있었다. 한국에 갔을 때, 난 이마트에서 깻잎을 한주먹 구입해서 일본으로 가져갔다.


할머니는 너무 좋아하셨고, 식사하실 때마다 깻잎을 아껴서 드셨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에 있는 한국 식품점에 가니 통조림 깻잎이 팔고 있었다. 한국에서 그렇게 흔하게 보이던 깻잎 통조림이었다. 샘표 깻잎이었던가?


내가 한국 식품점에서 통조림 깻잎을 발견한 이후부터는 종종 통조림 깻잎을 사서 할머니께 갖다 드렸고 할머니는 깻잎과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요양원 생활을 이어 나가셨다.




일본에서 독거노인으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


최순자 할머니는 요양원에서 약 8년을 생활하셨고 몇 달 전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까지 매우 건강하셨으며, 직원들과 무난하게 대화도 하셨었다.


그러나 갑자기 걸음걸이가 불편하시는 듯 보이더니 고열까지 나셨다. 주치의를 불러 확인한 결과 급성 폐렴이었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하신 지 일주일 후 돌아가셨다.


이렇게 황당할 수가 있나? 물론 93세의 고령의 연세이시긴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다니 황망하기 그지없었다.


9988234이라는 표현이 있다. 99세까지 88 하게 살다가 2~3일만 앓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표현이다. 건강하게 잘 살다가 가자는 그 말의 의도는 알겠지만, 막상 내 눈앞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니 황망하기 그지 없었다.


사람의 목숨이란, 참 질기고 강한 것 같기도 하면서, 황망할 정도로 가볍게 끊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최순자 할머니는 일본에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보호자는 없었다. 때문에 일본에서 할머니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담당하고 책임지는 사람은 지역 사회에 있는 '케어매니저'라는 사람과 구청의 '담당 공무원'이 그 역할을 한다.


요양원에서는 그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서 할머니를 케어하고 있는 것이다.


병원에서 돌아가신 할머니는 특별한 장례식 없이 바로 화장터로 가셨다고 했다. 실질적인 담당자들인 '케어매니저'와 '담당 공무원' 그리고 '병원 관계자'와 '주치의'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나로서는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장례식에 가서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려고 혼자 생각하고 있었는데, 바로 화장장에서 모든 장례절차가 끝나버렸다니 당황스러웠다.


그렇다고 내가 장례식을 맡아서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럴 권한도 없었다.


일본에서 일본의 노인시스템의 보호를 마지막까지 받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다행이다 싶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외국에서 홀로 살아가는 노인의 마지막 가는 길은 이렇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교차되는 날이었다.


최순자 할머니, 하늘에서는 사랑하는 부모님도 만나시고 남편분도 만나셔서 외롭지 않게 지내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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