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가라앉는 배 위에서 부르는 노래>

by 카이

내가 근무하고 있는 일본 요양원은 독특하게 한국 할머니들이 많다. 이것은 일본의 요양원 전체적으로 그런 분위기는 아니며, 내가 근무하고 있는 요양원의 특징이다.


아마도 내가 근무하고 있는 지역이 재일교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이유가 한몫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박금자 할머니 이야기


일본 요양원에서 만난 박금자 할머니는 전라북도 출신 할머니이다. 박금자 할머니는 일주일에 6일간 내가 근무하는 노인시설인 데이서비스에 오신다.


일본의 데이서비스 시설은, 한국의 주간보호센터와 거의 흡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노인시설의 한 종류이다.


박금자 할머니는 데이서비스의 일과 및 프로그램 참여하며 온종일 시간을 보내신 후 댁으로 돌아가셔서 주무신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또 오신다.


할머니가 데이서비스에 오시는 날은 거의 내가 출근하는 근무일수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나는 일하러 데이서비스에 출근하지만 할머니는 놀러 오시다는 점 정도이다.


매일 나와 만나기 때문에, 나는 할머니께 '오늘도 출근하셨어요?'라는 농담 섞인 인사를 보통 건넨다.




송영차량 안에서


데이서비스에 오시는 어르신들을 아침에 차량으로 모시고 오는 업무를 송영(送迎)이라고 한다. 데이서비스의 일과를 마치고 댁으로 모셔다 드리는 일 역시 마찬가지로 송영이라고 한다.


송영차량 안에서는 어르신들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어르신들께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하시지만, 보통은 어르신들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시고 댁에 도착하실 때까지 입을 쉬지 않으신다.


보통 하시는 이야기는 본인 신세 한탄, 남편 욕, 자식 자랑이다. 유튜브나 인스타를 보면, 인생의 노년기에 인자하고 지혜로운 모습으로 젊은이들에게 여러 가지 조언과 가르침을 주는 노인의 모습 혹은 영상이 많이 보인다.


그러나 그런 노인은 내 주위엔 없다. 어딘가 있기는 있는 것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유튜브에만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고령의 노인들을 많이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 들으면 당황스럽겠지만, 노인들은 보통 신세 한탄과 남 욕을 하신다.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 송영차량 안에서 나에게 욕이나 안 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은 역시 흥의 민족


박금자 할머니는 거실 의자에 앉아 계실 때면, 거의 대부분의 개인 시간에 유튜브로 트로트 영상을 보신다. 그리고 영상과 함께 홀로 흥얼거리시며 시간을 보내신다.


김연자 영상을 한참 보시는가 싶더니, 요즘에는 장윤정에 꽂히셔서 '어머나' 영상만 한참을 보시고 계신다.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여자의 마음은 갈대랍니다~

거짓말처럼 당신을 사랑해요

소설 속에 영화 속에

당신 주인공은 아니지만!


박금자 할머니가 노래를 부르시면, 주변의 다른 일본 할머니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하신다.


생각해 보면 일본 할머니들 중에서 일상생활 중에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가라오케를 발명한 국가치고는 그렇게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인 직원도 내게 종종 말한다.


"한국 사람들은 노래 부르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요"


동의한다. 일본 사람들도 노래를 좋아하고 부르긴 하지만, 내가 실제로 본 적은 함께 가라오케에 갔었을 때뿐이었다.


일상생활에서 흥얼거리듯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내가 있는 요양원에서는 박금자 할머니와 나뿐인 것 같다.


한국인은 역시 흥의 민족이 맞는 것 같다.




박금자 할머니의 찬송가


어느 날 저녁 박금자 할머니를 송영차량 뒤에 태우고 댁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조용한 차 안에서 노랫소리 들렸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박금자 할머니가 갑자기 찬송가를 흥얼거리셨다.


"아니, 할머니 교회도 안 다니시는 양반이 갑자기 웬 찬송가랍니까?"


라고 내가 할머니를 향해 말했다.


"나? 교회 옛날에 다녔어~ 그리고! 교회 안 다니면 찬송가 부르면 안 되냐!"


여느 때처럼 느닷없이 역정을 내신다.


"아뇨! 누가 뭐라 합니까? 부르세요 부르셔! 한번 불러 보시요! 어디 얼마나 잘 부르는지 내 한번 들어보게!"


할머니는 새침한 표정을 나를 향해 한번 지으시더니, 노래를 다시 부르시기 시작하셨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아가기 원합니다



조용한 차 안에서 박금자 할머니가 부르는 조용한 찬송가가 흘러 퍼졌다.


약간 서글프게도 느껴지는 음정의 이 노래는 괜스레 내 기분가지 서글프게 만들었다.




가라앉는 배 위에서 부르는 노래


이 노래의 멜로디는 영화 '타이타닉'에서 등장하여 그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 노래는 타이타닉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온다.


침몰하는 배 갑판 위에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닐 때, 타이타닉호에 탑승해 있었던 4명의 음악가들은 마지막까지 이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이 있다.


공포에 질린 승객들이 갑판 위를 뛰어다니는 배경으로, 차분하게 이 곡을 연주하는 음악가들의 모습이 아직도 나의 뇌리에 남아있다.


승객들의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장면의 연출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타이타닉에서 이 곡은


배의 운명이 이제 다 했음을 알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다가오는 운명에 순응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가오는 운명에 순응하는 것처럼


박금자 할머니는 90세로 초고령이시다. 다행히 치매 초기 단계에서 계속 머물러 계시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다른 사람과의 일반적인 대화도 무난하게 하실 정도로 건강하시지만, 종종 본인의 운명이 다가오는 것을 준비라도 하시는 듯한 말씀을 하신다.


"이제 난 살만큼 산 것 같아"


"갈 때 되었으니, 이제 가야지"


내가 느끼기에는 진심으로 하는 말씀인 것 같다.


노인들이 항상 하는 거짓말이 있다고 한다. 우스갯소리 혹은 농담처럼 사람들이 웃으며 이야기하는 말이 있다.


'난 살만큼 살았으니, 이제 가야지'


나도 이 말이 노인들의 거짓말인 줄 알았다. 요양원에서 일을 하기 전까지는.


이제는 노인들이 이런 말을 하면, 농담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본인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아가기 원합니다.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아가기 원합니다




박금자 할머니가, 본인의 마지막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고백인 것처럼 느껴진다.


박금자 할머니가, 오늘 하루도 감사히 살아 보내며 당신의 신에게 고하는 신앙고백인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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