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면 성당에서 사람이 올 거야>
김정자 할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는 7년 전의 어느 여름날이었다. 일본의 방문개호를 위해 방문했던 할머니의 집에서 처음 만나 뵙게 되었다. 참고로 일본의 방문개호란, 한국의 재가복지 요양서비스와 거의 동일한 복지 서비스이다.
매우 건강하셨던 김정자 할머니는 나를 보며 한국사람이라며 너무 좋아하셨다. 치매 초기 상태를 지나 중기 상태로 향하고 있는 상태였던 할머니는 종종 본인이 살아온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할머니는 만주에서 태어나셨다고 했다. 사실 치매에 들어선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100% 모두 진실이라고 믿을 수는 없다. 김정자 할머니가 정말로 만주에서 태어나셨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일본어로 적힌 할머니의 기록에도 출생에 관한 기록은 명확하게 적혀있지 않았다.
그러나 김정자 할머니가 만주에서 태어나셨든, 중국에서 태어나셨든 그것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금 현재 할머니와 교류를 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할머니와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할머니 댁에 가서 내가 하는 업무는 주로 청소와 함께 물건을 사러 가는 일 그리고 복용약을 잘 챙겨드시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처음 한동안은 집안 청소를 열심히 했으나, 어느 날부터인가 할머니는 나에게 '청소고 나발이고 집 근처에 있는 우동 집에 가서 우동이나 먹으러 가자'며 말하셨다.
그렇게 나는 할머니와 우동을 먹으러 함께 가기도 했으며, 함께 스시를 먹으러 회전스시집에 함께 가기도 했다. 그렇게 할머니와 나는 요양서비스 대상자이면서 동시에 아주 친한 친구처럼 돈독해지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할머니는 홀로 계신다. 할머니의 이야기로는 한국에서 한번 결혼을 했으나 금방 이혼하셨다고 하셨다. 구체적인 이유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 이후 지인의 소개로 재일교포인 두 번째 남편을 소개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 후 일본으로 와서 평생을 사셨다고 한다.
두 번의 결혼 생활동안 슬하에 자녀는 없었다고 한다. 자식들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이야기를 가끔 하시기도 하셨으나, 자식이 있어본 적이 없어서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시기도 하셨다.
할머니는 가끔 나에게 본인의 자식처럼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대답했다.
"감사하긴 합니다만, 저는 싫습니다. 우린 남입니다 남"
어느 날 할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죽으면 성당에서 나를 데리러 사람들이 올 거야"
"네? 뭔 소리예요? 그게?"
할머니는 본인의 이야기를 이어나가셨다. 본인이 죽으면 장례를 치러 줄 자식들이 없어서 여러 방법을 고민했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일본에서 성당에 다니시고 계셨는데, 자식들이 없는 노인들을 성당의 교인들이 대신 간단하게 장례를 치러주며 화장 후에 성당의 묘지에 안치시켜 준다고 했다.
그렇게 본인의 장례를 위해 30만 엔을 성당에 지불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화장하고 안치시키는 비용이 30만 엔이 든다는 이야기를 내게 하셨다.
나는 긴가민가 하는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듣고 흘렸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생각을 나도 스스로 하기도 했다.
외국에서 생을 홀로 마감하게 되거나, 홀로 노년기를 맞이하게 된다면 김정자 할머니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구나. 그리고 본인의 마지막 장례까지 고민해야 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김정자 할머니가 내 가족은 아니었지만, 왠지 본인의 마지막을 준비해 두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왠지 서글퍼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초고령의 김정자 할머니는 점점 치매가 심해지셨고, 결국 자택에서 홀로 지내시는 것이 불가능해지셨다. 결국 2년 전에 내가 근무하는 요양원에 입소하셨다. 그리고 요양원에서 생활하신 지 약 2년이 지나 지난주에 김정자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내가 근무 비번일 때, 김정자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집에서 쉬고 있을 때, 회사에서 사용하는 전문 메신저로 김정자 할머니의 부고소식을 들었다.
할머니의 장례식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일까? 다음날 출근을 하자마자 시설장에게 물었다. 김정자 할머니의 장례식은 어떻게 진행될 예정인지 물었다.
그러나 시설장의 대답은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성당에서 사람이 와서 김정자 할머니를 모시고 갔다고 한다.
그렇다. 할머니는 몇 년 전에 내게 했던 말이 있었다. 본인이 죽으면 성당에서 사람이 와서 데리고 가서 화장을 해준다고 했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그 말이 진짜였구나. 치매 노인분들과 이야기를 하면, 진실과 허상이 뒤섞여 있어서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성당에서 사람이 온다는 이야기는 진실이었다.
아마도 본인의 후견인에게 무언가 부탁을 해 두었던 것 같다. 일본에서는 돌봐줄 가족이 없는 노인들은 보통 후견인을 지정해 둔다. 일본에서는 사법서사가 후견인으로 가장 많이 활약을 하는 것 같으며, 이는 한국에서는 법무사라고 하는 직업이다.
장례식은 아주 간소하게 진행하며, 화장으로 마무리를 한다고 했다. 장례식을 안 한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할머니의 장례식에는 참석하고 싶었는데, 그냥 이렇게 하늘로 가버리셨다.
무언가 굉장히 허무하게 가버리셨다.
사람의 삶이란 길고도 질긴 것처럼 느껴지면서도, 한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존재인가 싶기도 하다.
아직 정신이 온전하실 때, 본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준비하셨던 할머니는 어떤 심정이셨을까?
본인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정리하는 그 기분을 나도 언젠가 알게 될까?
김정자 할머니를 떠나보낸 후 여러 가지 생각에 잠을 못 이루고 몇 글자 적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