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랑을 찾아온 연인?>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노신사의 얼굴을 마주한 모리타 할머니는 소녀처럼 얼굴이 빨개지셨다. 그리고 아무 말도 못 한 채 얼어붙은 것처럼 가만히 서 계셨다.
모리타 할머니는 1년 전에 요양원에 입소하셨다. 작은 체구에 연세가 있으셨음에도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간직하고 계신 분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약간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시는 분이시다.
할머니는 아주 젊은 시절 남편과 사별한 후, 외동딸을 홀로 키워낸 분이시다. 딸은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한 후 가정을 꾸렸고, 할머니는 그 이후로 평생을 홀로 살아오셨다고 했다.
평생을 홀로 살아오셨으나 1년 전부터 인지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후, 치매 검사를 해 보니 치매 초기라는 진단을 받으셨다 한다.
그런 연유로 댁에서 홀로 생활할 수 없어서 요양원에 입소하게 되신 분이다.
하나 있는 외동딸은 본인의 어머니를 잘 찾아오지 않았다. 모리타 할머니가 입소한 이후 딸이 면회를 온 적은 1년 동안 딱 한 번뿐이었다.
씁쓸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자녀들이 비슷하다. 나는 안 그럴 것 같은가? 글쎄다.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다. 그 상황이 닥쳐봐야 알 수 있다.
그나저나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니고, 인상 깊게 남았던 모리타 할머니의 한 면회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어느 날 요양원 전화벨이 울렸다. 한 남성이었다. 연세가 꽤 되어 보이는 듯한 중후한 목소리의 어르신인 듯했다.
"제 오래전 친구가 그 요양원에 있다고 들어서 전화를 했습니다. 혹시 모리타라는 여성이 그곳에 있나요?"
모리타 할머니를 찾는 전화였다.
"친구를 한 번 만나고 싶은데, 혹시 면회가 되나요?"
나는 시설장에게 전화를 돌려서, 직접 통화를 하게 했다. 가족이라면 언제든지 오라고 대답하겠지만, 누군지 알고 내가 가타부타할 수 없어서 시설장에게 전화를 돌렸다.
요양원에선 친구라고 하며 어르신을 찾는 전화가 종종 온다. 막상 상세히 상대방의 신상에 대해서 질문하면, 애매한 관계가 종종 있다. 내 경험상 가장 많은 경우가 무슨 종교단체 지인들이었다.
인지능력이 점점 사라져 가는 노인들을 설득하여 남은 재산을 종교단체에 기부하게 하는 사람 혹은 단체들이 생각보다 많다.
종교단체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겠지만, 기가 차고 황당한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이야기가 자꾸 옆으로 새는 것 같은데,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도 아니다. 이 이야기는 기회가 되면 언젠가 구체적으로 에피소드를 적어 보겠다.
시설장은 한참 전화 통화를 한 후, 모리타 할머니에게 무언가 몇 가지 질문을 하는 것 같더니 이내 전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며칠 뒤 면회를 올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시설장에게 들었다. 아마도 정말 친구인 모양이었다.
그 친구라는 분은 이 지역에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버스로 약 5~6시간 걸리는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곳은 모리타 할머니가 어린 시절 살았던 고향이었다.
이전에 전화로 약속한 면회날이었다. 아침에 모리타 할머니께 오늘 친구가 면회 올 예정이라고 전달했더니, 본인을 만나러 누가 면회를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약간 놀라셨다.
사실 며칠 전에도 면회에 대한 이야기는 전달했으나, 요즘엔 새로운 정보를 기억을 잘 못하시는 것 같았다.
누가 오는 것인지 나에게 물었으나, 나는 그저 '글쎄요? 친구라고 하시던데요?'라는 말만 전했다.
고개를 갸우뚱하시던 모리타 할머니.
면회 시간이 되고, 연세가 꽤 되어 보이는 노신사 한분이 약간 긴장되어 보이는 듯한 모습으로 요양원에 들어오셨다.
노신사를 모리타 할머니가 계시는 2층으로 모시고 갔다. 그리고 할머니가 앉아계시는 거실 한편으로 안내해 드렸다.
"모리타 할머니, 친구분 오셨어요"
모리타 할머니는 고개를 우리 쪽으로 돌려 노신사분과 눈을 마주치시더니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당황해하시며 얼굴이 빨개지셨다. 그리고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아무 말도 못 하시고 움직이지도 못하셨다.
'응? 뭐지? 이 분위기는?'
항상 알게 모르게 차갑고 도도한 분위기를 풍기셨던 모리타 할머니가 갑자기 10대 여중생처럼 보이는 듯했다.
'이 장면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고, 예전에 내가 겪어 본 것 같은 이 익숙한 분위기는 뭐지?'
나는 한참을 갸우뚱하다가 마침내 생각해 냈다. 이 장면은 청춘드라마의 한 장면과 비슷했으며, 내가 10대 때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것을 생각해 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얼어붙어버리는 그런 장면이었다.
내가 십 대의 시절에 첫사랑의 상대 앞에서 얼굴만 빨개진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던 경험이 떠올랐다.
모리타 할머니를 향해 노신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히사시부리 데스 네~(오랜만이에요~)"
모리타 할머니는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셨다.
"... 하이(네)..."
나와 다른 직원들은 이 요상한 분위기의 공간에서 벗어나 멀찌감치 떨어졌다. 편히 이야기를 나누시도록.
그리고 두 분은 한참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셨다.
아마도 그간의 안부를 물으시는 듯한 분위기였다.
나와 동료들은 멀리서 일하는 척하면서, 먼발치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구경 중에서 싸움 구경과 데이트 구경이 재밌는 법이다.
약 1시간이나 흘렀을까?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것 같았다.
두 분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장면은,
노신사 분이 모리타 할머니를 두 팔 벌려 안으시는 모습이 보였다.
'에구머니나~ 이게 뭔 상황이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안보는 척하면서 계속 보고 있었다.
얼마 후, 모리타 할머니는 그 노신사를 요양원 문 앞까지 바래다주고 정말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정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인사를 건넸다.
"사요나라...(안녕)"
그 노신사 또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인사를 건넸다.
"사요나라...(안녕)"
멀어져 가는 노신사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모리타 할머니의 얼굴에서는 정말 오만가지 감정이 다 보이는 듯했다.
행복, 기쁨, 슬픔, 아쉬움, 후회, 회한, 그리움.
아마도 슬픈 감정이 가장 크지 않았을까?
얼마 만에 만난 사랑이었을까?
80이 훌쩍 넘은 연세이기에 아마도 60년 만에 만난 사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70년 만에 다시 만난 첫사랑은 아니었을까?
모리타 할머니는 이제 막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앞으로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 분명했다. 혹여나 다시 만나더라도 점점 심해질 것이 분명한 치매 증상으로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렇게 모리타 할머니는 할머니 나름대로의 슬픔을 가슴에 안은 채 작별인사를 하였고, 나는 나대로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면서 두 사람의 작별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혹시 그건 모리타 할머니의 첫사랑이었을까?
할머니는 그 뒤 치매 증상이 조금씩 심해지셨다.
반년이 지나자 일반적인 대화가 불가능해지셨다. 전혀 그러셨던 분이 아니셨는데, 소리를 지르시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의 행동을 보이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에도 문제가 생겨 침대에서 누워계시기만 하는 상태로 한동안 지내셨다.
그리고 얼마 더 지나지 않아 모리타 할머니는 요양원을 떠나 병원 입원하셨고, 얼마 후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지금도 모리타 할머니를 생각하면, 그때 그 만남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에 어떤 생각을 하시면서 지내셨는지 알 길은 없다.
그러나, 그때의 소녀처럼 설레는 모습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셨던 그 마지막 만남이 할머니의 마지막 추억이자 생의 마지막 기억이었기를...